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negans Wake
이스트 런던에서의 첫 토요일, 거장 안셀름 키퍼의 전시를 보기 위해 사우스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그의 대형 전시가 열리고 있다니 발품을 팔지 않을 수 없다. 미술과 문학, 회화와 설치, 조각, 사진과 책까지 광범위한 세계를 넘나드는 안셀름 키퍼의 전시는 화이트 큐브 Bermondsey Street에서 개최 중인데 숙소가 있는 Livepool Street에서는 도보 40여분 떨어진 곳이다. 마침 해 구경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런던의 하늘이 스카이블루를 선사하여 두세 시간 걸으며 런던 올레길을 즐겨볼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길 찾기는 언제나처럼 절친 구글맵에게 물었는데 런던 브리지를 건너는 길을 알려준다. 하지만 오늘은 멀리서 보기만 하고 건너본 적 없는 런던 타워 브리지를 걸어볼 생각으로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데 타워 브리지를 건너기 전 Tower Hill 언더그라운드역 주변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났다. 다름 아니 줄리안 오피의 벽화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그의 대표 시리즈인 Walking 작품이 10미터가 넘는 벽의 두면에 걸쳐 멋지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마냥 눈이 튀어나온 나와는 달리 주위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매일 보니 일상이 된것인지 스타 작가의 작품인 것을 모르는 것인지 무심히 빠른 걸음으로 줄리안 오피의 작품을 지나쳐간다. 그런데 그런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피의 walking 작품 속 인물들과 꼭 닮아있다. 작가 줄리안 오피도 그의 벽화가 관람객에 둘러싸여 있기보다는 이렇게 바쁜 도시인들 사이에서 적당한 무심함 사이에 놓여있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서 본 어느 작품보다 더 오피스러운 작품들과 사람들 덕분에 런던의 바이브를 즐겨보았다.
코로나라는 것이 있었어?라는 듯이 런던의 타워 브리지는 저녁시간 서울의 명동을 연상시키듯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이제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가는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오래간만에 보는 각양각색의 인종들에 둘러싸여 타워 브리지보다는 사람 구경을 하며 다리를 건너보고 있을 때 오피의 벽화만큼이나 신기한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난생처음 보는 자전거 폭주족들이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다리의 차도에 난데없이 커다란 스피커에 시끄러운 음악을 튼 채로 이어지는 행렬이 족히 1천 명은 넘어 보여 끝을 알 수 없다. 자전거의 앞바퀴를 들고 있기도 하고 괴성을 지르기도 하며 질주하는 자전거 폭족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7년을 도쿄라는 정형화의 표본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인지 눈앞의 광경이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자유가 좋은 것인지, 살짝 통제된 질서 속의 편안함이 좋은 것인지? 아마도 난 후자일까나.
런던 브리지가 끝나고 Tanner street를 따라가 보면 Bermondsey stree를 만나게 되는데 이 주변으로 작은 카페와 식당들 베이커리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데 서민적(빈민가가 아닌)인 마을에 아담한 가게들이 사진처럼 늘어선 곳이다. 나도 잠시 앉아 쉬어가고 싶었지만, 카페족은 아니니 커피는 그렇고 와인을 한병 까자니 좀 이른 시간이고 해서 아쉬움을 접고 지나쳤다. 하지만 나중에 더 재미난 곳을 찾아내어 만족스러운 한가함을 누렸다.
Anselm Keifer
Finnegans Wake
White Cubu Bermondsey Street
7 June – 20 August 2023
유유자적 도쿄와는 사뭇 다른 프리덤~으로 가득 찬 런던의 바이브를 느끼다 보니 화이트 큐브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서울에도 분점이 열렸는지 열리는지? 해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글로벌 최고의 갤러리답게 뮤지엄 규모를 가지고 있는 Bermondsey stree지점에는 컨펨포러리 아트의 중심지 런던답게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입장에 줄까지 서고 있었는데 전시규모가 어마어마하다.
항상 그렇듯 이번 알셀름 키퍼의 전시와 작품들도 어렵고 어둡고 파격적이다. 특히나 그런 것이 Finnegans Wake의 전시명은 율리시스의 저자인 James Joyce의 소설작품으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위키피디아에 나온다.
"소설의 특징은 전위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서술 방식과 그에 따른 언어의 왜곡이다. 이 소설에는 의식의 흐름 기법이 사용되었고 영어를 중심으로 언어가 여러 방법으로 왜곡되어 있어 영문학에서는 매우 난해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게 먼 소리리니?
이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듯 만들어낸 전시니 전시 또한 난해하다. 언제나처럼 전시를 넘 이해하려 오버하지 않으며 관람객 모드로 전환하고 전시장 나들이를 시작했다.
난해하고 파괴적인 그의 작품 세계를 잘 반영하듯 거의 모든 설치며 조각들은 시간이나 물리적 힘에 의해 노후되고 부서진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가 예술의 도구로서 주로 사용하는 소재인 철, 짚, 흙이나 금속등 가공되지 않은 물질들이 전시장에 가득하다.
안셀름키퍼의 미술 세계는 회화에도 그 특징을 잘 들어내고 있는데, 마치 폐허가된 인류 종말의 순간에 홀로 생명을 지켜가는 해바라기가 위태롭게 펴있기도 하고 소설 속 실제 문구가 벽면에 새겨져있기도 하다.
그리고 복도식 기다란 전시실을 따라 들어가면 나오는 메인 전시장에서 펼처지는 풍경에 알셀름 키퍼 그리고 그를 리프리젠트하는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웬만한 규모의 건물을 분해해 그대로 옮겨 놓은 이 대규모 전시장에서 대부분의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멈쳐지고 조용한 적막이 흐르는데 저마다 시선은 다르지만 감탄이 들어찬 얼굴들은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감상한 작품은 대형 유화 작품에 팔레트가 날카롭게 돌출된 특이한 작품이었는데 팔레트 위에 풀어놓은 물감들이 뱀의 형상이 되어 기어 다니는 바람에 실제 뱀을 본 듯 놀라 소름이 돋아났다.
전후 가장 위대한 독일의 예술가라 불리는 알셀름 키퍼의 전시는 그의 명성답게 강하고 묵직했다.
거장의 전시를 파격적인 규모로 마련하고 이를 대중에게 무료로 오픈하는 화이트 큐브 갤러리 그리고 긴 줄을 마다하지 않고 관람을 즐기는 런던 사람들의 모습이 컨템퍼러리 아트의 성지 런던을 한층 런던답게 만들어 관람을 마치고도 한참 즐거움이 남는 전시였다.
알셀름 키퍼, 화이트 큐브, 멋진 관람객들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