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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월 Jun 05. 2024

일상으로부터의 발신

이병률 [바다는 잘 있습니다]

 시집을 몇 번이고 읽고 나서, 나는 이 글의 첫 문장을 꽤 오랫동안 고민했다. 물론 모든 글이 시작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첫 문장을 오래도록 고민한 원인 중 하나가 시에 대한 나의 무지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다른 문학 장르에 비해 유독 시라는 장르를 은연중에 기피해 온 것을 인정했다. 겉으로만 보고 시는 실효성 없는 문장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멋대로 단정 짓고 그 속에 있는 언어들의 관계성은 완전히 외면했던 자신에 대해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위의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에는 큰 괴리감이 있었기에 그 시간 동안 나는 비평의 첫 문장이 아닌 변명의 첫 문장을 고민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무지를 인정한 채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오느라요

하늘 맨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압정처럼 박아놓은 별의 뾰족한 뒤통수만 보인다고

내가 전에 얘기했던가요  

     <살림> 부분   


 이 시집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일상의 안부’이다. 시집의 많은 시들이 일상으로부터 비롯된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듯한, 특히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그 마음을 들으려고 하는 중입니다’라고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집 속 화자는 자신의 혼잣말이 혼잣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전해야 할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누군가(한 명인지 여러 명인지는 모르지만)에게 계속해서 안부를 전하려고 한다.



내가 가끔씩 사라져

한사코 터미널에 가는 것은

오지 않을 사람이 저녁을 앞세워 올 것 같아서다  

     <이구아수 폭포로 가는 방법> 부분   


 안부와 더불어 화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시집 전반에서 풍긴다. 그러나 ‘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그 사람이 올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화자 또한 알고 있다. 그럼에도 화자는 기다린다. ‘완벽한 사랑은 공중에 있어야 한다’며. ‘그러지 않고서는 어찌 삶이 비밀이 되냐’며(<이토록 투박하고 묵직한 사랑>).



내게 공중에 버려지는 고된 기분을

여러 번 알리러 와준 그 사람을

지금 다시 찾으러 가겠다고 길을 나서고 있는 나를

나는 어쩔 것인가요  

     <그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부분   


 안부를 알리려는 사람은 화자를 ‘공중에 버려지는 고된 기분을 알려준’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화자는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그를 다시 찾으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도 동시에 보여준다. 화자에 있어 그는 꽤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인물인 듯하다.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

몰라도 만나는 사람들

만나더라도 만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이 좁디좁은 우주에서 우리는 그리 되었다  

     <사람의 재료> 부분   


 여기서 우리는 ‘이제’라는 표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가 지금부터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전에는 어땠다는 것인가? 이 부분에서 화자는 ‘만나더라도 만나지 않은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와의 만남을 만남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다가도 몇 번’을 ‘당신을 생각해’야 ‘이 마음에서 놓여날 수 있습니까’(<새>)라 말하며 그를 잊지 못한다.



우리는 서로의 감정에 대해

더이상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당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거짓이

세상을 덮어버릴까 두려워서입니다  

     <이별의 원심력> 부분   


 3장에 들어서며 화자는 앞선 감정들(시)에 비해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린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금세 붉어지는 눈을 두 개나 가지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사실은 내가 쓰려고 쓰는 것이 시이기보다는 쓸 수 없어서 시일 때가 있다(<내가 쓴 것>) 고백하는 화자에게서 우리는 화자가 어떤 마음으로 시를 써내려갔는지 엿볼 수 있다.



그러고도 이 편지의 맨 끝에 꾹꾹 눌러 쓰나니 부디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부분   


 물론 화자가 3장에서 그에 대한 생각을 많이 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여 시들은 이어진다. ‘사라지지 말아’라는 말을 ‘편지의 맨 끝에 꾹꾹 눌러쓰는’ 화자의 행동에서 알 수 있듯, 화자는 그의 평안과 안녕을 빌고 있다.



우리가 살아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무심함을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  

     <이 넉넉한 쓸쓸함>   


 앞에서 몇 개의 시들을 살펴보았지만, 필자는 이 시집의 핵심을 이 시로 정하고 싶다. 시인은 이 시를 전하기 위해 다른 시들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화자는 이제 그를 놓아주려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있다. 지금 당장이 아닌,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날을.


 그날의 ‘우리’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무심함과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온통 여백뿐이었던 청춘(<미신>)을 함께 채웠던 사람. 삶이 툭 부러지는 그 끝에서 우연히 스쳤으면 하는 사람(<착지>).

 

  그 사람에게 보내는 오랜 안부 끝에 우리는 드디어 무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와 함께했던 기억을 무심히 옹호해야겠는 날에,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겠다 싶을 때 우리는 시를 뱉는다.(<11월의 마지막에는>을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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