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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월 Jun 21. 2024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미시마 유키오 - 금각사

 3년 연속 노벨문학상 후보, 쇼와의 귀재, 탐미주의 문학의 대가, 모두 미시마 유키오를 가리키는 말들이다. 그는 45세의 나이에 미시마 사건으로 죽기 전까지 600여 편 이상의 장단편 소설, 에세이, 희곡 및 시나리오를 남겼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동시에 극우 사상가였던 그는 1970년, 자위대에서 자위대의 궐기를 주장하는 인질극과 연설을 하던 도중 할복이라는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런 탓에 특히 한국에선 그의 작품보다는 이런 엽기적인 죽음과 엄마를 부탁해로 유명한 신경숙 작가가 그의 작품인 우국을 표절하여 논란이 된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러한 것들은 모두 배제하고, 쇼와의 귀재라 불린 미시마 유키오를 30대 초반에 문단의 정점으로 올라서게 만들었던 그의 대표작 [금각사]에 대해서 다루겠다.


1. 미시마 유키오의 어린 시절
 금각사를 조금 더 재밌게 읽기 위해서는 그의 삶, 특히 어린 시절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금각사]에 대한 글이므로 어린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정도의 정보만 짚고 넘어가겠다.
 192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미시마 유키오의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이다(이 글에서는 편의상 미시마로 부르겠다).

 천황 히로히토의 재위 시작 연도는 1926년으로 미시마의 출생 1년 후이다. 그렇기에 미시마는 평생을 쇼와 시대에 살아갔고 그의 별명 역시 쇼와의 귀재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미시마는 천성적으로 허약한 체질을 타고났다. 그런 탓에 친구들이 모두 밖에서 놀 때 자신은 늘 집에만 있었다고 하며 자연스레 매우 소심한 아이로 자라났다.

 또한 미시마의 할머니는 그를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어 미시마를 귀족 학교에 보내는데, 그곳에서도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 후 작가가 되어 20대 후반이 넘어가던 미시마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싫증이 났는지 보디빌딩을 시작하며 이후에는 매우 건강한 신체를 가지게 된다.

 [금각사]에는 앞서 말한 어린 시절 허약하고 소심한 미시마와 보디빌딩 등의 자기 관리를 통해 어린 시절 자신에게서 해방된 미시마의 모습이 둘 다 주인공 미조구치에게 녹아있다. 이는 탐미주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금각사]가 동시에 고백 소설의 성격도 띠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시마에 대해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소설 [금각사]를 즐기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2. 금각사의 줄거리

 금각사의 줄거리를 간단히 사건별로 정리하자면 순서는 이러하다. 참고로 이 소설의 구성상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떡밥처럼 뿌려둔 뒤 마지막 사건에서 모든 떡밥을 회수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읽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천천히 내용을 곱씹다 보면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허투루 쓰인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줄거리 요약*
짝사랑하던 마을 소녀 우이코의 죽음 - 금각이 있는 절에 맡겨지고 그곳에서 쓰루카와와 만나게 됨 - 미군에 의해 임신한 매춘부의 배를 밟고 유산시킴 - 노사의 지원으로 쓰루카와와 함께 오타니 대학에 진학하여 그곳에서 가시와기와 만나게 됨 - 조금씩 내면의 부정적 인식이 드러나기 시작함 - 가시와기의 도움으로 하숙집 딸과 산에서 관계를 하려는 찰나에 금각이 눈앞에 나타나 실패함 - 쓰루카와가 사고로 인해 죽음 - 가시와기에게 버림받은 꽃꽂이 선생과 관계하려는 순간 또다시 금각이 나타남 -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 없다는 노사의 말에 출분하여 바다를 보던 도중 “금각을 불태워야 한다”라고 결심 - 가시와기에게서 쓰루카와는 자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됨 - 노사에게 받은 학비로 유곽에서 동정을 버림 - 한국 전쟁 발발에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며 금각을 불태움 - 뒷산으로 도망친 미조구치는 자살을 포기하고 “살아야지” 하고 생각함.


 많은 이들이 금각사를 탐미주의 소설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인간 본연의 불안이 유려하고 화려한 문장 속에 녹아들어 있기에 그러한 칭호가 붙은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소설을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삶과 연결 지어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보려 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금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다.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품에서는 미조구치의 미 관념을 사로잡고 있는 두 개의 소재가 등장한다. 하나는 표면적인 미 관념인 금각, 하나는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는 미 관념인 마을 소녀 우이코이다. 이 글에서는 표면적 미 관념인 금각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금각이 미조구치의 미 관념을 대변한다는 면에서 보면 작가가 소설의 첫문장으로 저 문장을 선택한 것이 납득된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서 들은 금각의 얘기는 미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던 미조구치에게 매력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 탓에 그는 작품 내내 금각을 미의 대명사로 여기는 듯한 모습을 계속해서 보인다.

 금각은 이후로도 미조구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은 절간의 주지였던 아버지의 추천으로 금각사에 맡겨진 후 다른 이들에게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늘 금각을 보기 위해 근처를 서성이고 금각과 대화를 하는 듯한 착각까지 하게 된다.

 이는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심해져 ‘아름다운 것은 금각이다’라는 잘못된 관념으로까지 이어진다.

 또한 소설에서는 미조구치의 또래인 두 소년이 등장하는데, 바로 쓰루카와와 가시와기라는 인물이다. 쓰루카와는 미조구치의 긍정적이고 관념적인 면을 대변하고, 반대로 가시와기는 미조구치의 부정적이고 충동적(행위적)인 면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절에서 함께 지내게 된 쓰루카와는 부잣집 아들인 데다가 성격도 붙임성 있어 미조구치와 금방 친해지게 된다. 부잣집 아들답게 여유롭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미조구치의 긍정적인 면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쓰루카와는 도덕적인 인물로 묘사되며 미조구치의 충동적인 성향을 억제하는 감시자의 역할도 함께 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절 노사의 지원으로 함께 오타니 대학에 진학하게 된 두 사람의 관계는 가시와기라는 인물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가시와기는 앞에서도 말했듯 미조구치의 충동적이고 부정적인 면을 상징, 촉발하는 인물로서 쓰루카와와 대조되는 인물이다. 오타니 대학에서 미조구치와 가시와기는 급격히 친해지게 되고 쓰루카와는 그런 미조구치에게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말라는 식의 조언을 하기도 한다.

 얼마 뒤, 미조구치는 가시와기의 초대로 그의 여자친구와 하숙집 딸, 총 4명이서 함께 산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미조구치는 가시와기의 도움으로 하숙집 여자와 관계를 하려고 하지만 금각의 환영이 눈앞에 나타나며 실패한다.

 이후 미조구치는 쓰루카와가 고향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는 미조구치의 충동을 억제해 주는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는 장면으로서 이제 그에게 남아있는 것은 행위(충동)를 통한 자기구원 밖에 없다는 것이 암시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후, 가시와기의 도움으로 한번 더 여자와 관계를 가질 기회가 생기지만 역시나 금각의 환영이 눈앞에 나타나며 실패한다. 그 뒤로도 노사의 눈밖에 나는 행동을 여러 번 한 미조구치는 노사로부터 후계자로 삼을 생각이 없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출분하여 바다로 향한다.

 바다를 보던 중 미조구치는 불현듯 금각을 불태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돌아온다. 금각을 불태운 뒤 자신 역시 약을 먹어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뒤, 미조구치는 어느 날 밤 금각에 불을 지른다. 그러고는 뒷산으로 올라가 자살하려고 하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서 일어난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약을 버린다. 그리고 ‘살아야지’라 중얼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3. 금각사의 해석과 주제

 앞서 언급했듯, 금각사는 인간 본연의 불안을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 탐미주의 소설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금각사의 주인공 미조구치를 작가인 미시마에 대입해 본다면 조금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인 미시마는 어릴 적에는 매우 병약하고 소심한 아이였으나 20대 후반을 넘어서며 보디빌딩으로 강인한 신체를 얻게 되었다. 이는 미시마가 어릴 적 유약했던 자신의 모습(콤플렉스)을 보디빌딩으로 극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인 미조구치 역시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그로 인한 미를 향한 집착,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미 관념을 상징하는 금각을 불태우고 미묘한 감정(해방감)을 느끼는 것까지, 미조구치는 작가인 미시마와 닮은 구석이 여럿 있다. 미시마가 헬스로 어린 자신을 극복해 낸 시기에 금각사가 발표된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분명 우연은 아닐 것이다.

 종합해 보자면 금각사는 인간 본연의 불안을 다룬 탐미주의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미시마의 삶과 연관 지어 본다면 금각사의 주제는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미관념(혹은 콤플렉스)으로부터의 해방으로도 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해방은 인간의 한계로부터의 해방(예를 든다면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히어로물)일 수도 있고 ‘쇼생크 탈출’과 같이 자유에 대한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일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항상 해방으로부터 오는 감동을 바라고는 한다.

 금각사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에도 일본 문학의 고전으로 우뚝 서 있는 이유에는 분명 소설 속에 녹아있는 미조구치의 자기해방 신화가 한몫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는 감정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필자는 금각사를 추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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