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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01. 2024

바람에 실려오네

학교라는 조직이 좋은 점도 많지만 아쉬운 점도 꽤 있다.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정들었던 동료들과 헤어지는 것이다. 심지어 5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면 인간관계에 지각 대 이동이 일어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끈끈했던 인연을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세 개의 학교에 근무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아이들과 유독 힘들었던 해 동학년 선생님들과의 끈끈한 유대로 그 시기를 잘 버티기도 했다. 독특한 교장 교감선생님 스트레스를 함께 흉을 보며 유쾌하게 푸는 날도 있었다. 지금도 만남을 이어가는 모임을 손에 꼽아본다. 손가락 몇 개를 겨우 꼽는다. 비슷한 또래 모임도 있고 열 살 차이를 훌쩍 넘는 선배들과의 만남도 있다. 띠동갑 아래의 젊은이들이 노땅이 되어가는 나를 끼워주는 인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짬뽕된 그룹도 있는데 어제 모임이 딱 그랬다.


10여 년 전 배드민턴을 치면서 친해진 사람들. 살을 빼보려고, 친구를 따라서, 체력을 키워보려 멤버들이 일주일에 두 번을 만나 운동을 했다. 배드민턴 레슨을 개인별로 받고 삼삼오오 게임을 하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원도 늘어 일곱 살 조카가 등장하기도 했고 사춘기 아들 딸이 참여하기도 했다. 수준 차도 들쭉날쭉해서 준선수급 실력의 동료가 완전 초보를 상대로 게임을 뛰어주는 모습은 일반 동네 배드민턴 클럽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춤추는 셔틀콕 하나에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게 웃기도 하고 멋진 드라이브엔 “나이스~”를 연방 외쳤다. 실력도 늘어 헤어핀을 멋지게 넣어 포인트를 올리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날카로운 드라이브를 주 무기로 상대 허를 찌르는 이도 있었다. 파워가 좋은 선생님은 하이클리어를 빵 빵 시원하게 날렸고 수시로 멋진 드롭샷도 찔러 넣었다. 운동엔 영 젬병인 나는 “얍!”하는 기합소리로 파이팅만은 선수급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자연스럽게 뒤풀이 시간으로 이어졌는데 이게 또 꿀맛이었다. 캬~~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순간 살을 빼겠다는 의지는 온 데 간데 사라졌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안주 퍼레이드는 급식만 먹던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배드민턴 모임이 점차 뒤풀이에 방점을 찍는 모임으로 변질? 돼 갔지만 맛있는 수다와 운동을 할수록 살이 찌는 기이한 체험은 즐겁기만 했다.


사실 이 운동 소모임이 몇 년간 지속된 건 순전히 두 명의 핵심 멤버 때문이다. 한 분은  모임을 주도하는 대빵 언니고 또 다른 한 분은 레슨 담당 선생님이셨다. **언니는 운동 실력도 뛰어나지만 끝도 모르는 술실력으로 우리를 휘어잡았다. 보통 교사들의 회식은 밤 9시를 넘기지 않는데 우리 모임은 늘 밤 10시, 11시까지 이어지곤 했다. 대빵 언니는 누가 소주를 먹는지 맥주를 짬뽕하는지 콜라만 들이키는지 칼같이 체크하며 구박하는 재주도 뛰어나 술자리의 공기는 늘 경쾌유쾌통쾌했다. 분위기에 취해 늘 자신의 주량을 넘기기도 예사였다. 그렇다고 다 주당만 모인 게 절대 아니였다. 주스 한 잔을 들이켜고도 콜라 한잔으로 버티면서도 취한 듯 좌중을 압도하는 이도 있어 더 즐거운 시간이였다.  


정확한 연도가 기억은 안 나지만 교직원배 배드민턴 리그전이 있었던 해였다. 복식으로 게임이 진행됐는데 우리 팀은 만나는 팀마다 참패를 거듭했다. 결국  4경기 모두 충격의 전패. 나의 미천한 실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는데 은근 열받아서 빈속에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혈관을 타고 알코올이 내 몸 구석구석으로 짜릿하게 퍼져갔다. 소주 한 병이나 먹었을까. 한 시간도 안돼 완전 만취상태가 됐다. 결국 갓 초임발령받은 지 몇 년도 안된 후배가 택시까지 합승해서 집 안방까지 모셔다 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눈이 풀리고 혀가 꼬부라진 엄마 모습을 처음 본 딸들. 한 명은 학원으로 도망가고 한 명은 변기통을 붙잡고 왝 왝 거리는 엄마 등을 두드려줬다. 고백건대 내 인생 젤 창피했던 장면 중의 하나다.


또 한 분의 핵심 멤버는 핸섬 가이 ***선생님. 아이들 체육수업도 멋들어지게 했지만 성격도 좋아 말 많은 누님들과 여동생들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상대해 줬다. 우리가 매주 열심히 배드민턴을 쳤던 건 어쩌면 훈남 선생님의 매력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슬픈 목소리의 여가수가 읊조렸듯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 클럽도 한 두 명씩 학교를 옮기면서 인원이 줄어들기 시작하다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하지만 우리 대빵 언니는 방학 때는 손수 술 사놓고 집으로 불렀고 잊을만하면 번개팅을 날렸다. 교육청을 옮기고 이사를 갔어도 그 시절 언니 동생 친구가 보고 싶어 달려가는 우리들.


지난 주말은 오랜만에 이들과 만남이 있었다. 함께 산길을 걸으며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원 없이 봤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술잔도 기울였다. 못 본 사이 대빵 언니는 완경 파티를 두 번이나 했고 중딩 아들 딸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우리들도 조금씩 변했다. 핸섬 가이 운동 선생님은 교단을 떠나 잘 나가는 양복맨이 되었고 우리는 그의 멋진 변신을 아낌없이 축하해 줬다. 여전히 수다는 끝이 없고 웃음소리는 하이톤이다. 이렇게 왁자지껄 웃어본 지가 얼마만인지. 모두 생기가 넘쳐났고 비로소 사람 사는 기분을 제대로 느꼈다.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네.’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셔틀콕 빵 빵 때리던 젊은 날 그 시절은 지나갔지만 우리의 즐거운 수다는 계속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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