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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Sep 25. 2024

갑자기 암스테르담?

아무튼 흥미로운 곳 

여름 내 같이 있던 아들을 기숙사에 내려놓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시, 나와 아내 단 둘

좀 전까지의 조잘조잘 대화가 아직 귓가에 남아있는데,

이제는 침묵이 차 안의 공기를 지배하고 있다.

뉴욕이 가까워지며 길까지 막힌다.


"우리 어디로 여행이라도 갈까? 침묵을 깨는 아내의 음성

"어디로?" 

"아무 데나.."

"그럴까.."

"애들 방학도 끝났고 이제 비수기고.. 싼 티켓 있을 거야."


딱 하루동안 인터넷을 뒤지던 아내가 목적지를 암스테르담으로 정했다.

조용한 바닷가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봉변을 당한 느낌이다.

갑자기 해외여행? 갑자기 암스테르담?

돈을 버는 아내는 역시 위대하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예전 기억 속, 네덜란드는 댐의 구멍을 밤새 막고 있었다는 어느 소년의 이야기와

달력 사진으로 볼 수 있었던 색색의 튤립과 그 뒤의 풍차 정도.

아 참.. 히딩크의 나라!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올랐다.

딱 하나의 이유. 아내가 정한 날짜의 비행기 티켓과 호텔비가 싸다는 이유 때문에..

9시간의 비행시간 끝에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과의 시차는 6시간.

뉴욕에서 라면 한참 자고 있을 시간.. 제정신일리가 없다.

비몽사몽에 기차표를 구입하고 호텔이 있는 센트럴 역으로 갔다.

호텔 체크인 시간은 4시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11시. 당연히 방은 준비 돼 있지 않았다.

짐만 맡기고 호텔을 나왔다.

뭘 할까?를 생각하다가 생각난 게 '하이네켄의 나라'라는 것.

암스테르담의 일정은 호텔 근처 바에서 시작됐다.


5박 6일의 일정 동안,

국립 박물관, 반 고흐 박물관, 안네 프랑크의 집, 마켓 플레이스, 할렘, 

Red light district (홍등가), 그리고 지치면 들렸던 술집들.


국립 박물관의 그림들은

일상 블로그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1600년대, 그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쁘고 멋있게 폼 잡은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 아니다. 귀족도 아니다.

일상 그 자체의 모습에 공감이 됐다. 유명한 그림 '우유를 따르는 여인'같은 

그림보다는 한편에 술주정뱅이가 자리하고 있는 그림들에 눈길이 갔다.

어쩜 그렇게 내 친구들과 닮았는지..




화가 반 고흐의 일생을 보여주는 그의 박물관. 

박물관 티켓을 못 구해 애를 태우는데 호텔에서 일하는 나이 든 아저씨의

도움으로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이분이 박물관 멤버라고 하시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암스테르담까지 와서 반 고흐 뮤지엄에 못 갔다면 두고두고 억울했을 거다. 

37년의 인생을 워낙 드라마틱하게 살아서였을까? 

유독 그의 팬이 많은 것 같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이 사람이 목사였던 아버지와 애증의 관계였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딜 가나 아버지가 문제였나?!





지금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던 안네 프랑크의 집 방문.

건물 뒷방에서 숨어 지내다 발각 돼, 나치 수용소에서 죽은 소녀의 가족이 살던 집이었다.

소녀가 쓴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내가 아는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그녀의 짧은 인생은 영화로도 몇 편이 만들어진 걸로 안다.

그중 한편을 어릴 적에 봤고 소녀의 비극에 눈물을 흘렸었다.

2년여를 숨어 지내던 은신처에서는,

소리가 새 나갈까 봐 인기척을 지워야 했고 낮에는 화장실 물 내림도 못했다고 한다.

창가에 앉아 길가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게 매일매일의 큰 기쁨이었다는 소녀.

그 소녀는 나치 수용소에서 15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만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나치의 만행이 두고두고 용서가 안 되는 이유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지금의 중동 상황.

되풀이되는 살인의 역사가 공포스럽기만 하다. 

안네는 이 건물의 뒷방에서 2년을 숨어 지냈다.


기대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암스테르담이 흥미로운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많은 나라에서 불법으로 간주되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합법이다.

그것도 대 놓고 하는 합법.

암스테르담에 간다면 커피숍을 조심해야 한다.

친구들과 둘러앉아 마리화나를 피워대는 곳이 커피숍이다. 

이런 커피숍이 길거리에 즐비하다. 뉴욕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커피가 마시고 싶다면 카페를 가야 한다.

해가지면 빨간색 등이 들어오는 홍등가는 어떤가?

쇼윈도 안의 반나체 여자들이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남자도 유혹하고 여자도 유혹한다.

길가에는 라이브 성인 극장에 성인용품점까지.. 걷던 걸음은 느려지기만 한다.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을 마약과 섹스를 이용해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그런데도 잘들 사나 보다. 2023년 기준 GDP는 6만에서 6만 5천 달러.

국민들 삶의 만족도 역시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Red Light District (홍등가)

실망이랄 건 없지만 화장실 인심이 각박하다. 

쇼핑몰 화장실도 사용료를 내야 했다.(0.5유로)

본전 생각에 머리라도 감고 싶었다.

식당에서도 공짜물은 없다. 무조건 사서 마셔야 한다.

물값은 맥주값과 비슷했다.

물이냐? 맥주냐? 선택은 당신의 몫!

시장에서 생선 한토막(Haring)을 샀더니 와인과 같이 맛보라며 

와인 한잔을 공짜로 준다.

치즈 가게에 들어갔더니 샘플로 먹을 수 있는 각양각색의 

치즈가 널려 있다.

화장실 사용에 돈 받고, 물도 안 주던 나라가 와인하고 치즈 인심이 좋다.

밀당의 새로운 세계?


네덜란드는 해상 무역, 금융 혁신, 정치, 종교적 자유, 예술과 과학 분야의 성과.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평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약과 섹스만 있는 나라는 아니라는 말이다.

뉴욕의 옛 이름이 뉴암스테르담이다. 

뉴욕의 할렘도 원조는 네덜란드의 할렘이다.

우리나라 크기의 반도 채 안 되는 나라가 놀랍기만 하다.

다소 논쟁적일 수 있겠지만 그들의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세계를 상대로 한 어떤 배짱. 총을 들이 밀고 장사하자는 발상 자체가 정상은 아니지 않나? 



'공해 만드는 공장들은 모두 해외에 있지만

공장의 두뇌는 모두 네덜란드에 있다'는 어느 현지인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세계적인 대학과 연구 기관들을 보유하고 있고 첨단 기술과 혁신의 정책을 통해 

스타트업과 IT, 연구개발 분야에서 우수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단다.


그들은 할 수 있는데 우리는 못 하는 것,

그는 했는데 나는 못 했던 것.

갑자기 떠난 여행의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다.

여행이 끝나고, 공부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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