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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Mar 26. 2024

왜 Self Facilitation이 필요한가

1부의 끝 -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전략

Self Facilitation 나를 이끄는 시스템


Self Facilitation은 자기 자신을 촉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방향을 잡으며, 적절한 자원과 도구를 활용하여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죠. 이를 통해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지도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네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내가 지시를 잘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실험하고, 시뮬레이션 하며 밤새는 생활을 했던 저는 그 말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생활, 사회 생활을 하며 명확한 방향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리더나 상사를 만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죠. 그 이후로, 제가 주도하면서 동료와 협업을 해야 할 때면 작업의 목적, 예상되는 결과, 유용한 참고자료, 작업 절차 등을 명확하게 제시하려 노력했습니다. 자신의 업무가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그 한계 안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제가 친절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이렇게 해주는 상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직무 역량을 높이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지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양의 한계가 아니라, 의지력을 운용하는 방법의 부재라고 생각해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어떤 상사를 만나느냐, 어떤 PM(Project Manager)과 일하느냐, 어떤 프로세스에서 업무를 수행하느냐가 주요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보편적인 성장은 성장이 아니다"[^1]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좋은 관계나 환경은 과도한 의식적 노력 없이도 나를 성장하게 만듭니다.


셀프 퍼실리테이션(Self Facilitation)

어제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 "(사람이)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이라는 문장이 기억나네요.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저는 대부분 일을 마무리할 때 후회가 없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후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죠. 해본 일에 대한 후회와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입니다. 후자의 후회가 더 크다고 합니다. Self Facilitation은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돕는 시스템입니다. 방향을 잃지 않게 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지원하며, 잊고 있던 생각과 진행 상황을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나의 변화


Self Facilitation은 메모를 이용해 나의 생각을 포착하고 재사용 가능한 형태로 정리해주며, 필요한 시점에 큐레이션해주는 작업 구조입니다. '할 일 관리', '지식 관리', '결과물 제작'의 유기적인 작업 흐름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셀프 퍼실리테이션 구성 요소 : 할일 관리, 지식 관리, 글쓰기


책을 사기 시작했다


저는 독서보다 영화가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책 한 권 읽는 데 4~24시간 정도 걸리지만 머리에 남는 것은 한두 문장뿐이에요. 유용한 교훈이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은 영화로도 가능하니까요. 영화는 보통 2시간 정도면 충분합니다. 책 한 권 읽을 시간에 여러 편을 볼 수 있죠. 머리에 각인되는 것도 더 많다고 생각했어요. 대사, 분위기, 상황, 표정이 어우러져 기억에 오래 남죠. 이런 점에서 독서는 투자하는 시간 대비 얻는 것이 적다고 여겼습니다. 가성비가 낮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식 관리(Knowledge Management) 개념을 알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책을 샀습니다. 과거에 읽었던 책 중 제 가치관에 영향을 준 책들을 구매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유용한 정보나 세부적인 인사이트를 주워 담았어요. 떠오른 생각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나만의 지식으로 재구성하는 경험을 했죠. 즉시 인출할 수 있는 구조로 정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니, 책 읽기가 즐거워졌고 새로운 정보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어졌습니다.


관심사가 있어도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이유가 방법의 부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망각하지 않고 능력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꾸준히 사고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지식 관리 기법을 활용해 멈췄던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법을 익히니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배우는 일이 즐거워졌어요.



임기응변이 아닌 생각의 정수


그동안 제가 해온 모든 작업과 일들은 임기응변적이었습니다. 미루다가 마감일에 쫓겨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바빴죠. 일을 미루면서 현재의 행복을 지키려 한 것 같아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 역시 방법의 부재였습니다. 생각의 정수를 담아내는 방법이 없었던 거죠. 신뢰할 만한 작업 흐름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라, 부담스럽고 힘들어 보여 미루거나 회피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드는 대부분의 결과물에 가장 좋은 재료는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물론 생각이나 아이디어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진 않아요. 타당한지 검증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하죠. 보고서든 제안서든 자료의 나열이 아니라 생각의 정수가 담긴 산출물을 만들고 싶어합니다. 체계적으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절차와 도구가 있으면 어떨까요? 신뢰할 만한 절차나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어떨까요? 안정감을 얻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이런 조건이 마련되어야 실패를 밑거름 삼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발견하길 기대하고, 실패를 반길 수 있게 되죠. 실패가 더는 실패로 여겨지지 않게 되니까요.



모든 문제는 시간의 문제


"신이시여,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과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2]


관점에 따라 인생의 핵심 가치는 다양할 수 있지만,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만족(평온), 용기, 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속성은 서로 유기적이면서도 순서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산 정약용은 마음을 편안히 해야 정신이 맑아지고,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을 분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때가 되어야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되죠.


근래 들어 습정양졸(習靜養拙) 즉 고요함을 익히고 졸박함을 기르면서, 세간의 백천만 가지 즐겁고 뜻에 맞는 일들이 모두 다 자기 자신이 안심하기 곧 마음을 편안히 하고 기운을 차분하게 하는 것만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해지면 바야흐로 눈앞에 접촉하는 모든 일이 내 마음 안의 일이어서, 분하고 시기하고 소견 좁고 사나운 감정이 점점 소멸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눈도 이에 인해 밝아지고, 눈썹도 펴지며, 입술은 웃음을 머금게 됩니다. 혈맥이 화창해지고 사지도 편안해져서, 이른바 뜻 같지 않은 일이 있다 해도 모두 기쁘게 즐길 수가 있고, 일체의 헐뜯음과 꾸짖음, 굽실거림과 웅색함이 내 마음을 흔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뒤에는 능히 일을 당하더라도 용맹하여 도저히 막을 수가 없게 되니, 이것이 이른바 증자(曾子)의 수약(守約)입니다.[3] (다산 정약용, 만계에게 답함)


인생은 이미 알고 있는 문제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문제들로 가득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셀프 퍼실리테이션은 문제에 휘둘리거나 방황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여기서 문제란 어려움 뿐만아니라 목표나 과제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다면 부정적 감정에 빠지지 않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셀프 퍼실리테이션은 과거의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좋은 질문을 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해결책이나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적절한 질문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좋은 질문은 기억을 되살리고, 아이디어를 확장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놓친 부분을 깨닫게 해주죠. 좋은 질문을 만나면 답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즉, 모든 문제는 결국 시간의 문제로 바뀌게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는 타임라인이 그려지는 거죠. 명확하진 않더라도 방향은 정해집니다. 그 길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인공지능 시대와 셀프 퍼실리테이션


Self Facilitation은 지난 겨울에 처음 떠올린 개념입니다. 이 용어를 만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관련된 고민은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내가 알게 된 지식과 얻은 능력을 잃지 않고 잘 활용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늘 마음에 담고 있었죠. 순전히 게으름 때문이에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 효율을 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생산성'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Excel VBA를 배우며 하나씩 업무를 자동화하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노션(Notion)을 만났을 때는 "드디어!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내 모든 것을 저장하고, 결과물이나 콘텐츠를 만드는 공장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였어요. 실패와 좌절도 맛봤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싫은 일을 20분 하는 것은 큰 고통이지만, 자동화를 위해 3-4일을 고민하는 건 전혀 힘들지 않았거든요.


그동안은 재미가 원동력이었다면, ChatGPT를 만난 후로는 새로운 동기가 생겼습니다. 좀 더 진지해졌어요. 과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큰 위협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위에 대한 동기를 잃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되지만) 사람을 평가하는 두 가지 핵심 요소는 정체성(덕성)과 전문성이라고 해요.[4]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장 먼저 위협받는 직군은 예상[5]과 달리 화이트칼라 전문직입니다. 사무직이 먼저 타격을 입는 이유는 간단해요. 아직 로보틱스 기술과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죠.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전문성은 인공지능 및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뿐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마저도 필요 없어질지 몰라요.


2016년 한겨례 기사 - 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직업은? 

남은건 인간의 정체성이죠. 하지만 정체성은 전문성과 별개로 형성될 수 없습니다. 정체성은 미래에 대한 상상과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지니까요. 자신의 발자취에서 의미가 있는 경험들이 인생관에 영향을 미치게 되죠.[6]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런 경험을 할 동기를 찾기 힘들게 만듭니다.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요. 7살 아들이 자라 맞이할 세상에서 과연 무엇이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될지 가늠조차 안 됩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자료는 인공지능의 학습 재료가 되고 있어요. 인간은 삶의 의미와 재미를 잃어가는 한편, 우리의 행위는 인공지능을 키우는 데만 기여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유의미한 활동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바로 셀프 퍼실리테이션입니다. 지금까지는 재미였다면, 이제는 '생존'이라는 이유가 더해졌어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다운 삶을 오래도록 살아가려면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 인터넷상의 모든 문서를 읽을 수 있다 해도, 내 생각까지는 침투하지 못할 거예요. 따라서 결론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모을 수 있는 것 중 가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경험과 생각뿐입니다.




참고자료 및 참고도서


[1] 책, 프로패셔널의 조건 by 피터드러커

[2] 책, 나도 이제서야 알았다라는 거에요 by 제갈건

[3] 책,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 by 정민

[4] 책, 대통령의 글쓰기 by 강원국

[5] 웹 기사, 한겨래 - 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직업은

[6] 책, 기억의 뇌과학 by 리사 제노바




전체 목차

• 들어가면서

• 1부 : Self Faclitation 소개와 마인드 <- You are Here!

• 2부 : 지식 관리 - PARTS

• 3부 : 할일 관리 - HOPE

• 4부 : 결과물 만들기 - DRAW

• 5부 : 셀프 퍼실리테이션 작업흐름과 유지보수

• 6부 : 자신만의 작업구조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 부록 : 옵시디언(Obsidian) 레시피

• 마치며


지금까지 Self Facilitation 1부였습니다. 이제 뜬 구름 잡는 말은 줄이고, 다음글부터는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2부는 지식관리(Knowledge Managemen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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