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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세상 Jun 11. 2024

푸른 목청은 여운을 남고

오늘도 후회라는 단어에 종결을 짓고 내일의 마음은 석양받이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못다 한 이야기들이 가슴에서 물결을 치는데 어둠은 저쪽에서부터 시간을 달리하곤 합니다. 남겨둔 뿌리의 체온이 내 가슴속에서 아득한 그리움만 남깁니다.     


엄마,

난 너무도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내 부족한 것을 감추려 지나친 허영은 깨뜨리지 못하는 벽을 만들고 순수하게 영혼만을 사랑하지 못한 끈적한 육체는 방황의 늪을 헤매고, 늘 어설픈 고개만 흔들었습니다.

하루라도 흔들리지 않는 날이 없으면서 꾸준히 시간만 다 먹어버렸습니다.      


때로는 며칠 간의 황홀한 시간에 감금되어 보내기도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침 노선 좋은 버스를 골라 타고 달린 적도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정지와 아쉬움이 함께 흔들리는 버스 속으로 잠입하기도 했습니다.      


생활의 끈이 너무 단단하게 느껴져 정말 벗어나고 싶었고, 탈피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계절은 나를 포옹해 주지 않고 돌아서기만을 반복했으므로, 결국 돌아서는 발자국 무늬마다 앙금으로 고이는 지난 계절의 추억과 아픔들을 가둬두기만 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지 바람은 언젠가는 이루기로 합니다.     

난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지킬 수 없는 큰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신은 나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데 나는 곁눈질하며 배시시 웃기만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나침반을 해부하고 원래 상태로 돌이키지 못해 안타까웠던 유년기 그 시절을 탄식하며. 커다란 유리창을 깨 구석에 앉아 부모님의 호령에 미리 기가 죽었는데 일찍 들어오신 아버지의 따뜻한 음성이 사랑으로 애잔하던 날,      


유난히도 무더웠던 그 해 여름, 그 뜨거운 여름날.. 찐득한 땀과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마지막까지 놓칠 수 없었던... 그러나 끝내는 놓을 수밖에 없었던 벅찬 숨결이 못내 아쉬워 혼절하고야 말았던,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군요.


무엇이 올바르게 사는 건지 무엇이 충실하게 사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다만 나는 아직까지도 자꾸만 당신께 위로받고 있습니다.     


이제 엄마도 당신 곁으로의 소풍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좋아지는 건지 나빠지는 건지, 어느 땐 좋았다, 더 나빴다를 반복하며 자꾸만 당신께 다가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리도 사이가 좋았던 두 분이었기에, 어쩜 6년이라는 긴 시간을 홀로 견디신 엄마의 시간이 너무나 외로웠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떠나시며 엄마자리를 근사하게 마련해 놓은 건지 어쩐지 엄마는 너무도 부지런히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엄마에게 가서 엄마의 사진을 찍고 엄마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나는 사실 엄마보다 나를 위한 것임을 압니다. 날마다 찾아가서 엄마를 보낼 준비를 차곡차곡하고 있는 나는 엄마가 떠난 후의 빈자리가 너무 허전하지 않게 미리미리 준비를 하고 있는 영악함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준비가 내내 미비하네요.      


어젠 허벅지만 하게 부풀었던 팔에서 진물이 나와 애를 먹이더니, 오늘은 다시 예전 팔로 돌아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전 팔이 아니라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굴거리는 팔이지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입니다. 열만 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신축성 있는 허전함이 벽을 통해 메아리가 됩니다. 병상에 있는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짧지만 황홀한 실종의 시간들입니다. 아버지와 끝내 함께 하지 못했던 기억의 발판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나름의 시간을 쌓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그 기억의 옛터에 연둣빛 혈관을 타고 새싹이 돋아나고 있네요.      

옛 아름다운 기억들 그리고 지금의 시간들을 애증의 강에 깊지 않게 보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당신을 담아둡니다.      


오늘은 유난히 바람소리가 낭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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