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를 연주하는 팻 메스니
음악 듣기에 계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 밤은 책 보기에도 음악 듣기에도 참 좋을 때다. 특히 재즈 기타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최근 뭘 많이 들었나 보니 랄프 타우너(Ralph Towner), 존 애버크롬비(John Abercrombie), 조피아 보로시(Zsofia Borosi) 그리고 팻 매스니(Pat Metheny)가 눈에 띈다. 모두 훌륭한 연주자지만 One top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팻메스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재즈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는 팻메스니를 가리켜 재즈계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했다. 천재성, 상업성, 개척자를 떠오르게 하는 스필버그에 비견된 팻메스니를 처음 접한 건 정확히 37년 전, 대학방송국에서 들은 <Offramp> 앨범이다. <Barcarole> <Are you going with me?>로 이어지는 앨범을 들으며 당시에는 들었던 생각은 “이게 재즈야?”
하지만 그 이후 팻메스니를 30년 넘게 듣고 있고 가지고 있는 CD만 수 십장이고 디지털 파일까지 하면 거의 전 앨범, 심지어 부틀렉까지 갖고 있다. 앨범들을 뒤적이다 오랜만에 <Imaginary Days Live> DVD를 틀어봤다. 이유는 한 가지, 그가 연주하는 42현 기타를 보고 싶었다. 6현, 4현 간혹 12현 기타를 연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42현은 아마 기록적이지 않을까 한다.
기타리스트에게 기타는 분신일 것이다. 그런 분신을 만들어내는 익숙한 명장, 브랜드들이 있다. 레오 펜더, 레스 폴, 깁슨, 플라잉 브이, 마틴 등, 아마추어, 프로 연주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기타들이다. 팻메스니도 깁슨, 롤랜드, 이바네즈, 레스폴 등 다양한 기타로 연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명기를 제치고 가장 눈에 띄는 건 린다 만제르(Linda Manzer)에게 의뢰해 만든 Pikkaso라는 기타, 바로 42현 기타다. 설명을 달자면 42-string hybrid acoustic instrument with four necks and two sound-holes.
천재 기타리스트가 과연 42줄 기타가 필요할까 싶지만 팻메스니의 Pikasso 연주를 들어보면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팻메스니는 이 기타를 통해 소리의 마술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 이전부터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결합한 소리 창조로 기타 사운드의 다양함을 보여줬지만 그는 만족할 수 없었나 보다. 연주를 듣다 보면 기타, 하프, 중국 현악기의 소리를 듣게 되고 거의 멜로디의 향연처럼 느껴진다. “명징”,”천상의 소리” 같은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피카소로 연주하는 <Are you going with me?>와 특히 <Imaginary day live>에서 들려주는 <into the dream>은 압권이다.
커스텀으로 제작된 42현은 교차된 형태로 일반인들에게 과연 연주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팻메스니의 플레잉을 보면 왜 42줄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준다. 피카소를 연주하는 팻메스니의 손은 한 사람의 손이라고 하기에는 인간계를 넘어선 신계의 실력을 담아낸다. 더욱 놀라운 건 이 기타의 무게가 무려 6kg이 넘는다는 것이다.
피카소 기타는 이전에 팻메스니에게 다양한 기타를 제작해 준 린다 만제르의 작품이다. 4개 영역에 42현을 배치한 이 기타는 4개 섹션의 연주를 가능하고 만들었고 연주를 할 연주자의 팔 움직임, 자세와 신체 사이즈 등 다양한 인체공학적 요소를 담았다. 더불어 6현 섹션은 또한 Synclavier 컴퓨터 시스템과 함께 기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팻메스니 공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피카소는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특별한 관리를 요해 별도의 유지보수 전문가가 항상 공연에 함께 한다고 한다.
새로운 소리를 향한 팻메스니의 끊임없는 탐구와 노력, 그리고 린다 마제르의 장인정신이 함께해 만들어진 피카소 덕분에 나는 오늘도 팻메스니를 다시 들어야만 하는 명분을 갖게 된다.
피카소라는 애칭은 예상되듯이, 피카소가 기타를 디자인하면 이럴 거야라고 생각한 대중들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