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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월 May 28. 2024

부끄러워하는 현대인

김승옥 [무진기행]


 감수성의 혁명, 진정한 한글 세대를 이룬 작가 등 많은 화려한 수식어가 김승옥이라는 작가를 가리킨다. 탁월한 문장력과 특유의 감성으로 수많은 명문장을 만들어낸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다.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이후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생명연습], [서울의 달빛 0장] 등등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남겼다. 본문에서는 그중에서도 작가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진기행]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무진기행]은 제약회사에 다니는 ‘윤희중’(이하 ‘나’)이라는 30대 남성이 휴식차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가 만나는 사람들과 사건, 그리고 그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다.


 [무진기행]은 보통 ‘무기력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필자 역시 이에 동의하나, 본문에서는 작품의 문장을 직접 보며 조금 더 추가적인 해석을 다룰 예정이다.   



    줄거리 이야기거리  

 작품의 초반부에서, 주인공은 고향인 무진에 갈 때마다 심한 공상에 빠진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대비되게 그는 오히려 ‘무진에서는 항상 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경험에 의한 조건반사였다.’라는 말을 한다.


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이었다.


 그의 청년 시절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쟁에 나가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 홀어머니에 의해 골방에서 숨어 지내야 했던 시절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작품의 숨겨진 주제인 ‘부끄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

 ‘스스로를 모멸하고 오욕하고 웃으며 견디는 내용들이었’던 그의 일기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자신의 청년 시절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숨어 지낸 것. 그러한 기억으로 가득 찬 청년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자신의 고향, 무진을 연상했던 것이다.


 “자네, 하 선생을 좋아하고 있군.”

 내가 물었다. 박은 다시 그 해사한 웃음을 띠었다.

 (중략)

 “자네가 그 여선생을 좋아한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야 해. 잘해 봐.”

 “뭐 별로…”

 박은 소년처럼 말을 더듬거렸다.

“그 속물들 틈에 앉아서 유행가를 부르고 있는 게 좀 딱해 보였을 뿐이지요. 그래서 나와 버린 거죠.”


 후배 ‘박’과 함께 친구 ‘조’의 집으로 가 하 선생을 만나고 그녀의 노래를 듣는 장면들은 모두 ‘박’의 입을 통해 나온 ‘속물들’이라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박’ 역시 자신이 말한 ‘속물들’의 비위에 맞추는 스스로의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는 도중에 자리를 뜬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그가 생각하는 ‘속물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모임이 끝난 후 가는 방향이 같은 하 선생과 함께 집으로 향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중 하 선생은 자신을 서울에 데려가달라는 부탁을 하고 ‘나’는 거절한다. 다음날 바닷가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끝으로 두 사람은 헤어진다.


 나는 얼마 전까지 그 여자와 주고받던 얘기들을 다시 생각해 보려 했다. 많은 것을 이야기 한 것 같은데 그러나 귓속에는 우리의 대화가 몇개 남아있지 않았다.(중략)그 여자는 서울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그 여자는 안타까운 음성으로 얘기했다. 나는 문득 그 여자를 껴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아니, 심장에 남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 뒤 담배를 피우고는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2시, 3시가 지나고 새벽 4시에 통금 해제 사이렌이 울릴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고가 그 사이렌에 흡수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잠에 들었다.

 다음날 바닷가로 가던 중 ‘나’는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보게 된다.



 나는 문득, 내가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고 있었던 게 이 여자의 임종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는 이 여자가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아프긴 하지만 아끼지 않으면 안 될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말을 통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타인에게도 연민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김승옥 작가는 주인공의 이 말을 통해 이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서울, 1964년 겨울]에서도 마찬가지로, 작가는 타인에게 냉소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하는 글을 자주 썼다. 그러나 [무진기행]의 주인공에게는 타인의 일에도 연민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함으로써 현대인들에게도 타인에 대해 이러한 자세를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 뒤 ‘나’는 바다로 가 하 선생을 만난다. 하 선생은 서울에 가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다가 침묵하더니 돌연 마음을 바꿔 서울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선생님, 저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아요.”

 “우리 서로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해.”

 “거짓말이 아니에요.”

 여자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어떤 갠 날] 불러드릴게요.”

 (중략)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


 여기서도 우리는 현대인의 특징을 하나 엿볼 수 있다. 바로 감정 표현에 어색함을 느끼는 것이다. 특히 그 감정이 솔직할 수록, 우리는 표현하기를 주저한다. 작가는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사랑한다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라는 멋들어진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급히 서울로 올라오라는 아내의 전보를 받은 ‘나’는 하 선생에게 보낼 편지를 하나 쓴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찾아가서 말로써 오늘 제가 먼저 가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대화란 항상 의외의 방향으로 나가 버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써 알리는 바입니다.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제 자신이기 때문에 적어도 제가 어렴풋이나마 사랑하고 있는 옛날의 저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후략)”


 ‘나’는 드디어 하 선생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작가가 그린 이상적인 현대인의 모습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봤다. 또 한 번 읽어 봤다. 그리고 찢어버렸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결국 그는 편지를 찢어버림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다시 억누른다. 그러고는 서둘러 무진을 떠난다.


 덜컹거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진기행]의 주제에 대하여  

 이 소설에서 필자가 느낀 가장 큰 주제의식은 바로 ‘현대인의 부끄러움'이었다. ‘나’로 대표되는 현대인들은 모두 제각각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


 작품에서 ‘나’는 김승옥 작가가 생각한 현대인의 표상으로서 자신의 어둡던 과거를 항상 무진과 연결시키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동시에 감정 표현에 있어 서투른 모습은 그가 그저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닌 한 명의 인간, 혹은 나 자신으로까지 느껴지게 하며 우리에게 서늘한 감각을 선사한다.


 이렇듯 작가는 점점 감정 표현에 갈증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건 아마 우리의 감정 표현에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강하게 개입해서일 것이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심지어는 사랑한다는 말까지. 우리는 ‘부끄럽다’는 말로 얼마나 많은 감정들을 시간의 저편으로 던져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감정의 표현을 재촉한다. 1964년에 발표된 이 짧은 단편이 왜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우리에게 읽혀왔는지를,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꼈으면 하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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