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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Jul 18. 2024

노인의 MBTI

아는 분 아니었나?

할 일 없으면 으레 들여 다 보는 게 카톡이다.

카톡은 지인들의 프로필이 바뀌었다고 친절히

알려주기까지 한다.

왜? 모르겠다. 뭐 궁금하지도 않다.


아버지의 프로필 사진이 또 바뀌었다.

가끔 나가시는 사회복지관에서 이상한 걸 배워 오셔서

은근슬쩍 보여주시는 것에 보람을 느끼시는 분이다.

뉴욕에 있는 아들이 관심을 가질 리 없다.

또 사진을 바꾸셨나 보다 했는데,

이번에는 눈에 확 띄는 것이 있었다.



열정!! ENFJ

솔직히 많이 놀랬다.

80세 노인이 부르짖는 열정이 아니었다.

80세 노인이 MBTI를 해보셨네도 아니었다.

내가 놀란 건 첫 알파벳 F 때문이었다.


MBTI에 대해 잘은 몰라도 I와 E 차이 정도는 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만남부터 말없이 조용하셨고,

모험이나 새로운 것은 무조건 거부하시는 분이 E? 갑자기?

아버지는 어떤 모임에서도 계셨는지 안 계셨는 지를

헷갈리게 하시는 존재감 전무의 존재였다.

목소리마저도 여리여리 조용조용하시다.

혼잣말인지..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듣는 사람에게 고민의 시간을 선사하신다.

E 다음의 NFJ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다.

평생을 내향적이라고 생각했던 분이 외향적이라고 하시잖나.

도대체 어디서 무슨 테스트를 하신 거지?

MBTI 테스트를 하시면서 워너비를 고르신 건가?


MBTI에 대한 의구심만 커지게 된 계기가 됐다.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절대 E 같은 사람이 아니다.

테스트 결과 나는 INTJ 란다.

사고형 답게 좀 더 생각을 해봤다.

만약 아버지가 진짜 E 타입이라면?


나는 아버지를 너무 몰랐다는 당연한 결과가 따라온다.

내 아들에 대해서는 첫 만남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알려고 했으면서, 더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분에 대해서는 정작 아는 게 없다.


솔직히 MBTI 테스트에 의심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조그만 가능성에 아버지를 다시 발견해보려 한다.

집안에서는 철저히 I 셨던 분이 바깥에 나가서는

어떤 분으로 변신을 하는지는 열외로 하겠다.

아버지를 너무 몰랐다는 반성에서 시작해 볼 생각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분의 일부분이기라도 했을까?

당연하다는 생각이 낯설기만 하다.

삶에 당연함은 없다고 다시금 느낀다.

아버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

아들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안다.

아들을 평생 속이신 거예요?를 따질 겨를이 없다.


희한하게도, 내 아들도 아버지와 같은 ENFJ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두 사람이 나보다 친한 건가?

ENFJ와 맞지 않는 타입 중에 INTJ 가 있단다. 그게 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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