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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연표류자 Feb 17. 2024

아쉬운 것, 지키고 싶은 것, 감사한 것

그중에 제일 많은 건 감사한 것

1. 항상 시도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노래 배우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귀에 꽂히는 노래가 생기면 가사와 멜로디를 외워서 따라 부르는 것을 즐겼다. 좋아하는 몇몇 가수는 노래를 전부 다 꿰고 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팝송에 빠져 가사로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으며, 노래를 부르다 보니 춤도 추고 싶어져 안무 영상을 틀어놓고 몰래 춤 연습을 하기도 했다.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잠들기 전까지 쉬지 않고 노래를 불러서 노래 좀 그만 부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었다. (물론,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명절이나 휴가철에 가족끼리 장시간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갈 때는 플레이리스트 마냥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성대로 자동 재생해서 가족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중학교 때는 가족들 다 자는 새벽에도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내 방 베란다에 나가 베란다 문을 닫고 그 차가운 바닥 위에 맨발로 서서 떨면서 노래를 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 기회가 있었다면, 더 정확히는 부모님이 내게 기회를 주었다면 초등학교 때부터 노래를 배웠을 것이다. 내가 여전히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 열정이 1~2년 만에 식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장기간 배우면서 실력을 키웠더라면 노래하는 것을 더 즐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엄마는 종종 내 노래를 듣고 노래를 못 부른다고 (가끔은 깔깔 웃으면서) 놀렸는데, 내가 공부를 포기하고 노래를 하겠다고 할까봐 걱정되어서 그랬던 거라고 한다. 엄마는 공부에만 열중하며 공부 외의 것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그 ‘평범한’ 삶을 무척이나 중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때문에 노래에 대한 열정이 꺾일 만도 했지만, 당시의 나는 기죽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노래를 꽤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겨서 대체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할 수 있는지를 엄마 몰래 연구하기 시작했다.) 만일 그때 노래를 배웠더라면 나는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지금보다 더 다재다능하고 멋진 사람이 되었을 텐데, 솔직히 많이 아쉽다.


그래도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워낙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라 노래 외에도 연기, 현대무용 등 앞으로 배울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나의 어릴 적 순수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꼭 노래를 배워보고 싶다. 지금 듣고 있는 연기 수업이 종료된 후 생활비에 여유가 생긴다면 보컬 학원에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다. 올해 안에는 다닐 수 있을지, 또 올해가 아니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20대가 가기 전에 한 번쯤은 노래를 배울 것이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저 실망하고 낙담하던 어린 아이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주체적으로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어른이 되었음을 몸소 확인하려 한다.



2. 당신이 인생을 걸고 지켜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미래의 내 가족

훗날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낳게 되면, 나의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나의 가족을 지킬 것이다. 가족의 안정적인 생계를 위해 사회생활을 성실히 하고, 배우자나 자녀와 갈등이 깊어져 서로 등을 돌릴 때에는 먼저 손을 내밀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폭력 없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여 건강한 방식으로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며, 이 세상 어떤 이의 말보다도 내 가족의 말을 믿을 것이다. 나는 성숙한 배우자이자 성숙한 부모로서, 내 가족의 행복을 삶의 제1목적으로 삼을 것이다. 함께해서 행복하고 곁에 있어줘서 고마운, 그런 배우자이자 부모가 될 것이다.  



3. 당신을 가장 감사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남다른 의지를 타고난 것

나의 삶을 좋은 삶으로 가꾸어나가는 데 있어 남다른 의지를 타고난 것에 감사한다. 내가 어떤 일에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임하는 사람인 것에 감사한다. 나는 타고난 의지를 가졌기에 공부도 잘할 수 있었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공부는 노력의 영역보다는 재능의 영역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우선 내가 또래에 비해 비상한 두뇌를 갖고 태어났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고등학생 시절까지 내가 공부해온 긴 여정을 돌이켜보면, 내가 보통의 학생들보다 강한 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는 타고난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공부가 재능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상당 부분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공부를 잘했던 사람이 아빠라서, 아마 아빠에게 물려받은 재능인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었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영어 공부법을 스스로 터득해 영어를 좋아하고 잘하게 되었다. 중학교 때는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자극 받아 경쟁 의식을 불태웠고, 목표 고등학교가 생긴 후로는 혼자 설명회를 다니며 입시를 철저히 준비했다. 고등학교 때는 몸이 아픈 상황에서도, 그리고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3년 동안 성적을 꾸준히 올렸다. 이 모든 과정은 타고난 의지가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것임이 자명하기에, 나는 나의 타고난 의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

어렸을 때는 집안 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조부모님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오직 아빠의 월급만으로 네 가족이 생활해야 했고, 빠듯하게 생활해야 할 때가 많았다. 당시 아빠의 월급은 네 가족이 생활하기에 부족한 수준이었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즈음에는 아빠가 경기도로 발령받는 등 아빠의 직업이 불안정하던 시기도 있었다. 부모님이 대출금 이야기를 할 때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엿들었고, 먹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선뜻 말하지 못했다. 눈치 없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 쓰는 동생이 밉기도 했었고, 부모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동생에게 나 대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해달라고 시키기도 했었다. 시간이 더 흘러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내가 학원에 다니는 것이 우리 집에 부담이 된다고 생각하여 학원을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하기를 택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내가 아빠가 벌어온 돈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따지고 부담을 느낄 바엔 혼자 공부하는 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랄 수 있게 되었다. 내 머릿속의 우리 집은 여전히 생활비가 빠듯하고 매사에 절약해야 하는 집이지만, 이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등록금이 비싼 사립 고등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었고, 사고 싶은 책이 생기면 학교 문구점에서 주저 없이 카드를 내밀 수 있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생활을 하고 있고, 매달 생활비를 받고 있어서 자취도 할 수 있으며, 과외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약소하게나마 저축도 하고 있다. 과정이야 순탄치 않았지만,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늘 감사하다.  


좋은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것

좋은 대학에 다닐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낀다. 훌륭하신 교수님들의 수업을 매일같이 듣고, 훌륭한 학우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과분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늘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한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 만큼 학교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갖게 되고,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실로 나를 더 멋지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대학 입학 후, 학교는 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가 되었다. 덕분에 어딜 가도 기죽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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