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세상 Mar 27. 2024

버스정류장에서

무작정 걷다 버스정류장 의자에 걸터앉았습니다.

오가는 사람이나 지나는 차량이나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아 좋습니다.


주문하지 않는다고 눈치 볼 것도 없고 사람들은 그저 내가 어떤 버스를 기다린다 생각하거나  혹은 관심 자체를 갖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린 누군가를 신경 쓰다 정작 중요한 걸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냥 무심히 쉬고 싶은데도 누군가를 신경 써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행을 가도 신경 쓸 게 많은 지라 복잡한 생각은 오며 가며 터널 속을 헤매게 되어 정작 정리해야 할 생각은 다시 짐 속에 다시 넣어 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생각이 많은 날엔 버스정류장이 딱입니다.  그저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같아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버스 정류장은  머문 채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딱딱한 의자와 다소 시끄러운 소음만 감내할 수 있다면 최고의 자리입니다.(아 요즘은 의자에 따뜻한 온도를 느낄 수 있는 설치가 되어 있는 곳도 있습니다.)


가끔 어디 가는 버스가 몇 번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친절히 답해주면 그뿐, 아무도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무작정 걷기도 좋지만 나이 드니 무릎관절 생각 안 할 수 없기에 어느 정도 걷다 힘에 부치면 적당한 버스정류장을 찾아 자리를 잡습니다. 버스를 오르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조차 다들 바쁜 사람들 틈에서 내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전엔 버스종점 여행을 했습니다.

생각이 고픈 날 무작정 긴 노선의 버스를 하나 골라 긴 시간 무념무상하며 종점까지 따라갑니다. 종점의 세상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근처와 사뭇 다르지만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집 앞에서 조금 나가면 강화행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두어 시간을 달리다 보면 강화가 나타납니다.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시골의 풍경이 정겹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종점 근처에 풍물시장이 있어 한 바퀴 돌고 오면 좋습니다. 운때가 맞아 장이라도 서는 날이면 로또 맞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구경거리 많은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기분마저도  산뜻해집니다.     


하이힐의 높이가 자존심이었던 시절,  지하철에서 발이 하도 아파 구석자리에서 구두를 벗고 서있었더니 오가며 다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탓에 민망이 극에 달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남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누가 어쩌고 저쩌고 옷이 짧네 기네, 머리가 어떠네 등등 자기 자신도 정리하지 못하면서 주변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하긴 말이라도 많아야  덜 심심하겠지만요.     


관종이라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관종이라는 말 자체가 눈길 관심을 받고 끌고 싶은 사람이어서 튀거나 독특하거나 한다는데 그 말자체가 남에게 관심 무한인 것입니다.


신경 쓸 필요도 신경 쓸 일도 없는 것을 우린 굳이 관종이라는 단어를 만들어가며 관심을 가집니다.

그가 튀고 싶으면 튀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할 자격이 있는 것 일터, 남에 대한 무한의 애정이 만들어낸 과도함은 아닐까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필요도 있기에 우린 남에게 과도한  신경은 자신의 정서를 병들게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버스정류장에 삼십 분 앉아있으니 따분해집니다. 슬슬 다시 걸어보려고 엉덩이를 들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눈이 구백 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