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 우리들의 '팸레'

시간을 쌓아둔 우리들의 공간

by 카타


어느 날, 집에서 인터넷을 하다가 모르는 줄임말(신조어)을 발견했다. '팸레'라는 단어가 그것인데 패밀리레스토랑의 준말이다. 당시 나는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좋아하지 않아 즐겨 사용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나름 고지식한(?) 면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끔씩 언니와 기분전환 겸 들르곤 했던 패밀리레스토랑이 어느 순간 큰 붐이 일었다. 유행에 대한 민감도를 측정한다면 제로 수준일 정도로 유행이나 시대의 흐름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였지만 패밀리레스토랑만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해결할 수 없던 고민으로 무기력할 때, 부모가 맺어준 '소중한 짝꿍' 언니와 자주 들러 대화를 나눴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터넷 세상은 팸레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당시 한창 유행이었던 것은 팸레에서 가성비 있게 식사하는 방법에 관한 글들이었다. 어느 팸레는 식전에 먹는 빵을 요청하면 최대 몇 개까지 포장가능하고, 사이드메뉴 몇 가지를 조합하고 어떤 소스를 요청하면 본 메뉴랑 동일한 메뉴가 탄생된다는 등, 당시 나에게는 신박한 아이디어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하지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가 먹고자 원했던 메뉴들은 늘 다른 것들이라 그 섬세한 매뉴얼을 실행해 본 기억은 없다. 단지 얼굴 모르는 인터넷 세상 속 또 다른 누군가의 현명한 소비를 부러워하며 본받고 싶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었다.






우리에겐 팸레에 대한 추억이 많다. 자주 방문했던 곳이기에 당연한 이야기다. 마땅히 생각나는 곳이 없으면 집에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팸레에 들러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간단한 쇼핑을 한 후 집까지 운동삼아 걸어오곤 했다. 어떤 대화를 나누고, 무슨 고민을 했었던가는 이미 기억 속에서 많이 소실되었지만 우리가 자주 들렀던 팸레 공간과의 추억은 남겨진 기억의 양과는 무관하게 따뜻하게 기억된다.


식사 중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아이스크림을 무료로 먹게 된 날도 있었고, 오케이캐시백 쿠폰에 당첨되어 바비큐 폭립을 100원짜리 쿠폰으로 먹게 된 날도 있었다. 더 큰 행운이 찾아온 것은 당시 담당 서버였던 분이 연말 혜택으로 나온 달력을 언니와 나에게 하나씩 챙겨주신 것이다. 그 달력에는 해당 프랜차이즈점에서 매달 새롭게 선보이는 애피타이저를 맛볼 수 있는 쿠폰이 월별로 들어있었다. 우리는 최대 30%까지 할인받을 수 있는 제휴카드가 있었기 때문에 적게는 15000원 가격대에서 둘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의 메뉴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우리는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그 달의 쿠폰을 가지고 패밀리레스토랑에 들렀다. 신메뉴에 대한 모험심이 부족한 우리 성격에 도전하는 쿠폰인 셈이다. 인생에서 고민이 많이 쌓여 있던 시기,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을 끌어안고 있었지만 언니와 나는 동네 슈퍼마켓 들르듯 팸레에 들러 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해결하고 풀리지 않을 고민들을 잠시나마 풀어두었다가 주섬주섬 현실 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프라이빗한 공간이 보장되니 나쁘지 않은 가성비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던 시간이다.







지극히 타인의 관점으로 보면 프랜차이즈점은 재미가 없다. 어느 낭만적인 골목에 위치한 감성을 자극하는 인테리어의 커피숍도 아니고, 꼬장꼬장한 장인이 세월의 힘을 자랑하는 노포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 프랜차이즈 점을 추억의 장소로 꼽으니 누군가는 참 멋없는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겐 <상업적인 회사의 철저한 마케팅 전략으로 브랜딩화 된>, <상점이 발에 차이는 어느 도심가에 위치한> 프랜차이즈점에서의 시간들이 어느 유럽의 골목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식당에 대한 추억만큼이나 소중하다. 어쩌면 그 시간 속의 나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모습으로 같은 음식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점보다 더 특별한 곳을 원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과거의 시간 속 내가 어느 대단한 음식점 한 곳을 더 들렀든 그렇지 않았든 하는 것은 현재의 나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훨씬 어렸던 세 살 위의 언니와 당시에는 제법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소중한 음식들을 늘어놓고 함께 고민을 나누며 울고 웃으며 보냈던 그 시간들을 쌓았던 공간이기에 우리에겐 소중한 곳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러니 현재의 내가 어느 곳에서 어떤 시간을 쌓든, 미래의 나는 지금의 기억을 소중하게 아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내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좋다. 그렇게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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