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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타 Apr 02. 2023

일상의 서프라이즈!

아빠가 만들어준 맛의 안부

저녁 약속으로 늦게 귀가하는 날, 아빠 손에는 늘 비닐봉투나 쇼핑백이 들려있다. 약속장소였던 식당에서 요리를 포장해 오거나, 빵집에 들러 며칠이 걸려도 다 먹지 못할 빵들을 사 오시는 것은 당연한 일상. 가끔은 마땅한 게 없어서라는 말과 함께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이라도 꼭 사들고 오셨다.


아빠가 처음 접하거나 정말 괜찮은 메뉴다 싶은 날에는 미리 전화를 하셨다. "밥 먹었어? 아빠가 지금 메로구이 사가니까 밥 조금만 먹고 있어!" 그럴 때 아빠의 목소리는 평상시보다 다급한 느낌에 톤이 높아져 있었다. 그만큼 당신에게는 중요한 전달사항이었던 것이다. 술집에서는 메로구이, 포장마차에서는 닭꼬치와 염통구이, 중국집에서는 맛탕, 횟집에서는 회초밥 등 우리는 배불리 저녁을 먹고도 2차, 3차 요리를 먹기 위해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는 포장해 온 음식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우리가 먹는 모습을 본다며 한사코 잠자리에 들 준비하기를 마다한다. 옷을 갈아입고 씻고 잠을 청해도 이미 늦은 시간. 의자에 앉지도 않고 넥타이를 풀며 그날 모임에서 있었던 일들을 한참 동안 풀어놓는다. 중간중간 "맛있지? 맛있지?" 하며 맛의 안부도 잊지 않는 아빠. 우리는 모임에 누가 참석했는지, 몇 명이나 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시시콜콜한 질문을 한다. 아빠의 대답은 우리의 질문보다 한 박자씩 늦는다. 술에 취한 아빠는 하고 싶은 말만 하거나 우리가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 얼렁뚱땅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되물어도 이해 못 할 외계어(!)를 풀어놓을 것을 알기에 우리는 일찌감치 이해하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다음 날 저녁을 먹으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빠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숙련된 사람이 아니면 전 과정을 이해하기 힘든, 한참을 들여다보고 맞춰보아야 하는 퍼즐 같은 이야기다. 그래도 아빠 이야기는 꼭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를 맞추어 들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시간들은 직접 만나본 적이 없음에도 우리와 아빠의 인연들을 오랜 기간 알고 지낸 것처럼 가깝게 만들었다. 


길을 함께 걷다가 아빠와 인사하고 헤어지는 누군가에 대해서 "누구셔?"하고 물으면 "응, 000야."라는 아빠 말에 그분이 어떤 분이고, 언제 적 친구이고, 성격은 어떤 분이고, 무슨 일을 하고 계신 분인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언니는 아빠의 지인분들이 이미 우리가 아빠를 통해 알고 있는 분들인 것을 보니 아빠와 일상을 참 많이도 나눴었나 보다며, 그래서 참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직장인이 된 우리도 아빠처럼(!) 회사 근처 맛집에서 음식을 포장해 오는 일이 늘어났다. 금요일 저녁, 출근의 부담이 없는 토요일 전야제 기념 만찬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아빠가 좋아하는 소주 대신 와인과 함께 토요일 밤을 축하했다.

"육회 포장해 갈게! 밥 먹지 말고 기다려."

"아빠, 언니가 육회 포장해 온대!" 

"00야, 횟집에서 회 좀 포장해 올 수 있어?"

"아빠! 00가 회 포장해 온대!" 

포장해 오는 사람은 빨리 음식을 공수해서 식구들을 먹여야(!)한다는 의무감에 마음이 바쁘고, 집에서 기다리는 자들은 음식이 언제 오나 기대하는 날들이었다. 아빠는 이런 게 행복이지! 하면서 좋아하셨다. 






아빠는 한창때보다 외부 모임을 줄이셨고 자연스럽게 음식을 포장해 오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가끔씩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듯 간단한 먹을거리를 사 오시곤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기모임에 다녀오신 아버지 손에는 비닐봉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빠는 먹을 것에 있어서 '적당히'가 없으신 분인데 봉투의 부피가 작은 것이 이상하다. 비틀비틀하며 비닐봉지를 건네는 아빠. 마땅히 사 올 게 없었다며 집 근처 빵집에서 사 왔다고 하신다. 맛있는 빵을 기대하며 봉투를 열어본 나는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유아용 캐릭터가 잔뜩 그려진 음료수를 사 오신 것이다.

"아빠! 이거 아빠가 골랐어?"

"응."

"진짜로 아빠가 고른 거야?"

"응. 왜?"

아빠는 계속해서 본인이 골라서 담은 게 맞다고 강조한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이미 저 음료수를 먹을 아이가 있는 나인데, 언니도 나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솔직히 우리 가족은 나이 가늠이 없다.

"이거 아기들 먹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빵집 아저씨가 손주 주시려고요? 하고 묻더라고."

"그래서 뭐라고 했어?"

"딸 준다고 했지!!"

적당히 손주 준다고 둘러댔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빠는 당당하게 딸들 가져다준다고 말씀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폴리 포도맛과 사과맛 음료는 아빠의 바람(!)대로 모두 내가 마셨다. 



10여 년 전 아빠가 사 온 폴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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