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하유지향 May 16. 2024

이석증

일기예보에 없던 태풍이 지난밤 내 몸속을 훑고 지나간 것일까.

구멍 숭숭한 돌담을 무너뜨려 크고 작은 돌들을 이리저리 흩어놓은 것일까.

태풍에 균형을 잃은 돌멩이가 제 자리를 벗어난 걸까.

오른쪽 달팽이관에서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출렁대는 파도에 몽돌이 몸 부딪는 소리가 났다.

달보다 빠르게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난 것 같았다.


어제아침처럼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팽그르르 도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실이 급했으므로 얼른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데 이번에는 침대 속에서 뻗쳐 나온 손이 몸을 쭉 잡아채더니 사정없이 침대 위로 내동댕이쳐버렸다. 지구에서 잠들었던 내가 어느 낯선 별에 툭 떨어진 것 같았다.

지구보다 큰 중력의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계속 바닥으로 잡아당겼다. 천장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돌았다. 세심하게 자기 자리를 정해놓은 신의 솜씨가 어긋난 순간이었다. 나를 빚은 신을 찾아 다급하게 출장수리 신청을 해야 하나.


길게 심호흡을 하고 침대가 쓰러뜨린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았다 떴다. 머리는 여전히 무거운듯했지만 천장의 동그라미는 사라지고 실크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안방 침대에서 화장실까지는 서너 걸음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어제 아침이었다면 게슴츠레한 눈으로 침대에서 머리와 등을 동시에 떼어내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일으키는 동작이 끝나기도 전에 침대 모서리로 흘러내리는 엉덩이를 두 다리가 가뿐히 받쳐 들고 화장실 문을 향해 단숨에 걸어갔을 것이다.


침대에 붙은 상체를 겨우 일으켜 앉았다. 이제 침대에 붙은 엉덩이에 반동을 주어 침대 스프링이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복원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때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 침대에서 튀어나가리라. 심호흡을 가다듬고 머릿속으로 계산한 대로 다음 동작을 했다.  반동이 침대 스프링으로 가해져야 하는데 머리 꼭대기로 뻗쳐 올라왔다. 내 소유의 몸이거늘 내 생각, 내 의지와 다르게 사방팔방 제멋대로 천방지축 날뛰는 송아지 같았다. 다시 침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달팽이관 옆에 찰싹 붙어있던 고요하던 바다, 세반고리관. 그곳에 자리 잡은 돌멩이, 그놈이 제자리를 벗어났고 침대와 한바탕 격렬한 레슬링을 치르고 나서야 화장실 변기와 마주했다. 뚜껑을 여니 여기 오신 것을 환영한다며 메달이라도 걸어주겠다는 듯 빤히 나를 쳐다본다.


또르르 또르르 내 귓속에서는 돌이 굴러다닌다.

어느 여름 차르륵차르륵 파도를 읽던 몽돌이 오늘아침세반고리관 바다로 첨벙 뛰어들어왔다.

이제부터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몽돌에 이는 파도소리쯤은 실컷 듣게 될지도….








작가의 이전글 그녀 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