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제 몸 뜨거워지고 싶은 욕망을 꾹꾹 눌러 참으며 살아야 했을 아궁이의 한평생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자식 둘을 낳고 도시로 도망치듯 떠났다 한 달도 못 채우고 다시 돌아와 아궁이 앞에 앉았던 이십 대의 아버지처럼.
이글거리는 불길이 내뿜는 열기에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질 듯 타들어가는 고통에도 어깨를 꼿꼿하게 바짝 세워야 한다고. 매운 연기에 눈물 콧물 쏙 빠지도록 재채기를 해대는 동안에도 부 넘기가 수월하도록 한껏 가슴을 부풀려야 한다고. 시뻘건 불덩이를 끌어안은 채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아궁이.
아궁이는 제 몸 뜨거워지려 불덩이를 품는 것이 아니다. 제 온몸의 살과 뼈가 흔적 없이 녹아내릴지도 모르는 불안과 고통 앞에서도 기꺼이 품 안으로 시뻘건 불덩이를 주저 없이 끌어안는다. 한평생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의 순간순간들을 두 눈 질끈 감으며 견뎌냈을 것이다
아버지는 여름 두 달을 제외하고는 매일을 하루같이 아궁이에 불을 넣으셨다. 산골 깡깡오지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워서 달력의 계절보다 서너 걸음 앞서 왔다가는 느릿느릿 물러갔다. 한겨울에는 아침, 저녁 두 번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장작을 밀어 넣으며 사납게 날뛰는 불길을 부지깽이로 다독이고 정갈하게 다듬었다. 밖으로 새어 나가는 불씨 하나라도 있을까 고무래로 쓸어 모았다가 아궁이 안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쇠죽이 끓을 때도 콩물이 끓어오를 때도 송편이 익어갈 때도 구들방을 덥힐 때도 아궁이는 활활 타는 불길을 온몸으로 감싸 안은 채 숨 막힐 듯 차오르는 화기를 고루고루 흘려보내야 했을 것이다. 부뚜막에 얹힌 반질거리는 솥단지에 든 것들을 품어 녹이고, 온기로 감싸 끓여내느라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굽은 무릎 위, 뽀얗게 지나간 세월을 뒤집어쓴 채 빈 솥을 얹고 웅크려 앉은 아궁이. 뜨거웠던 시간은 차갑게 식은 지 오래다. 둥그런 어깨는 까맣게 그은 숯검정을 훈장처럼 달았다. 불덩이를 품었던 날들을 켜켜이 새긴 가슴팍은 갈빗대가 어긋나 있다.
군불 넣을 시간인데 아버지도 없고 굳게 입을 닫은 아궁이 위로 노을만 붉게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