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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Oct 19. 2023

휘뚜루마뚜루 카레는 즐거워

칭찬은 '카레'도 춤추게 한다.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이던 시절, 요리와 여행 사진, 읽었던 책에 대한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내 집처럼 열심히 가꾸던 그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싸이월드에 접속하고 방명록을 확인했다.


"아침에 아빠가 카레 맛있다고 극찬함. 어쩜 이렇게 한입에 먹기 좋게 잘 만들었냐고 좋아했어.ㅋㅋㅋ"

언니가 남긴 방명록이다. 한 집에 살면서 가끔씩 문자로, 블로그로 소통하는 자매다.






하루 전 날, 다음 날 아빠 아침으로 챙겨줄 카레를 만들었다. 색색가지 채소를 넣고 카레를 끓여둔 후 잠이 들었고, 정작 아침에는 늦잠을 잤다. 대신 언니가 일어나서 아빠 아침을 챙겨드린 모양이다.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준 카레는 재료가 제법 큼직 큼직해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막상 만들어 보니 재료 익히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일찍부터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게다가 성격이 급한 내가 카레에 들어간 재료들을 골고루 한입에 먹기에는 불편했다.


나는 카레를 만들 때 재료를 한입크기로 작게 썰어서 만든다. 오래 끓이지 않아도 재료가 충분히 익을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재료를 골고루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그래야 채소들의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맛의 향연이다.


여러 번 만들다 보니 카레는 하루 전에 미리 만들어 두어야 훨씬 맛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모든 재료가 혼연일체가 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 나의 이런 공식 아닌 공식이 아빠에게도 통한 모양이다. 아빠는 내가 만든 카레를 정말 좋아하셨다. 사실 <하루 전 날, 채소 골고루> 이 두 가지 레시피에 <카레가루>만 추가하면 완성인 '휘뚜루마뚜루' 요리다.






언니는 이 날의 일을 자주 이야기 한다. 처음 카레를 만들어 먹고 싶다는 나의 말에 시큰둥하던 언니는 요즘은 카레를 만든다는 말에 반색을 한다. 회사 급식이나 밖에서 사 먹는 카레는 재료가 부실해서 카레답지 않다면서. 재료 손질이 레시피의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리지만 가족들의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한다.


그날 이후로 카레를 참 자주도 만들어 먹었다. 냉장고에 남은 채소들로만 끓여도 충분히 맛이 있으니 이보다 더 가성비 좋은 음식이 어디 있을까 하는 마음에 카레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성격 급한 내가 아무리 재촉한다고 해도 시간이 필요한 요리들이 있는데 카레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나의 이런 못된 성격에 반하는 요리들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자투리 채소가 많은 날에는 더없이 생략된 휘뚜루마뚜루 카레가 만들어지고 제대로 먹고 싶은 날에는 형형색색 채소들을 사다가 정성껏 끓인 고급 카레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가장 정성 들여 만들었던 카레는 역시나 아빠가 칭찬해 주었던 그날의 카레다.




휘뚜루마뚜루 만든 카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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