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시디안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지난 글에서 도구의 중요성과 도구를 대하는 자세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전략이 달라지고, 그 전략에 따라 우리도 변화해 갈 것입니다. 저는 셀프 퍼실리테이션의 실행 도구로 옵시디언(Obsidian)을 선택했습니다. Obsidian을 사용하면서 느낀 한계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오늘은 옵시디언의 장단점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보편적인 기능, 가격 비교는 너무나 많은 글이 있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수첩, 다이어리와 같은 아날로그 도구부터 메모장, 원노트, 노션과 같은 다양한 디지털 도구가 있습니다. 세컨드브레인[^1], 제텔카스텐[^2] 등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노트간 연결 기능이 강조된 앱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앱들은 링크, 태그, 그래프 뷰 등의 기능으로 지식의 연결과 확장을 도모합니다. Roam Research, Obsidian, Logseq 등이 대표적이죠. 최근에는 AI 기술을 활용하거나, 메모간 연결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앱들도 나왔습니다. Scrintal, Napkin, Anytype, Capacities 등이 있겠네요.
많은 선택지 중에 어느 것을 고를까요? 기능, 가격을 고려하면 혼란스럽습니다. 프로그램마다 특화된 기능들이 모두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만의 기준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9만 개' 메모가 있어도 원활하게 동작할 수 있는가입니다. 저는 이 기준으로 Obsidian을 선택했습니다. 큰 판단 기준을 마련하면 도구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90,000개의 메모가 기준이 된 것은 독일 사회학자 니콜라스 루만 교수 때문입니다. 루만은 제텔카스텐이라는 자신만의 메모 시스템을 통해 방대한 양의 메모를 축적하고 연결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50권의 책, 6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할 수 있었죠. 루만은 1951년부터 체계적인 메모 습관을 들였고, 1993년 교수직을 은퇴한 이후로도 연구를 계속하며 대략 9만 개 메모를 쌓았습니다.
니콜라스 루만이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기록해 나간다면 수만 개 정도의 메모는 축적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서 9만 개 메모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로 Obsidian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9만개 메모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크리티컬한 이슈는 빠른 속도와 인출 가능한 작업흐름입니다.
Obsidian은 로컬 기반으로 동작해 인터넷 연결 없이도 대용량 메모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앱의 성능은 사용하는 기기의 성능에 따라 달라지지만, 인터넷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쾌적한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실제로 Obsidian, Logseq, RemNote, Craft의 속도를 비교한 한 기사
[4]에 따르면, Obsidian은 Importing, Loading, Opening Page, Opening Backlinks, Paste Content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대용량 메모 처리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연결 없이 동작하는 프로그램의 또 다른 장점은 무엇일까요? 더 나은 하드웨어를 사용할수록 더 나은 사용감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3년 후, 10년 후 더 나은 노트북, 테블릿, PC 기기를 사용할꺼에요.
Obsidian은 메모를 Markdown 형식으로 로컬 저장소에 저장합니다. Markdown은 일반적인 텍스트 에디터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쉽게 열 수 있는 형식이며, HTML로도 손쉽게 변환할 수 있습니다. Obsidian으로 작성한 메모가 프로그램에 종속되지 않고, Obsidian 서비스가 종료되더라도 다른 도구를 이용해 메모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또한 Obsidian의 파일들은 물리적으로 자신의 기기에 저장되므로, 사용자가 메모의 소유권을 완전히 갖게 됩니다.
반면 TXT나 MARKDOWN 같은 보편적 파일 형식이 아닌 독자적 포맷을 사용하거나, 클라우드 기반으로 동작하는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작성한 메모를 서버에 저장합니다. 이 경우 사용자는 자신이 공들여 작성한 메모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되고, 다른 형식으로의 변환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Obsidian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Obsidian은 다양한 테마, CSS 커스터마이징, 1000개 이상의 플러그인을 지원합니다. 뿐만 아니라 TypeScript와 JavaScript를 활용해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직접 개발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작업 흐름을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프로그래밍에 대한 진입장벽이 있을 수 있지만, ChatGPT와 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AI 도구들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만의 작업 흐름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Obsidian은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옵시디언 단점과 한계도 명확합니다.
옵시디언은 로컬 저장소를 기본으로 사용해 클라우드 기반 동기화는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직접 설정해야 합니다. 현재 유료서비스인 Standard와 Plug 모델은 각각 1GB와 10GB 용량을 지원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직접 설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술적 장벽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소하거나 큰 문제에 대응하기 힘들 수 있어 옵시디언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이 바로 동기화입니다.
창의성이 발휘되는 요소 중 하나는 한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Obsidian은 창의적인 도구 활용 가능성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각종 테마, 플러그인과 커스텀 코드 적용이 가능한 Obsidian은 한계가 없는 프로그램으로 인식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나 도구가 생기면 'Tips and Tricks'라는 키워드로 검색하고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옵시디언으로 기발한 활용(Tricks)을 본 적은 없습니다. 대부분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쉬운 방법,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인식되지 않아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귀결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다면, 굳이 느낄 필요 없는 장벽이나 상대적인 좌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계가 없어 보이는 특성 때문에 창조적으로 활용할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합니다.
이전 '한계가 없음'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입니다. 저는 그림을 못 그립니다. 글씨도 악필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메타인지가 확실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공간으로 오면 이런 메타인지가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상에서 보는 다른 사람들의 과정과 결과는 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노션(Notion)을 쓰면서 제목의 크기, 줄 간격, 탭 간격 등에 대해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디자인 자체가 깔끔한 이유도 있지만, 제가 불만을 가져봐야 변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요 불만은 속도였습니다.)
하지만 Obsidian은 얘기가 달라집니다. 고칠 수 있기 때문이죠.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아집니다. 여러 테마를 둘러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죠. 조금만 건드리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보를 관리하는 구조 역시 같은 문제에 직면해요. 인플루언서의 결과물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전에 현혹되어 따라가다 보면, 배워야 할 것이 많고 진입장벽이 높다는 인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자신의 필요성과 목적을 먼저 숙고해야 하는데 복잡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죠. 복잡하고 정교한 시스템일수록 유지 비용이 많이 들고 리스크가 큽니다.[5] 왜 이런 시스템으로 발전해왔는지 모른다면, 무너뜨리고 다시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버릴 수 있습니다.
옵시디언 초기 슬로건은 '당신을 위한 두번째 뇌, 영원히(A Second Brain for you, Forever)'였습니다. 티아고 포르테가 말한 세컨드 브레인[1-1]을 구현하기 위한 적합한 툴이라는 뜻이었죠. 지금은 '생각을 날카롭게 하라(Sharpen Your Thinking)' 입니다. 개인적으로 지금 슬로건이 마음에 듭니다. 저는 이 문구가 '생각의 날을 벼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바른 길을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망득홍법은 자칫 이것저것 집적거리기만 하는 잡학으로 흐르기 쉽다. 다양한 관심사에 대해 긴장을 놓치 않으면서 정밀함을 유지하려면, 평소에 생각의 날을 벼리고 정리를 습관해야 한다. 다산은 끊임없이 초서하고 틈만나면 정리했다.'[6]
만약 우리가 화려한 활용법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작업흐름을 하나씩 개선해 나갈 수 있다면, 옵시디언은 다양한 관심사를 수집하면서도 링크와 태그로 정리하고, 관련 메모를 살펴보며 핵심을 꿰뚫어 보고, 생각을 발전시키는 좋은 도구가 될 것입니다. 쾌적함은 덤이구요. 니콜라스 루만이나 다산 정약용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더 나은 출발점에서 시작 할 수 있습니다.
[1] 세컨드 브레인 - 디지털 도구와 시스템을 활용하여 정보를 조직하고, 개인의 기억력과 생산성을 강화하는 개인 지식 관리 방법론(티아고 포르테가 고안한 명칭)
[2] 제텔카스텐 - 아이디어와 지식을 카드 형태로 기록하고 서로 연결하여 복잡한 지식 구조를 구축하는 개인 지식 관리 시스템
[3] 위키페디아 - 니콜라스 루만
[4] TfT Performance: Interim Results
[5] ~⎡�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097p⎦복잡한 시스템은 만드는데도 비용이 많이 들고, 유지보수 하는데는 비용이 더 든다.
[6] ~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 461p⎦ Obsidian 소개 - Sparpen your thinking은 생각의 날을 벼리는 것
다음글은 1부의 마지막입니다. 나만의 Self Facilitation 작업 흐름을 가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정리해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