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풍년, 미디엄 웰던의 추억

겉바삭 속촉촉 '미디엄 웰던'

by 카타


나는 개발된 외향형 옷을 입고 있는 극내향형 인간이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까지 나에게 사람과의 만남은 선택이지 필수인 사항은 아니었다. 친목모임에서 오고 가는 떠들썩한 분위기에 사교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곤 하지만 불필요한 약속을 싫어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다. 집밖으로 누군가 끄집어내지 않으면 하루 종일 집에 있어도 혼자 시간을 즐겁게 잘 보내는 사람, 자발적 히키코모리라고나 할까.





취준생 시절, 아버지는 일상의 곳곳에서 은둔자를 자처하는 나를 이끌어 내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등산로에서 가벼운 산책을 한 후, 근교로 나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그날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복수에 있는 어느 유명한 소고기집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새로운 고기가 들어오고, 야외에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가든 형식의 고깃집. 여느 고깃집과 같이 우리가 원하는 고기를 선택해서 구워 먹을 수 있고 차림비를 받는다.


많이 먹어서 망한 놈은 없다는 아버지와 아주 넉넉한 양의 소고기를 구워 먹고, 그것보다 훨씬 더 푸짐한 양의 고기를 포장한다. 직장인 언니를 위한 것이다. 며칠을 배불리 나눠 먹어야 할 만큼의 소고기에 아버지는 많은 돈을 지불하셨다. 동네잔치를 위해 한우 한 마리를 잡은 듯 아버지는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망설이는 기색 없이 흐뭇한 표정으로 신용카드를 내민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언니에게 문자를 넣어주라고 나를 재촉한다. 소고기를 사 왔으니 저녁은 꼭 집에 와서 먹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아버지는 우리가 만든 음식에 까다로운 품평을 하지 않는 최고의 고객님이었지만 소고기를 구울 때만큼은 예외였다. 소고기를 구울 때마다 바싹 굽기를 원하는 딸들과 미디엄 웰던으로 굽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대립 아닌 대립이 시작되었다. 웰던으로 바싹 익히면 고기의 육즙이 모두 날아가 질겨지고 맛이 없어진다고 늘 강조하는 아버지. 그러나 우리는 늘 붉은 핏빛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두운 갈색빛이 띠는 웰던으로 소고기 굽기를 고집했다.


아빠와 단둘이 고깃집에 들렀던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고기를 직접 구워 미디엄 웰던으로 완성된 고기 몇 점을 내 그릇에 놓아준다. 살짝만 붉은기가 돌아도 생고기를 먹는 듯한 생각에 늘 웰던을 고집했었지만 그날은 아버지가 구워 준 고기를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그런데 웬걸. 우리가 그동안 먹었던 바짝 익힌 고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맛있었다. 고기 윗면으로 붉은 육즙이 자글자글 올라올 때 재빠르게 뒤집어서 붉은 육즙을 살짝 날려주면 미디엄 웰던과 동일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구태여 고기 안에 수분을 모두 날릴 만큼 웰던으로 굽지 않아도 맛있게 먹을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아빠랑 소고기 먹고 포장해 왔어. 집에서 구워줄게. 아빠 말대로 살짝 덜 익혀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

<그래? 나는 바짝 익힌 고기가 더 좋은데 한번 먹어봐야지 뭐.>


아버지 방식대로 미디엄 웰던으로 고기를 구워주겠다는 나의 문자에 언니는 반신반의하며 바짝 익은 소고기를 원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퇴근을 알리는 언니의 문자를 받고 고기 구울 준비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부엌에서 고기를 굽는 내 옆에 서 혹시나 부드러운 소고기 맛을 살리지 못할까 노심초사한다. 한 점 구워 아빠 입에 넣어 주었다.


"아주 잘 구웠다! 좀 있다가 언니 오면 꼭 그렇게 구워 줘!"

드디어 당신이 전수한 노하우로 부드럽게 소고기를 척척 구워내는 딸의 모습에 몹시도 흡족해하는 아버지.


처음 미디엄 웰던을 접하는 언니를 위해 육즙이 고기표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 재빠르게 뒤집어서 고기 겉면의 육즙을 날린 후 식탁 위에 올려 주었다.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붉은 감의 육즙이 눈에 보일세라 살펴보던 언니는 탐색을 마치고 고기를 입에 넣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정말 부드럽다!"


그렇게 우리는 몰랐던 세계에 대한 또 하나의 선입견을 부수고, 미디엄 웰던의 세계로 입문하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바짝 구운 진한 갈색빛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 바삭촉촉하게 구운 소고기를 먹으며 문자가 아닌 경험으로 깨우친 미디엄 웰던의 추억을 되새긴다. 아버지가 남겨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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