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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것은 없다

모두가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by 오리온

지금껏 살면서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갇혀 살았는지 깨닫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지금의 남편인 존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노란색이다. 병아리 같고 또 밝고 통통 튀는 색감으로 볼 때마다 내 기분을 상큼하게 바꿔놓는 노란색은 내 소지품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존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에게 내 노란색 노트를 좀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 선뜻 가져다줄 줄 알았던 예상과는 반대로 우물쭈물하는 그의 모습에 의아했다. 내 눈빛을 읽었는지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 색을 구분 못해. 심각한 색약이라서. 특히 노란색은 더욱이."


당연히 모두가 색을 구분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색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해서 존 역시 색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닌데 말이다. 내가 생각한 틀에 맞춰 모두를 은연중에 판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으면서 부끄러워졌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참 철저히 불특정 대다수의 주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주류인 사람들은 모르지만 비주류인 사람들은 쉽게 불편함을 눈치채는 그런 사회 말이다.


몇 주 전에 있었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하철인 바트를 타려는데 엘리베이터도 고장이 났고 에스컬레이터도 수리 중이었다. 휠체어를 탄 여성과 그의 일행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계단을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가가 도움을 청하려고 말을 걸어보려는데, 어디선가에서 대여섯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선뜻 그들에게 다가가 자신들이 도와주겠다며 여성이 탄 휠체어를 채로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평소엔 '에스컬레이터도 수리 중이고, 엘리베이터도 고장이라면 계단으로 내려가면 되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광경을 목격한 후로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게 막아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그런 적이 있다. 친구와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갔는데 키오스크 전용 가게였다. 한 어르신께서 키오스크 앞에서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눈치 셔서 조심스럽게 다가가 도움이 필요하시냐고 여쭤보았다. 그분께서는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고 귀도 어두우셔서 귀에는 보청기를 끼고 계셨다. 메뉴가 적힌 글씨의 크기도 큰 편이 아니라 어르신께선 메뉴를 읽는데도 큰 어려움을 겪으셨다. 그래서 나와 친구가 메뉴를 하나하나 읽어드리며 어르신의 주문을 도와드렸다. 연신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어르신을 보며 뿌듯한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먼저 일었다. 어르신께서도 언제든 원하시는 때에 편히 주문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요즘엔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곳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으니 그게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원인이었다.




이 세상에 당연한 일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색깔을 구분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계단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쉽사리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이 편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키오스크로 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편하지 않은 나는 미국에서 비주류로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나에게는 불편함 투성이인 이곳에서 열심히 살아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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