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의도치 않게 가내수공업에 매진했다. 당근 한 상자를 주문한 것을 시작으로 당근을 어떻게 먹을까 했던 고민이 '김밥 복제'라는 숭고한 미션으로 귀결(!)된 것이다.
어릴 땐 당근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유의 향과 맛이 나는 모든 채소를 싫어하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당근은 내가 좋아하는 채소는 아니었다. 어릴 때와는 다르게 각종 향채를 좋아하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근은 내게 늘 너무 먼 채소였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당근 맛을 몰랐던 시절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당근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주 특별하게 시작되었다. 10여 년 전쯤 해외 요리 사이트와 요리 책들을 보면서 당근을 묘사한 문장에 매료된 것이다. 딱히 어느 한 문장에 꽂힌 것은 전혀 아니었다. 단지 내가 알고 있던 당시의 당근과는 전혀 다르게 묘사되어 있는 문장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중 가장 신기한 것은 당근케이크였다. 당근 케이크라니.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천연의 주황색을 띠는 케이크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어느 요리 책에서는 당근이 굉장히 달콤한 채소로 묘사되어 있었는데 그것 역시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표현이었다. 당근이 달다니. 집에서 기르던 토끼에게 말린 당근을 주면서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을까 늘 의아했던 당근이었는데... 그 당근이 달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레시피 탐색을 하다가 당근케이크도 만들어 보고, 생당근과도 서서히 친목을 이어갔다. 당근 그 특유의 향을 늘 먼저 느끼던 내 입맛에도 당근은 어느 순간 달콤한 채소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는 씹기 어렵게만 느껴졌던 당근의 아삭한 식감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당근을 좋아하게 된 지도 10년 가까이 되었으니 우리는 꽤나 오랜 우정을 이어온 사이다.
그리고 며칠 전! 바로 당근을 묘사한 표현에 반해 마음을 열었던 '바로 그' 당근 한 상자를 주문하고 고민에 빠졌다. 당근 라페로만 먹기엔 양이 많고, 베이킹은 요즘 잘하지 않으니 우선순위에 없고, 가장 많은 양을 단시간에 소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김밥이라는 훌륭한(!) 결론이 다다랐다. 덕분에 김밥은 부지런히(!) 복제되어 생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