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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l 21. 2024

'낭독회'에 초대합니다!



지난 3월부터 선생님들과 낭독동아리를 하고 있다. 글쓰기동아리, 운동동아리, 정리동아리 등 하나같이 해보고 싶은 활동이었지만 자석 끌리듯 ‘낭랑한 하루’를 선택했다. 나는 내 목소리가 싫다. 불안정한 톤에 가는 음성, 마음에 안 든다. 가끔 사람들이 탤런트 이영애 목소리를 닮았다고 할 때가 있다. 정말 듣기 싫은 말이다. 산소 같은 여자의 외모는 몰라도 그녀의 음성은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해서 채널을 돌리곤 했는데 하필 왜! 낭독동아리를 시작하면서 나의 목표는 딱 하나였다.

내 목소리를 사랑하기!  


동아리 회원 7명.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좋은 숫자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는 매주 일요일 아침 줌으로 만났다. 얼굴보다 목소리로 정이 들고 친해졌다. 서혜정, 송정희 성우님이 쓴 ‘나에게 낭독’이라는 책을 함께 소리 내어 읽으며 ‘낭독’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이 책에서는 낭독이라는 게 결국은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자신의 소리를 사랑하게 되어야 자신감이 생기고 텍스트와 만남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저 소리 내어 책만 읽으면 될 줄 알았는데 결국엔 모든 것이 그렇듯 이것도 자기 수양이자 자기 성찰의 과정이었다.  


낭독을 배우면서 제일 먼저 바꾼 일은 출퇴근길 음악 대신 내 목소리를 들으며 걷는 일상이다. 이렇게 대놓고 내 목소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처음엔 참 어색하고 낯설었다.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 익숙해지고 친숙해졌다. 똑같은 내용도 녹음된 장소, 시간, 심리상태에 따라 확연히 달라졌다. 출근 전 쫓기듯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엔 조급함이 담겨 호흡이 불안정했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실에서는 편안함이 있어 이야기에 여유가 넘쳤다. 잠자기 전의 소리엔 피로감이 덕지덕지 붙어 소리가 테이프 늘어지듯 했다. 글쓰기가 그렇듯 결국 소리 내어 무언가를 읽는 것도 내면의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자기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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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희 아나운서의 ‘우리 편하게 말해요’라는 책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는 그녀의 삶의 철학에 격하게 공감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면 저절로 목소리가 떨리고 횡설수설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안성맞춤 책이었다. 결국엔 소심하고 자신감 없는 불안한 내면의 정체를 가만히 들여다보라는 옆집 언니의 애정 어린 충고가 가득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남을 의식하는 소심함을 극복하기가 전부라고 했다. 또한 잘 들어주기가 좋은 관계의 첫걸음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꼭 기억하고 싶은 말이었다. 상대와 편하게 얘기하는 비법은 별 게 아니었다. 나의 내비게이션을 마음대로 켜지 않고 상대가 원할 때만 켜라는 것이었다.  ‘청산유수’ 이금희 아나운서는 글도 말처럼 술술 잘 써서 놀랐다. 말을 못 하고 사는 사람은 없지만 말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결국 말 잘하는 것은 경청, 공감하며 나의 말을 내식대로 당당하는 것, 결국 낭독도 그러할지어다.  


낭독을 잘해보고 싶은 우리는 본격적인 목소리 훈련에 들어갔다. 매일 리더선생님이 내주시는 과제를 하나씩 인증하며 서로의 낭독을 체크했다. 가슴이 아닌 아랫배에 힘을 주며 호흡하기, 마스크 울림을 최대한 느끼며 공명 발성하기, 그리고 자음 모음 정확한 발음 훈련이 이어졌다. 이중모음 입모음 정확히 하기 등 초등학교 1학년이 배우듯 하나씩 연습하며 소리 냈다. 우리말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 장음과 단음만으로 뜻이 달라지니 소리로만 텍스트를 전달해야 하는 낭독이야말로 그런 작업이 중요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열린 음악회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되었다가 라디오 DJ도 했다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도 읽어 내려갔다. 명랑한 얼굴로 방방 분위기를 띄웠다가, 다정한 친구처럼 속삭였다가, 진지한 주제는 심각하게 전달했다. 즐거운 훈련 시간이 흘러갔다.


한 번은 나의 목소리를 지인들에게 보내고 반응을 살펴보라는 숙제가 있었다. 나는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 오프닝 멘트를 녹음해서 여러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대형마트에 근무하는 동창생이 그 녹음본을 쇼핑센터에 틀었는데 순간 매장의 쇼핑객들 반응이 폭발적이었단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냐고 뭔가 어색하지만 신선하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솔직한 평을 가감 없이 전한 친구도 있었다. 귀가 간지러워서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며. 들어준 게 어디냐며 쿨하게 말했지만 나름 ‘척’ 하지 말라는 애정 어린 완곡한 표현으로 해석했다.  


낭독을 배우는 시간은 학급운영에도 스며들었다. 두 녀석이 주먹질하며 엉켜 싸운 날이었다. ‘순한 사람이 폭발하면 더 무섭다.’ 녹음본을 학급 게시판에도 올렸다. 백 마디 잔소리보다 울림 있는 짧은 낭독이 더 효과적이었음을 확인했다.

“순하고 착한 친구가 화내면 정말 더 무서워요.”

“저도 폭발할 것 같으면 혼잣말해서 그 상황 잊어볼게요.”

“선생님처럼 또랑또랑 말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어요.”


우리반 아이들에게도 낭독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학기 초부터 매일 아침 15분 소리 내어 책 읽는 시간을 만들었다. 한 명씩 돌아가며 낭독하는 그 시간은 숨소리도 조심스러운 몰입의 경험이다. 친구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따라가며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가 됐다가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을 맞아 가족을 좀 더 이해하는 열두 살이 됐다. ‘국경을 넘는 아이들’의 탈북 과정 들으며 또래의 비참한 생활을 간접 체험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친구의 의지에 새삼 감탄하며 목소리가 더 비장해졌다. 아침 낭독을 하며 아이들은 스스로 마스크를 벗었다. 앞으로 소리를 내지르며 발음도 분명해졌다. 한층 더 편안하게 책을 읽어내는 아이들의 모습은 내가 낭독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놓쳤을 발전이었다. 교사의 배움과 성장이 교실에 반영되고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때 참 뿌듯해진다.  


지난 5개월의 동아리 활동이 마무리되고 있다. 루리 작가의 ‘긴긴밤’ 낭독회가 이번 주 수요일저녁에 예정되어 있다. 7명의 낭독가들은 자기만의 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때론 평화롭게, 때론 슬프게, 때론 격정적으로…. 세상에 단 한 마리 남은 ‘흰 바위 코뿔소’ 노든의 삶의 여정. 활자가 목소리로 살아 각자의 가슴에서 감동의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모든 이가 보냈을 긴긴밤, 그 눈물과 고통, 사랑에 새삼 감사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긴긴밤을 견뎌내며 누군가를 별처럼 빛나게 하고 싶다. ‘우리, 함께’라는 연대의 힘으로 여러분 모두를 우리의 낭독회에 초대한다.  


그리고 꼭 밝히고 싶은 하나, 낭독 여정의 중간 경유지에 이 팻말 하나 붙여두고 싶다.

‘내 목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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