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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Apr 04. 2024

왜, 무엇을, 어떻게 메모해야 하는가?

지식관리 - 할 일이 아니라 한일을 기록

지식관리 산출물은 지식 네트워크입니다. 그렇다면 지식 네트워크는 무엇일까요? 지식 네트워크는 바로 나만의 해석 체계를 말하는 것이죠. 나의 관점대로 수집된 지식관계를 정의 하는 것입니다. 지식 네트워크의 최소 단위는 메모입니다. 오늘은 메모가 필요한 이유, 기록해야 할 내용, 기록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왜 하필이면 지식인가?


앨런 켄트로(Allen Kentro)의 지식 삼각형(Knowledge Triangle)은 정보, 지식, 지혜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모델입니다. 이 삼각형 꼭대기에는 지혜가 자리 잡고 있죠. 우리 인생에 필요한 건 지혜인데, 왜 지식 관리(Knowledge Management)를 해야 한다고 할까요?

The Knowledge Triangle[1]

지혜란 무엇일까요?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상담학 사전에서는 '대안들 사이에서 효과적인 선택을 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죠. [2] 직관, 창의성, 융통성 등도 지혜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언제 '지혜롭다', '창의적이다'라는 소리를 듣나요? 스스로 그렇게 여길 때도 있지만, 대개는 타인의 평가입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거죠. 구독자 200만 명 이상의 유튜브 채널 중에는 1분도 안 되는 짧은 영상으로 유용한 정보를 명료하게 전달하는 곳이 있습니다. [3] 댓글에는 '꿀팁이에요', '삶의 지혜네요'라는 반응이 달리죠. 지혜로운지 여부는 시청자가 판단합니다. 어떤 이에겐 이미 알고 있는 정보지만, 다른 이에겐 지혜가 될 수 있죠.


지식 삼각형을 위에서 보면, 지혜는 지식의 일부분이다

다시 지식 삼각형을 살펴볼까요? 지혜가 최상위에 있어서 가치가 가장 높고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혜는 지식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죠. 지혜는 특정 상황이나 관계 속에서 지식을 토대로 적절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행동하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상황이나 관계가 없다면 지혜는 존재할 수 없어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건 오직 지식뿐입니다. 지식은 글이나 영상 같은 형태로 실존하니까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나의 소유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왜 메모해야 하는가?


지식관리 흐름의 끝은 재구성입니다. 재구성이란 시작과 끝이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재구성을 위한 재료가 필요합니다. 이 재료가 되는 것이 바로 메모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업을 들으며 노트에 필기를 합니다. 노트는 보통 시간순이나 강의 계획에 따라 기록되죠. 하지만 작성된 노트를 내가 이해한 대로 재구성하려면 조작 가능한 단위로 해체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유연하게 연결하기도 힘들고, 다시 쓰는 것도 부담이 되죠.


독일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자신이 공부하며 요약한 카드와 그 카드를 정리하는 카드 박스가 꼭 놓여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노트를 썼다. 내 한국식 학습 방법의 문제가 그 노트에 있었다. 노트와 카드, 이 둘 사이에는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편집 가능성editability이다. 카드는 자기 필요에 따라 다양한 편집이 가능한 반면, 노트는 편집이 불가능하다. 내가 독일에서 배운 것을 하나로 표현하라면 바로 이 편집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전부다.

<책, 에디톨로지 SE> 중에서...


저는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으면 '클로바 노트' 앱을 켜고 녹음을 시작합니다. 떠오르는 대로 계속 말해봅니다. 잘 떠오르지 않으면 관련 메모나 자료를 보면서 생각나는 걸 이야기하죠. 더 이상 떠오르는 게 없을 때까지 모조리 쏟아냅니다. 그래야 내 안에 있던 게 무엇인지 드러나거든요. 때론 뻔한 내용일 때도 있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생각과 관점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뇌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유레카! 내가 드디어 찾았다!"를 외치며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한 고대 과학자 아르키메데스 일화는 유명합니다. 왕관을 손상하지 않고 순금인지 판별하라는 왕의 명을 받고 고민하던 차에 목욕탕에서 비중의 원리를 깨닫고는 그 자리에서 뛰쳐나간 거죠. 깨달음을 얻었다면 재빨리 기록해 두어야 함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기록하면서 동시에 그 생각이 타당한지도 곱씹어 보게 되죠. 제가 클로바 노트를 쓰는 이유도 사라질 듯한 아이디어를 재빨리 붙잡아 텍스트로 남기기 위해서예요. 기록해야 그 깨달음이 진정 내 것이 됩니다.


숀 케아렌스는 "세상의 모든 지적 시도는 하나의 메모에서 시작된다"라고 했어요.1 메모가 없다면 떠오른 아이디어나 유용해 보이는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겠죠.


독서를 하든, 공부를 하든, 일상을 살아가든 문득 깊은 공감이나 감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메모는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기도 하죠. 그리고 이 정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감동을 주는지,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 또한 기록하는 과정이죠.[4]




무엇을 메모해야 하는가?


저는 좀 게으른 편입니다.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요. 나에게 도움 될 것 이 아닌 일에는 크게 동기를 느끼지 못합니다. 가치 있는 행동을 하거나 쉬기를 원합니다. 메모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민 교수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작업에 앞서 쓰임새를 생각하라. 왜 이 작업을 하는지,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먼저 점검하라. 현장에서의 활용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작정 하고 본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하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도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거둘 성과가 없다. 처음엔 비슷해도 중반 이후에는 정보가 뒤얽혀서 손댈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또 알맹이는 속이 꽉 찬 것이라야 한다.

<책, 다산 선생 지식 경영법> 중에서...


알맹이란 무엇일까요? 일단 알맹이가 아닌 것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알맹이가 아닌 것

샤년 엔트로피


저는 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정보통신 이론 중에 '섀넌 엔트로피(Shannon Entropy)' 공식이 있죠. 이 공식은 정보의 불확실성이나 무질서도를 측정합니다. X축 'P'는 가능성, 즉 사건이 발생할 확률을 뜻하고, Y축 'I'는 정보량, 쉽게 말해 정보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1에 가까울수록 참신하고 새로운 내용이라는 뜻이죠. '공부 열심히 해야 대학 가고 취직한다'와 같은 조언은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라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ChatGPT에는 대화 스타일을 지정하는 Custom Instruction 옵션이 있습니다. 저는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같이 뻔한 대답 말고, 하나의 입장을 정해 이야기하라"는 문구를 기본으로 씁니다. 진부한 내용, 불필요한 수다로 시간과 토큰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요.


알맹이에 해당하는 것


무엇을 메모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넘쳐납니다. '감동과 울림을 주는 것', '확장 가능한 지식', '유용해 보이는 정보'를 기록하라는 등 각양각색이죠. 하지만 조언을 일일이 따지며 메모 여부를 결정할 순 없죠.


저만의 철칙은 오직 하나, '할 일이 아닌 한 일을 기록하라'는 겁니다. 신체로 겪은 직접 경험이든, 독서나 강연 같은 간접 체험이든 이미 지나온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메모하는 거죠.


꿈, 계획, 해야 할 일 같은 건 실체 없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아직 해보지 않아 가치를 가늠할 수조차 없어요. 그저 예상이고 가능성일 뿐이죠. 반면 경험한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시간이 흘러야 실체를 알고 문제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치 판단의 대상은 과거에 있다고 봅니다. 막연한 기대가 아닌, 오감으로 얻은 깨달음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할 일은 지식 관리와 별개로 할 일 관리(HOPE) 영역에서 다뤄야 마땅합니다. 관리 대상과 방식이 다르니까요.


인공지능 시대에 자신만 가질 수 있는 희소성 있는 정보와 지식은 오롯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입니다. 깨달음의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해 두는 게 특히 중요해요. 그래야 미래의 내가 과거의 통찰과 만날 수 있습니다. 기록된 깨달음이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거죠. 반면에, 발췌만 하거나 자료만 남겨 놓는다면 자료 검토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죠.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 그 자체를 저장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집한다는 표현이 적절하기도 하겠네요. 저는 임재범 노래를 원곡 이상으로 소화해 낸 커버 가수를 아직 본 적이 없어요. 세상엔 자기 나름의 해석으로 완전히 소화하기 어려운 걸작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강렬한 감동을 주는 명작들이 많이 있죠. 단 한 장의 그림이나 한 문장으로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흩어진 정보를 꿰어주는 결정적 지식은 반드시 수집해 두어야 합니다. 우주의 역사가 응축된 사진, 인체 해부도, 세계사 연표 같은 것들요.




어떻게 적어야 할까


메모 자체는 고된 노동입니다. 떠오른 생각을 미루지 않고 즉시 기록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고요.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는 것, 쓰는 과정 자체도 고통입니다. 미래의 내가 보았을 때 이해 할 수 있도록 가공하는 과정도 노동이죠.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도록 적절한 공간에 두는 것도 신경 써야 합니다.


결국 읽기는 쓰기로, 쓰기는 다시 읽기로 선순환되는 과정에서 내 몸이 노동을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통스러운 노동, 몸이 관여하는 정리의 시간을 갖지 않으면 읽은 책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중략)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작가의 사유 체계를 따라가되 다시 내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책, 책 쓰기는 애쓰기다> 중에서..


메모 활동을 장기적으로 하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저항을 최소화해야 해요.


도구 구비


아이디어, 해결책을 떠올리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질문을 품고 방황하는 것입니다. [5] 방황이란 의미는 편안한 상태를 말합니다. 강한 몰입이 아니고 한 발 떨어져 있는 것이죠. 여유로운 상태가 되면 원격 연상이 시작됩니다. 뇌는 문제와 관련된 내용을 탐색하기 시작하죠. 관련된 내용을 발견하면 생각의 공간으로 기억을 던져줍니다. 다시 말해서, 생각이 떠오르는 시점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뇌가 결정하죠. 즉, 언제 떠오를지 모릅니다.


만약, 특정 도구에만 기록하거나. 디지털 기기만 고집하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에 대응하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즉시 메모할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컴퓨터가 있는 책상이라도 즉시 메모할 수 있는 펜과 종이는 있어야 하죠. 길을 가다가 바로 메모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의 빠른 메모 기능을 사용하거나, 즉시 녹음 시작할 수 있도록 설정해두는 것도 좋습니다.


단순 반복 가능한 환경


우리는 힘든 일도 자동으로 하게 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습관이죠. 반복 가능하다면 습관이 만들어집니다. 동작 패턴이 저장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물 흐르듯 빠르고 정확하게 동작을 수행할 수 있죠.


같은 메모 양식, 메모지와 필기구의 위치, 메모를 하고 나서 처리되지 않는 메모를 보관하는 곳을 지정해 두면 습관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메모하고 보관하는 행위는 자동으로 하면서, 온전히 생각을 알아차리고 적는 행위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문장으로 쓸 필요 없다


메모는 일차적으로 자신이 다시 보는 것이죠. 개인적인 용도입니다. 또한 메모의 목적은 기록을 활용해서 재구성하는 것이죠. 재구성한 결과로 여러 가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요. 즉, 기록할 때의 맥락과 활용될 때의 맥락은 다릅니다. 따라서, 보고하거나 배포하는 것처럼 완벽한 문장으로 쓸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결과물 관점에 따라 이 메모를 참고해서 재가공하기 때문이죠.


현재 상황에 맞게, 스타일에 맞게 적으면 됩니다. 바쁠 때는 간결하게 쓸 수 있습니다. 간결하게 쓰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줄글 형태로 써도 되죠. 두서가 없어도 됩니다. 두서없이 적고, 시간이 없다면, 미래의 나를 위해 중요한 곳에 하이라이트만 하면 됩니다. 미래의 나는 그 흔적을 보고 과거의 생각을 빠르게 회상할 수 있을 거예요.




참고 자료


[1] Medium - The Knowledge Triangle

[2] 네이버 상담학 사전 - 지혜

[3] 유튜브, 1분 미만 채널

[4] 유튜브, 유시민이 말하는 글쓰기의 중요성

[5] 유튜브, 학습시간 절반으로 줄어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는 이게 답이에요.




이번 글에서는 메모 작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메모는 작성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메모로 지식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초(뼈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초를 의미합니다.


다음 글은 9만 개의 메모를 한 니콜라스 루만의 제텔카스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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