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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월 May 27. 2024

결국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을 보고 왔다. 일본에서는 개봉 전부터 하야오의 은퇴작인데다 예고편도 없다는 기사들이 쏟아지며 상당한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바람이 분다], [모노노케 히메] 등 일본을 넘어 세계 애니메이션사에 남은 굵직한 작품을 연출해온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번 작품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작품이 개봉했을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난해하다는 입장과 지금까지 하야오가 만들어 온 세계관의 정점이라는 평가였다. 극단적으로 평가가 나뉜 것이다.



 본문에서는 작품의 화두였던 난해함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겠다.


 첫 번째는 세계관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하다. 주인공인 마히토가 탑을 통해 들어간 세계는 도대체 어떤 세계인지, 그리고 그곳에 존재하는 펠리컨, 앵무새 등은 왜 식인을 하는지, 또 마히토를 탑 속 세계로 인도한 왜가리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지 등 기존 하야오의 작품에 비해 세계관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기에 작품의 최종적인 목적과 주제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두 번째는 은유적인 상징 요소가 많다는 것 또한 한몫 했다. 앞서 말한 펠리컨과 앵무새, 그리고 나무 쌓기, 저택의 노파들, 궁극적으로 사건의 시작인 탑이 무엇을 상징하는지까지 모호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기존 하야오의 작품들에 비해 은유가 많아진 것에 대해 필자는 2차 대전이라는 실제 사건에 맞닿아 있는 인물들이 등장함에 따라 더 많은 주제의식을 담고 싶었을 하야오의 시도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이유는 서사 자체의 특징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스토리를 이해하라고 만든 영화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서사를 완벽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만들었다기에는 인물이나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야오가 의도적으로 서사 사이에 틈을 만들어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대신 자신이 하고 싶던 이야기들로 빈틈을 채우는 연출을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하야오는 왜 이러한 연출을 통해 영화를 난해하게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제목에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하야오는 이 영화의 주제인 어떻게 살 것인가를 영화의 구조 속에 녹인 듯하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 그 중에서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이 있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히토를 둘러싼 세계가 마히토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 데려가 이해할 수 없는 경험들을 시킨다. 그러나 마히토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즉, 하야오는 난해한 영화 구조 속에 이해되지 않고 막무가내로 흘러가는 삶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도전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야 한다는 삶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단연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하야오가 말하는 바람직한 삶은 무엇인지, 어떤 삶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인지, 그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대사들이 있었다.


1. 큰할아버지:악의가 넘치는 세상으로 돌아가겠다는거냐?

 탑 속 세계의 주인인 마히토의 큰할아버지는 안정된 탑이 아닌 악의로 가득 찬 현실 세계로 돌아가겠다는 마히토에게 위의 대사를 얘기한다. 그러나 마히토는 흔들리지 않고 돌아가겠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하야오가 하고자 하는 첫 번째 얘기가 나온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악의로 가득 찬 일들을 목격하고 그 과정에서 인류애를 저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하야오는 그런 세상이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미워하기 보다는 서로 사랑하자는 의미를 전달하려 한다.


2. 히미:마히토를 낳는 것은 멋진 일이니까!

 히미는 탑 속 세계에서 불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소녀인 동시에 현실 세계에서는 주인공인 마히토의 모친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탑 속 세계를 나가기 전 마히토는 히미가 병원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히미는 마히토를 낳는 것은 멋진 일이니까라고 얘기하며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이 부분에서 히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하야오가 제목에서 말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두 번째 답이다.

 하야오는 히미의 대사를 통해 결과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행동을 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3. 왜가리 남자:천천히 잊게 될 거야.

 마히토를 탑 속 세계로 인도한 왜가리 남자가 탑을 나온 뒤 그곳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마히토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이다.

 결국 왜가리 남자의 말은 마히토가 탑 속 세계에서 겪어던 일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다양한 경험과 인연들 중 대다수는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이 먼 훗날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하야오는 왜가리 남자의 입을 빌려 언젠가 잊어버릴지라도 많은 추억과 인연을 만들고 또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국 제목 그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사건을 마주한다. 그러한 사건들 중 몇몇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이고, 몇몇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때로는 삶을 포기하고 싶게도 할 것이며, 또 몇몇은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가 꾸었던 꿈들은 일상의 흐름 속에 마모되어 더는 제 역할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삶이지만 실패하더라도 계속해서 도전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때로는 잊어버린 기억으로 움직이기도 하는 그런 삶의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하야오가 지금껏 쌓아온 철학의 정점에 있다는 영화로 보인다. 그가 여태껏 작품에서 말해온 평화주의, 타인과의 유기적 삶, 그리고 세상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만들어나갈 것인지 하야오는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본 영화는 그 사실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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