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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Apr 11. 2023

노랑빨강 돼지저금통

우리 집, 돈먹는 돼지 농장!


아빠에게 고마운 일들이 있다. '감사함'보다 '고마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감사함'은 왠지 나와 가깝지 않은 상대에게 표현하는 마음인 듯한 '개인적인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 올린 글들은 모두 아빠에게 고마운 기억들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당연하게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 오던 일들부터 타인과의 비교과정에서 '뒤늦게 발견하게 된 고마움'까지, 참 다양한 모습의 고마운 감정들이 산재되어 있다.  평범한 날들이 특별한 기억으로 추억된 듯, 아빠와의 일상도 그러하다.



어릴 때 아빠는 새 지폐를 용돈으로 주셨다. 헌 돈은 깨끗하지 않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새 지폐가 늘 마련되어 있었다. 새로운 디자인이 추가된 신권이 나올 때마다 방금 은행에 가서 바꿔온 새 지폐를 우리에게 몇 장씩 쥐어 주시던 기억이 선하다. (나는 그 지폐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안방에 있는 자개농 마지막 칸에 우리들만의 지갑이 있었다. "이건 우리 00,00 거"하면서 가지런히 지폐를 넣어주던 지갑. 감정표현이 서투른 나를 배려해 "이건 우리 00가 관리해."라며 소명의식도 살짝 불어넣어주셨다. 나는 아빠가 우리에게 물려준 그 가죽지갑이 좋아서 매번 자개농 칸을 열어서 만져보고 쓸어보기를 여러 번 했었다. 그 지갑에는 당연히 빳빳하게 다림질한 듯한 말꼬롬한 신권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총 세 마리의 돼지저금통이 있었다. 엄마 소유인 돼지저금통은 길쭉한 모양의 빨간색 돼지저금통이었다. 엄마저금통은 천 원짜리만 먹는 녀석이다. 그렇게 길쭉한 녀석이 완벽히 채워질 때까지 기다릴 만큼 나의 인내심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천 원짜리로만 채워진 엄머저금통은 왠지 모르게 고급스럽게 느껴져 언젠가 나도 저런 녀석에 저금을 하겠다는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우리 자매의 돼지저금통은 엄마저금통 3분의 1 크기로 작고 동그란 모양이었다. 언니의 돼지저금통은 항상 노란색, 나의 것은 늘 빨간색이었다. 아빠는 아침마다 "오늘 00 돼지 밥 좀 줄까?" 하시면서 지갑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 저금통에 넣어주셨다.


우리는 돼지저금통이 한참은 무거워지고 더 이상 돈이 들어가지 않을 때에만 저금통을 깰 수 있었다. 흔들어서 소리가 나지 않을 때가 적기다. 충분히 무거워진 돼지저금통의 배를 가르고 동전 한 닢, 지폐 한 장 가지런히 정리할 때 그 뿌듯함이란. 우리는 곧 똑같은 색깔의 돼지저금통을 사 와서 다시 1일을 시작했다. 나는 동전 하나라도 돼지저금통에 저금하는 날이면 저금통을 이리저리 흔들어보며 빨리 가득 채워지기를 고대했다. 중간 이상 채워지면 오늘 깨 볼까, 내일 깰까 마음이 살짝 조급해졌다. 그래도 흔들었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저금통이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을 위해 여러 날을 더 참았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늘 최선을 다했던 아빠. 푼돈의 귀중함을, 동전 한 닢의 가치를 올바르게 심어준 아빠에게 늘 감사하다. ('고맙다'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기에 '감사함'으로 표현하는 나만의 소소한 변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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