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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23. 2024

곱슬머리 번개맨 오해



동아리 활동이 끝날 즈음 교실 밖이 소란스러웠다. 다른 곳에서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오려는 우리반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수업을 끝내고 정리할 즈음에 밖에서 큰 소동이 난 것 같았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우경이하고 영준이가 주먹질하고 싸워요.”

놀라 뛰쳐나가보니 두 녀석이 엉켜있다. 하굣길 아이들이 구경하러 몰려들 뿐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앞을 번개처럼 달려가는 한 아이가 있었다. 전광석화(電光石火)! 딱 그 표현이 맞다.

“야! 야! 야! 진정해!”

변성기 특유의 불안한 저음, 가만히 보니 옆반 6학년 곱슬머리 남자애였다.      


올해 우리반 교실은 다른 5학년 반들과 뚝 떨어져서 6학년 반들과 붙어있다. 나도 작년에 6학년을 가르쳤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춘기 아이들은 혼란 그 자체다. 복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남자여자 몰려다니며 비명을 꽥꽥 질러대는 게 일상이다. 옆반 곱슬머리 남자아이는 게 중에서도 눈에 확 띄었다. 문제아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여자 화장실 앞을 서성거리며 장난을 쳐서 몇 번 주의를 줬다. 우리반 여자아이들에게도 그 오빠 나타나면 피하라고 특별히 당부까지 했다. 가끔 담임선생님과 복도에서 면담하는 모습도 보였다. 선생님 속을 어지간히 썩이고 있구나 싶어 평소 지나가는 모습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곱슬머리 그 아이는 덩치 큰 우경이를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울음이 터진 영준이를 진정시켰다. 두 아이를 차례로 상담하고 화해시키고 나니 퇴근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제야 6학년 곱슬머리 그 아이 생각이 났다. 도대체 어디 있다가 그렇게 재빠르게 나타났지? 번개처럼 나타나 두 아이를 떼 놓던 모습, 의젓하게 동생들을 달래던 목소리. 곱슬머리의 반전 모습에 미소가 번졌다.      


작년에 가르친 연우도 우리반 ‘사고뭉치’였지만 또 나를 제일 감동시킨 제자이기도 했다. 수시로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해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담임에게는 마음을 열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 정이 많이 들고 예뻤던 아이다. 하지만 올해 스승의 날에 찾아온 친구들이 전해준 연우의 중학교 생활은 안타까웠다. 벌써 여러 친구와 주먹질을 했고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혔다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연우는 혼자서 불쑥 교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려요.”

쑥스럽게 내민 종이가방엔 커피 두 병과 초콜릿 박스가 들어있었다. 카페인 먹으면 잠을 못 잔다고 무심코 했던 나의 말을 기억하고 디카페인을 사 온 제자. 밸런타인데이 때 선생님 생각나서 사뒀던 초콜릿이라며 5학년 동생들과 나눠 먹으라고 했다. 왜 친구랑 싸웠냐고 했더니 벌써 다 화해해서 친해졌다며 선생님은 이제 자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다음엔 혼자 오지 말고 친구들과 같이 오라고 했더니 그러겠다며 씩 웃었다. 걱정 많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제자의 마음이 읽혀 더 짠했다.       


다음날 초콜릿과자 25개를 챙겼다. 우경이와 영준이를 불러 옆반 6학년 선생님께 심부름을 보냈다. 어제 도와준 형 덕분에 화해 잘했다고 감사의 말과 선물을 전하라고. 잠시 후 6학년 선생님께서 답 문자를 보내셨다. 곱슬머리 남자아이는 ‘꾸러기’지만 든든한 아이라고. 반 친구들이 초콜릿과자 덕분에 그 친구를 다시 본 것 같다고 고맙다고 하셨다. 곱슬머리 남자아이의 장점을 크게 보시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아무리 문제아도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변화의 싹은 틔워진다. 자세히 봐야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말은 진리다. 중학생이 된 제자 연우의 진짜 모습도 곧 누군가는 바라봐줄 것이다. 그 힘은 또 연우의 마음을 열게 하겠지. 이제 곱슬머리 번개맨이 나타나면 엄지 척을 해줘야겠다. 역시 단점은 티끌처럼 보고 장점은 태산처럼 봐야 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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