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까지
현대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들 중에 다이어트로부터 100%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나의 주변의 여성들은 한 번의 다이어트는 거쳤다. 나는 다이어트를 거친 정도가 아니라 다이어트가 나를 집어삼킬 정도로 살을 빼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적도 있었다.
4.8kg으로 태어난 나는 어릴 적부터 남다르게 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67cm로 전교에서 내가 가장 컸을 정도였다. 키도 컸지만 덩치도 커서 친구들과 버스라도 타면 다 함께 어린이 요금을 낼 때 기사 분께서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시곤 하셨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나의 생지옥이 시작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들고 나의 외모에 관한 콤플렉스는 점점 심해졌다. 천성이 예민하고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던 나는 또래 친구들보다 키도, 덩치도 큰 것이 스트레스였다. 작아지고 싶었다. 키 순으로 섰을 때, 제일 뒤가 아닌 중간이나 앞쪽에 서고 싶었다. 그 당시 나에겐 한 가지 소원이 있었는데, ‘제발 작아지게 해 주세요.’였다. 하지만 키가 작아질 수 없으니 덩치라도 작아져야 했다. 그렇게 나의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14살, 만 13살인 여자아이에게 과연 얼마나 유용한 다이어트 지식이 있었을까?
안타깝게도 당시 내가 알고 있는 다이어트 지식이라곤 '적게 먹으면 살이 빠진다'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식이조절을 시작했다. 급식을 적게 먹고 간식을 적게 먹고 최대한 음식 섭취 자체를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웬일인지 정말로 살이 빠졌다. 첫 단추가 잘못 꿰지는 순간이었다.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를 학습한 나는 점점 더 음식물의 섭취를 줄여나갔고 몸은 일정 수준으로 몸무게를 빼다가 어느 순간 정체기가 왔다. 새 모이만큼 먹어도 빠지지 않는 몸무게에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식욕이 터졌고 요요가 왔다. 처음보다 늘어난 몸무게에 스트레스를 받은 나는 당시 유행이었던 덴마크 다이어트부터 황제 다이어트, GI 다이어트 등등 해보지 않은 다이어트가 없을 정도였다. 감량과 요요를 반복하다 보면 무서운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요요는 항상 그전보다 더 심하게 온다는 것.
예를 들어 60kg였다가 5kg 감량해서 55kg가 되었다고 해도 요요가 오면 65kg가 되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감량과 요요를 반복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나는 92kg였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로 음식은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주 최근까지 마음 편하게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다. 그걸 인정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그래, 나는 식이장애가 있었고 거식증과 폭식증을 번갈아가며 겪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식이장애를 겪으며 살다 보니 내 몸은 이제 더 이상 살이 빠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기아 상태에 접어든 지 오래였고 내 몸은 섭취하는 음식물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는 스펀지와 같은 몸이 되어 있었다. 또 식욕은 지금껏 꾹꾹 눌러놨기에 조금만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스프링처럼 팍! 하고 튀기 십상이었고 그때마다 몸무게도 당연히 오를 수밖에 없었다.
1년 365일 다이어트를 해서 먹는 양은 그 누구보다 적은데 왜 살은 빠지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억울했다. 친구들은 먹고 싶은 걸 먹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것 같으면서 저렇게 말랐는데, 왜 나는 이렇게 적게 먹고 매일 다이어트를 하는데도 왜 내 몸은 이렇지? 화가 났다.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몸, 그게 바로 나였다.
매일이 다이어트라 괴로운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그냥 다이어트를 놔 버렸다.
이렇게 살다 간 도저히 내가 제정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판단하에 될 대로 되라는 마음에 그냥 다이어트를 놨다. 그러나 근 10년 넘게 식이장애가 있던 사람이 한순간에 일반식을 먹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걸 먹으면 살이 찔 것 같은데 안 먹으면 기아모드 돼서 또 살찔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하루는 음식을 앞에 두고 엉엉 울었던 기억도 있다.
조금씩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일반식을 먹기 시작했다. 양상추, 토마토, 당근, 오이 이런 것만 오랜 기간 먹던 사람이 일반식을 먹으면 식욕이 터지기 마련이다. 터진 식욕만큼 몸무게도 비례해서 늘었지만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10년을 넘게 괴로워했음에도 살이 빠지기는커녕, 살이 더 찌게 된 현실을 직시했다. 더 이상 다이어트를 하지 않겠다. 그냥 뚱뚱한 나를 받아들이자.
한동안 알바도 하고 바쁘게 살았다.
갓생을 살며 다이어트 따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옷이 커지는 것이 느껴져서 몸무게를 재봤다.
62kg
?????????
처음 보는 숫자였다.
지금껏 다이어트를 하는 내내 68kg 이하를 본 적이 없는데 62kg라는 인생 최저몸무게를 찍은 것이다.
그때부터 가만히 하루하루를 돌아봤다. 배가 고플 때가 되면 먹고 싶은 걸 먹고, 특별한 운동은 하진 않았지만 하루에 만 오천보에서 이만 보 정도 걷는 생활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당시 학습지 선생님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차가 없는 나는 그냥 뚜벅이로 여기저기 계속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학습지 알바를 계속 이어가면서 58kg라는 기적의 몸무게를 보게 된다.
승무원 준비하면서 52kg까진 빼봤지만 내 세트 포인트는 58~60kg로 2022년 상반기까지 쭉 이어졌다.
2022년 6월, 현재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면서 7주간의 트레이닝을 가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풀던 예전과는 다르게 이젠 스트레스받으면 식욕이 사라진다. 본의 아니게 소식을 하면서 위가 작아졌는지 먹는 양이 확연히 줄었고 7주 만에 49kg라는 몸무게를 본다.
그 이후 베이스에서 비행을 시작하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46kg라는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몸무게를 보게 되지만, 169cm에 46kg이라는 수치는 건강을 지킬 수 없는 몸무게였기에 지금은 살을 찌워 49~51kg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얼마큼 먹어야 만족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어야 내 식욕을 달랠 수 있는지를 그저 잘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며칠 많이 먹더라도 먹던 대로 먹으면 1주일 이내로 몸무게가 돌아오는 걸 알기에 더 이상 몸무게를 줄이기 위한 다이어트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도 새로운 다이어트가 생겨나고 효과가 좋다는 다이어트 약이 판매되고 있다. '마른 여성'에 대한 비정상적인 선망이 가득한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은 이런 다이어트 산업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그런 상업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길 바란다.
스스로를 돌봐주면 된다. 스스로의 식욕을 잘 돌봐주고 스스로의 컨디션에 맞게 일상의 활동을 하기만 하면 된다. 정말로 그거면 된다.
태어나면서부터 소아비만이었고 20대의 반 이상까지 초고도비만~고도비만이었던 나는 20년도 더 넘는 시간을 다이어트 때문에 괴로워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다이어트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이 다이어트를 버리면 언젠간 빠져있을 것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