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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Apr 04. 2024

부유하는 상처 8

언니

아침 7시면 집을 나섰다. 

그녀의 집 맞은편에 차를 세우고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집 문을, 창문을, 우편함을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매일이었다.

그렇게 미스 신은 또다시 사라지고, 이미 아물었다고 믿었던 상처는 쓰라림을 더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가족 모임을 갖기로 했다. 손자의 초등학교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시집 안 간 둘째도 참석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못 온다는 연락을 해 왔다.

"넌 하나 있는 이모라는 게 졸업 축하도 못하냐!" 소리를 냅다 지르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둘째 탓만은 아니었다. 서먹하기만 할 사위와의 저녁 자리 때문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심통 난 노인네 마냥 사위를 맞이하겠지. 공감 안 되는 사람과의 소통은 감정 낭비일 뿐이다.


장소는 일식집이었다. 가족 모임이라고 해도 딸 내외와 손자 그리고 나뿐인 자리였다. 나와 딸은 회를 좋아하지 않는데, 회를 좋아하는 사위가 손자를 꼬드겨 정한 장소였다. 회에는 손도 안 대고 딸려 나온 밑반찬 정도에만 젓가락을 놀렸다. 내 눈치를 보는 딸아이를 애써 외면했다. 어려서부터 내 눈치를 보던 맏딸이라 미안하다가도 술 좋아하는 사위를 보고 있자면 주체 못 하는 심술이 나온다. 저녁을 먹는 내내 딸 부부는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다르다는 뻔한 말과 벌써 대학 걱정을 해댔다. 간혹 전화기에서 눈을 뗀 손자가 고갯짓으로 호응을 해줬다. 눈치 빠른 사위가 분위기는 아랑곳 않고 벌써 소주가 2병째다. 언제나 사위는 술기운으로 무거운 공기를 모면하려 한다. 식당의 공기는 탁하기만 했다. 술내와 소음에 가슴이 답답했다.

압박하던 숨을 내쉬며 식당으로 들어오던 젊은이들의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웃음소리마저 리듬감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그중, 단발머리 여자의 낮은 광대뼈 얼굴이 보일락 말락 했다. 거부 못 할 기시감.. 길게 느껴진 순간을 기다려 그 녀의 눈과 코를 확인했다. 미스 신이었다. 머리 모양이 바뀐 미스 신 언니였다.

놀라움에 나도 모르게 입으로 회 한 점을 가져갔다.

"어, 제시카다.. 제시카!" 천둥 같은 사위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침묵은 깨지고 딸도 단발머리 여자 쪽을 쳐다봤다. 반달눈의 언니가 뒤돌아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일행을 따랐다.

나도 모르게 다급한 소리가 터졌다.

"최 서방 저 여자 알아?"

"네, 장모님, 예전에 제 가게에서 일했어요. 자기도 기억나지? 제시카." 사위는 딸에게 확인하 듯 물었다.

"아.. 그때 그 제시카! 아마 아버지가 중국 사람이었지?" 딸도 기억이 난다는 시늉을 했다

"그래 맞다니까.. 이게 얼마만이야?" 사위는 과도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딸은 인사를 하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나는 멀어지는 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미스 신 언니는 더 젊어진 듯 보였다. 언니를 잊으려 했던 시간들이 한스럽기만 했다. 내쉬기만 하던 한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사위에게 술을 따르라고 팔을 뻗어 잔을 내밀었다.

"술?.. 술이요? 장모님.. 술 드시게요?" 사위가 커지지 않는 작은 눈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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