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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민 Mar 22. 2023

소개팅 앱에서 소모임 앱으로 갈아타다

Before '잘노공'

이상적인 모임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는 모르는 사람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연애는 싫지만 사람은 만나고 싶어."

 

 데이트라는 놀이에 맛 들어 별 의미 없는 두 달용 연애를 반복하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는 기억도 안 나는 어떤 만남을 막 끝냈을 즘, 드디어 연애에 싫증이 났다. 꽤 오랜만에 자발적 싱글이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에 싫증이 난 상태는 아니었다. 혼자서도 잘 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더 즐거운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당당한 싱글이지만 심심한 싱글이긴 싫었다.     


 모임을 찾은 이유였다. 미래에 벌어질 일들과 별개로 당시 내 의도는 정말 순수했다.     


 데이트 상대를 애플리케이션에서 수급했던 버릇은 어디 안 갔다. 모임도 앱에서 탐색했다. 데이트 앱과 달리 모임 앱은 많지 않았다.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싶은 앱은 다섯 손가락을 채우지 못했다.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기에 가장 다운로드 수가 많았던 '소모임'이라는 앱을 받았다.      


 '소모임' 앱은 나이, 관심사, 지역을 설정하면 그에 적절한 모임들을 추천해 준다. 모임은 크게 '노는 모임'과 '공부하는 모임'으로 나뉘었다. 독서, 영화, 등산, 달리기 등 공통된 취미를 즐기는 '노는 모임'과 외국어, 경제, 심리학, 역사 등 공통된 분야를 '공부하는 모임'이 주를 이뤘다.      


 노는 모임 중에는 특별한 주제 없이 '친목'만을 내세운 모임도 많았다. 당시 특별한 취미나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나는 이런 친목 모임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첫눈에 마음에 드는 모임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음식은 넘치는데 먹고 싶은 메뉴는 별로 없는 뷔페에 간 기분이었다.


 친목 모임은 대부분 연애 상대를 찾는 하이에나들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들은 대놓고 '훈남훈녀' '공무원' '전문직' '대기업'을 찾았다. 가입할 때 사진 인증이 필수인 곳도 많았다. 키에 제한을 둔 곳도 있었다. 남자 회원들이 몰렸는지 '남자 마감'이라는 문구를 걸어놓은 곳도 종종 눈에 띄었다. 이런 곳들을 거르다 보면 갈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모임장의 프로필 사진이 주는 '기운'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었다. 나랑 잘 맞을 것 같은 기운을 감지하는 근거는 내 경험뿐이었지만, 나름 신중히 고르고 골랐다.


 수많은 모임을 둘러본 끝에 첫날 가입한 모임은 두 곳이었다.


 하나는 직장인 친목 모임이었다. 당시 광화문으로 출근했기 때문에 퇴근 뒤 참석하기 좋은 종로 지역 모임에 가입했다.


 신중한 선택의 결과는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다. 세 번 나간 모임은 즐거웠고, 모임장을 비롯해 운영진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모임 안에서 내가 영화벙을 열어서 모임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입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모임장이 갑자기 모임을 정리한다고 공지했다. 사람들은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고 모임을 떠났다. 그렇게 첫 모임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다른 하나는 자율스터디 모임이었다. 자율스터디라는 모임 형태는 생소했지만 신선했다. 같은 공간에 모여서 각자 공부나 일을 하는 모임이라니, 꽤 참신하다고 느꼈다. 모임 사진첩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공부하는 사진으로 가득했다. 없던 공부 의욕이 일었다. 마침 공부거리도 있었던 때라 넘치는 의욕을 안고 모임에 가입했다.

      

 아차, 자율스터디라는 단어에 혹해서 방심했다. 모임장의 '기운'을 확인하는 과정을 깜빡해 버렸다. 방심에는 역시 대가가 따랐다. 모임장인 이 남성은 초면도 아니고 '노'(no)면인 내게 개인톡으로 모임 관련 고민거리를 쏟아냈다. 모임 형태가 참신하고 유익해 보인다는 칭찬을 괜히 했다고 후회하던 순간, 이 모임장은 갑자기 "모임을 정리하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아쉬워하는 내게 그는 "모임을 맡아보겠냐"고 물었다. 일면식도 없는 신입 모임원에게 참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강남에서 가장 큰 자율스터디 모임을 맡아달라는 제안은, 참으로 찝찝했다. 입사하자마자 사장 자리에 앉으라면 회사 상태부터 의심하기 마련이다. 차라리 내가 새로운 자율스터디 모임을 만들어보겠다고 한 뒤 그 불편한 모임장과는 연을 끝냈다. 아니, 끝난 줄 알았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이 자율스터디 모임은 훗날  '잘노공'이 탄생하는 데 많은 아이디어를 줬다. 자율스터디라는 모임 형태, 스터디 후 뒤풀이, 사진첩에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을 올리는 마케팅 기술, 모임장이라도 노면인 모임원에게 쓸데없이 개인톡을 보내지 말자는 교훈까지.


 이 모임장은 몇 주 뒤 '잘노공'의 세 번째 정모가 열린 날, 다시 등장했다. 다행히 오프라인 모임에 나온 건 아니고, 소모임에 가입해서 모임 채팅방에 나타났다. 그는 모임 채팅방에서 "잘 운영하고 있냐"는 주제넘는 오지랖을 시도했다. 그러더니 또 개인톡을 남발하며 "여기 회원 절반이 자기 모임 회원이었던 사람들"이라고 떠들었다. 자율스터디라는 모임을 본인이 창조한 것도 아니면서 내가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이라도 얹고 싶었던 걸까. '덕분에'란 말이 듣고 싶은 듯했지만 딱히 해 줄 이유가 없었다. 성공적인 정모 4차 자리에서 그 카톡을 받은 나는 적당히 대충 상대하다가 결국 그를 차단했다. 노면인 주제에 참 인상 깊게 별로인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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