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어. 좋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나쁜 일들이 있을 수 있어. 그러니깐 힘내자! 할 수 있어!'
당시 내가 나에게 제일 많이 썼던 말은 '힘내자.'와, '할 수 있어.'였던 것 같다.
마치 앞으로 빠르게 전진하기 위해 계속해서 채찍질을 당하는 노쇠한 나귀처럼, 나는 내 마음을 충분히 추스를 시간도 없이 속으로 '힘내'라는 말만 계속해서 되뇌며, 취업을 위해 여러 회사에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는 등, 하루빨리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던 중,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회사 중 한 곳에서 내가 원하는 인사노무 관련 직무를 수행할 인재를 채용한다는 채용공고가 떴음을 확인하였다.
그곳의 채용절차는 다음과 같았는데, ①[1단계] 자기소개서 작성 및 제출, ②[2단계] 필기시험 실시(객관식, 논술), ③[3단계] 실무 및 인성면접, ④[4단계] 최종합격 순서였다.
제출한 자기소개서가 운 좋게 통과되고 나서, 회사로부터 필기시험 시행안내 문자를 수령받았다. 필기시험 응시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지방에서 서울까지의 먼 길을 나서게 되었고, 시험 전날, 숙소에 도착하여 바리바리 싸놓은 캐리어가방의 짐을 푼 다음, 늦은 밤까지 전공시험공부를 하고 잠들었다.
시험 당일, 시험장에 조금 일찍 도착하였고, 전날의 설레는 마음은 알 수 없는 긴장감으로 변하여 나를 덮치려 하였다. 너무나도 긴장이 되었다.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나는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리고, 마인트 컨트롤을 하였다.
'이번채용은 신입사원 포지션 채용이잖아. 신입사원 레벨 중에서 나보다 인사노무관리 공부를 많이 하고, 조금이지만 경력이 있는 사람은 많이 없을 거야. 긴장하지 말자. 내가 아니면 누가 합격하겠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를 긴장감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하였던 것 같다.
필기시험이 시작되었고, 생각보다 문제가 잘 풀렸었다. 특히, 논술형 문제는 노동법과 관련 문제들이 나왔고, 나는 정말 신들린 듯 목차를 잡아가며 글을 써 내려갔다.
답안지를 제출하고 시험장을 나왔을 때, 나는 필기시험 합격을 내심 확신하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지원하였던 회사에서 문자가 왔다.
'필기시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문구를 본 순간, 면접절차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마치 최종합격을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실무 및 인성면접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면접준비를 실시하였다.
나의 경우는 통상 면접준비를 할 때, 그 회사의 경영전략 및 이슈, 지원 직무에 대한 이슈 등에 대해서도 준비를 하지만, 특히, 처음에 하는 자기소개(1분)와 행여 있을지 모르는 마지막 포부(1분), 그리고, 나에게 아킬레스 건과 같은 '이전 회사 퇴사사유'에 방점을 두어 연습하곤 하였다.
입에 붙을 때까지 계속해서 읊조리고, 면접 당일날 보아야 할 내용들을 파일로 정리하여 이를 출력해 면접준비를 끝마쳤다. 면접 전날 정장과 구두를 챙겨 서울로 상경하였고, 면접당일 일찍 숙소를 나서서 지원회사로 향했다.
인사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면접예정시각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스마트 폰을 활용해 회사 홈페이지를 접속하여 회사에서 업로드한 뉴스 등을 보면서 이를 숙지하였고, 잘 알지 못하는 내용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속성으로 외우려고 노력하였다.
마침내, 면접자가 전부 모였다. 총 6명이 면접대상자에 해당하였으나, 2명이 결시를 하였고, 4명이 면접에 참가하였다.
대기실에서 긴장하고 앉아있으니, 지원회사 인사팀장이 대기실을 방문하여 우리들에게 말을 걸었다.
나에게는
"인사업무를 조금 해보셨네요?"
라는 질문을 했었고,
나는 "네, 그렇습니다."
라고 짧게 답하였다.
그리고는 내 옆에 앉아있는 다소 어려 보이는 지원자에게 인사팀장이 말을 걸었다.
"아버지는 잘 지내시고 계시죠?"
나는 순간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는데,
그 질문을 굳이 왜 대기실에 지원자들이 전부 있는데서 하였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사팀장의 질문을 받은 그 지원자는
"네, 잘 지내시고 계십니다."
라고 답변하였고,
그 인사팀장은
"아, 그래요. 안부 전해주세요."
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4명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하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순간 멘탈이 흔들렸으나, 정신줄을 다잡고 인사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면접장으로 향했다.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 인사담당자에게 면접 전 주의사항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노크를 한 후에 지원자 4인이 모두 들어갔다.
사전에 인사담당자가 지정해 준 자리에 서 있었는데, 면접관이 다수 존재하였다. 다 대다 면접이었다.
면접관이 서 있는 우리들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하였고, 우리는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먼저, 역시 예상했던 대로 1분 자기소개를 지원자 모두에게 시켰다.
나는 이미 몇백 번을 연습했던 자기소개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시간도 1분 내로 맞춘 듯하였고, 시작이 순조로웠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4명의 지원자가 자기소개를 마쳤고, 이후 면접관들의 실무 질문 폭격이 이어졌다.
당시, 노동 관련법령 전반에 대한 몇 가지 주요 이슈들이 있었는데, 그 이슈에 대한 내용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라는 질문들이 주를 이루었다.
마침, 관련이슈에 대한 사전준비 및 꾸준히 인사노무관리 공부를 하였던 노력이 빛을 발하며 이슈에 대한 내용 및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법리적으로 풀어 답변할 수 있었다.
질문 중에 몇 가지는 다른 지원자들이 답변을 못하거나, 내가 이미 답변한 내용과 의견이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문제 난이도 자체가 높았다. 이처럼 실무면접은 면접관들의 질문들에 완벽하게 답변하였다.
마지막으로 4명의 지원자들이 각자의 포부를 답변하고, 면접을 종료하겠다는 면접관들의 선언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최종합격이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면접장을 나가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한 명의 면접관이 나에게 추가질문을 하였다.
"잠시만요. 제가 질문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면접자님께서 제조업계 회사를 6개월가량 다니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두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끝났다고 생각한 면접에서 가장 꺼렸던 질문이 들어온 것이다.
나는 순간 멘탈이 나갔다.
그러나, 다시금 다잡고
"평소 인사노무 관련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 후 공인노무사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합격하지 못했고, 지금은 제가 수험공부를 하며 습득한 지식 및 인사담당자로서의 경험을 활용해 이 회사에서 인사노무 전문가의 career path를 이루고 싶습니다."
라는 뉘앙스로 대답하였다.
면접관은
"아, 네. 잘 들었습니다. 이상입니다."
라고 하며, 이미 종료선언한 면접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종료선언을 하였다.
나는 찝찝한 마음을 면접장에 두고 나오지 못한 채, 면접장을 나왔다. 그리고는 가장 빠른 기차표를 예매하였고, 그 기차를 타고 말없이 창 밖을 바라본 채 몇 시간을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는 면접내용을 복귀하면서 면접결과 발표날까지 희망회로와 절망회로를 번갈아가며 돌리는 기행(奇行)을 하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대망의 면접결과 발표날이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문구를 보자마자 창을 바로 닫았다.
그날 하루는 누군가가 나를 꼭대기 위로 집어 올린 다음, 다시 그 꼭대기에서 나를 낙하시키는 기분이 들 정도로 큰 좌절을 겪었다. <제21장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