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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Oct 23. 2023

아빠도 살림은 처음이라

우리 집 마법수프 '사골곰탕'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빠의 부엌살림을 도와준 것은 어느 유명 중견기업에서 나온 즉석식품이었다. 도시로 이사 온 이후로는 LA갈비가 뒤를 이었고, LA갈비가 지겨워질 무렵 바통을 이어받은 녀석은 바로 '사골곰탕'이었다. 처음에는 최대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고, 시간이 지나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사골곰탕이 아빠의 부엌살림을 도와주었다는 말인즉, 우리는 사골로 끓인 국과 탕을 지겹도록 먹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배를 곪는 결손가정 아이들이나 기아로 목숨을 잃는 빈민국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겹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 단지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비친 적 없는 사춘기 소녀의 솔직한 마음이라고 해두자.






나의 아버지는 세계 최고의 빈민국 출신이다. 10명이 훌쩍 넘는 가족들과 전쟁통에 서울에서 피난을 나왔다. 같은 빈민국 내에서도 차별은 존재한다. 원주민은 피난민의 아이들을 차별한다. 아이는 성장하지만 가난은 생각보다 질겼다. 가난을 끊어내는데 인생을 걸었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의 것이 생겼다. '가족'. 그러니 나의 아버지가 자신의 배고픔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사다 나르고 우리 입에 넣어주고자 함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위로였을 것이다.


아빠도 살림은 처음이라 한동안은 좌충우돌, 또 한동안은 임시방편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사골곰탕은 아마도 임시방편의 시간쯤에 우리와 함께 한 메뉴다.


생각해 보면 사골은 아빠의 철학에 아주 적합한 음식이다. 오랜 시간 푹푹 고아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고, 당시에는 사골 가격이 비싼 축이라 자식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한다는 아빠의 확고한 신념에도 부합한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으니 아빠의 바쁜 일상에 이보다 더 완벽한 메뉴는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빠는 새로운 고기가 들어오는 날을 기억해 두셨다가 그날 즈음 정육점에 들러 사골을 사서 퇴근한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작업 시작! 드럼통같이 커다란 냄비에 사골과 두툼하게 끊은 고기를 넣어 끓이기 시작한다. 첫물은 버리고 다시 물을 가득 담아 본격적으로 푹푹 고아 끓이는 작업을 시작한다. 사골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오고 수육과 스지가 부드럽게 익으면 아빠는 수육과 스지를 먹기 좋게 발라 그릇에 담는다. 우리 입에 넣어주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나의 반응은 항상 똑같았다.


 "난 안 먹을래." 또는 "배부른데."

한 입만 먹어보라는 아빠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한입을 먹으면 또 그게 그렇게 맛이 있었다. 눈치를 보며 부엌으로 달려가서 젓가락을 들고 아빠가 발라주는 고기와 수육을 먹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한솥 푹푹 고아 만든 사골국은 한동안 우리 집 식탁 메뉴로 올라왔다. 떡을 넣어 떡국, 만두를 넣어 만둣국, 급할 땐 그냥 파와 양파 같은 채소를 넣고 국물만 먹기도 한다. 아빠에게 표현은 못했지만 사골뼈가 으스러지도록 고아 만든 사골국이 그때는 왜 그렇게 미웠는지.


아빠의 살림솜씨가 웬만한 베테랑급이 될 때쯤 우리는 졸업을 했고, 아빠는 부엌살림에서 조금씩 해방이 되어 사골국은 우리 집에서 <도리어 보기 힘든 메뉴>가 되었다.






언니와 나는 가장 오랜 친구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한 사이니 우리는 많은 것들을 함께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떨어진 시간 동안 함께 경험하지 못한 것들은 그날그날 상세하게 공유하면서 시간을 보냈기에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존재, 가장 걱정하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 대한 인상, 갑자기 생각난 아빠와의 추억 등 많은 일들이 그렇다. 이번에는 아빠가 푹푹 고아 만들어준 '사골곰탕과 스지'를 함께 소환해 내었다.


나는 우리가 어릴 때 아빠가 푹푹 고아 만들어준 사골골탕과 수육을 재현하고 싶었지만 언니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며 인터넷마트에서 손질된 스지를 주문해 주었다. 그리고 서비스로 사골곰탕도 받았다.


함께 먹을 소스와 부추를 준비하면서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웬걸. 기대만큼 맛이 있지 않다. 어릴 때 아빠가 딱 한 점만 먹어보라며 입에 넣어주던 스지의 맛을 기대했는데 그 맛이 아니다. 아쉬웠다. 다음 날엔 다 먹지 못하고 남겨둔 스지를 서비스로 받은 사골곰탕에 넣어 만둣국을 끓였다.


아빠가 좋아하는 만둣국을 먹으며 자매는 똑같은 대화를 되풀이한다.

"지금 생각하니까 아빠 대단하네. 매번 몇 시간씩 사골곰탕 끓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땐 그게 지겨웠어."

"아빠가 뼈에 붙은 스지와 고기 발라 줄 땐 정말 맛있었는데 그 맛이 아니다. 그치?"


아빠처럼 사골곰탕을 푹푹 끓여낼 자신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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