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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Oct 20. 2024

부산 싸나이들 진국이다 아입니꺼!

 

절친이 시모상을 당했다. 그런데 장소가 부산이다. 어떡하지.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3년 전 대구 사택서 사부님 포함, 셋이서 마주했던 유쾌했던 술상과 팔공산 산행이 생각났다. 너무 힘들 때 하룻밤 재워주고 술잔 기울여준 부부의 마음에  바로 금요일 오후 기차표를 끊었다. 당일 귀경이 도저히 힘들 것 같아 남편을 꼬셨다.

“여보, 주말 부산 금정산 갈래?”

“좋아, 대신 기차표, 숙소는 당신이 모두 예약하는 조건으로!”

“오케이!”

수시로 예매 창을 들락거리며 KTX 좌석을 어렵게 구하고, 숙박업소도 잡았다. 금요일 아침 등산 가방 메고 출근하는데 남편이 내 눈치를 보며 입을 뗐다.

“여보, 진짜 미안한데 혼자 가면 안 돼? 기차 시간을 도저히 못 맞출 것 같은데….”

아~ 저 집돌이 남편, 그럼 처음부터 안된다고 할 것이지. 한소리 하려다 참았다.

“알았어.”

의외의 쿨한 나의 반응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내 절친, 나의 멘토 송쌤이 계셨기 때문이다. 부산 동래가 고향이신 송쌤께 조문을 함께 가자고 했다. 송쌤은 연로하신 어머니와의 하룻밤도 포기하고 금정산도 같이 걸어주마 하셨다.  


예상치 못한 서울 조문객에 눈이 휘둥그레진 절친 부부의 황송한 감사 인사를 뒤로하고 부산 일정 2부가 펼쳐졌다. 갑자기 쏟아진 비와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간신히 숙소를 찾았다. 송쌤과 함께하는 여행은 늘 돌발상황 얘깃거리 한 바가지가 생기곤 했는데 이번 일정도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로 밤늦도록 수다를 떨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요서~~ 쪼매 가면 바로 금정산입니더. 걸어 가이소!”

다음 날 아침 구수한 사투리의 호텔 주인장과 인사를 나누며 산행에 나섰다. 그의 선한 웃음에 진짜 쪼매 걸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도로길을 한참 고 오르막 산 중턱 금정마을까지도 꽤 걸렸다. 거기서도 문제가 생겼다. 등산로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인적도 없어서 부산 토박이 송쌤은 사람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니셨다.

“만덕터널 쪽으로 가서 금정산 올라갈라고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에이, 여긴 그리 가는 길 아닌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리~함 가보이소. 산길은 잘 맹글어 놨을 깁니더!”

뭐, 자고로 산이란 오르막만 있으면 올라가면 된다. 늘 그렇듯 별 걱정 안하고 걸었다. 꼬불꼬불 나무계단도 지나고 터널도 통과했다. 그런데 도통 사람이 안 보였다. 이상하네. 어제 비가 쏟아졌다 쳐도 너무 한적하다. 순식간에 안개마저 자욱해지자 슬슬 불안감이 몰려왔다.

두리번거리다 사람이 나타나면 두 여인의 '구걸 산행'이 시작됐다. 처음 우리 레이다 망에 들어온 사람은 반바지 차림의 몸집이 다부진 아저씨였다.

“저 따라오이소~ 요리 가면 됩니다. 근데 멧돼지 만날라면 어쩔라꼬 여자 두 분만 댕깁니꺼.”
 예? 멧돼지가 나온다고요?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 소식에 잔뜩 긴장됐다. 졸졸 아저씨 뒤만 따라가는데 그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자꾸만 처졌다. 길만 가르쳐주면 우리끼리 갈게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 무슨 절이 나오면 그 위로 가면 된다고 하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와, 저렇게 속보가 가능하다고? 입 벌리며 감탄하는 사이 절 이름을 까먹었다. 산사 나오면 그리 가면 되겠지 했는데 여기도 절 표지판, 저기도 절 표지판이다. 대덕사? 금강사? 옥불사? 정수사? 아이고. 무슨 산에 절이 이렇게나 많냐고. 이러다 날 새겠다 싶어  암자 표지판 따라 급경사를 올랐는데 바위 동굴에 자그마한 기도처만 있는 막다른 길이다. 그때부터 우린 뭐에 홀린 듯 만나는 부처상 앞에서 연신 합장했다.

“부처님. 부디 금정산 무사히 걷게 해주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러다 찾은 이정표 하나. 미륵암! 꽤 가파른 오르막길이 보였다. 드디어 등산로를 찾은 것 같아 단숨에 올랐다. 송쌤의 말에 따르면 금정산은 사람들이 붐벼 그들만 따라가도 정상에 이른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은 출발점을 잘못 골라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 안개 자욱한 산길을 오붓하게 걸었다. 위에 입은 티셔츠가 홀딱 젖었다. 앞만 보고 걸었는데 한 시간쯤 지났을까. 저 위로 하늘이 열렸다. 능선길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그때였다. 뒤에서 남자들 음성이 들렸다. 아, 우리의 구세주가 드디어 나타나셨다.


“어디서 오셨는교? 이런 날씨에 여자 두 분은 위험합니데이.”

등산객 두 분은 서울서 온 낯선 산객을 신기해했다. 산길 초입에서 헤맨 이야기를 풀어놓자 자기들만 믿으라며 따라오라고 한다. 휴, 이제 살았다. 그런데 이분들, 행님 아우님 하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티격태격 싸우며 걷는데 거의 만담 수준이었다.   

“우린 여기 빠삭합니더, 요~쯤 가면 남문 나올끼고, 쫌만 가면 동문 있고, 그럼 또 북문 금방입니더. 기차 시간 몇 시라고요? 충분합니더. 우리만 믿으소!!”

서울 손님한테 금정산이 품은 비경 하나 보여주겠단다. 낯선 남정네를 따라가도 되나? 살짝 걱정도 됐지만, 멧돼지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 조금 걷다 보니 진짜 그림 같은 암자가 나타났다. ‘휴정암’. 고즈넉이 산속에 폭 싸인 암자가 더없이 아담하고 평화로웠다.

“어때요? 맞지요? 기가 막힌다 안 합니까. 먼 길 오셨는데 더 기맥힌 맛집 하나 알려줄게요.”

먹을 거 싸 와서 괜찮다는 우리를 어차피 가는 산길에 있다며 막무가내다.  남문마을 ‘하얀집’. 정말 산에 음식점이 있었다. 염소 키우던 축사가 음식점으로 탈바꿈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8000원짜리 보리밥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서울분들요!! 우린 요기서 하산해야겠습니더. 갑자기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겼네요. 요 위로 쪼매만 올라가면 됩니데이!!”

금정산 정상까지 안내하겠다던 구세주 아저씨들은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다. 주 등산로에 진입했겠다 사람도 드문드문 보이겠다 걱정 없다고 판단한 우리는 허리 굽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18.8km의 금정산성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삼국시대에 지어졌다는 산성을 따라 평탄한 길이 이어졌는데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임진왜란 발발때 처절히 싸웠던 동래부사 송상현과 동래순절도 이야기를 하며 송쌤의 어린 시절, 부산에서 아이들 키우던 추억 보따리가 풀어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동문이 나왔다.

아저씨 한 분께 사진을 좀 찍어달라 부탁했는데 그분이 또 우리를 걱정해주신다. 당신과 방향이 같다며  여자 둘은 위험하니 동행해 주시겠단다. 아이고, 경상도 아저씨들이 원래 이렇게 자상했던가. 우리집 남편 같은 무뚝뚝한 사람들은 모두 집에 있고 친절한 사람만 산에 오는 건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60대 후반에도 현장에서 왕성하게 일하고 계시다는 아저씨는 공사장의 타일 전문가셨다. 국가공인 자격증까지 보여주시며 혹시 일손 필요하면 꼭 연락하라고 하셨다.

푹신한 흙길과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자 시야가 확 트였다. 자욱한 안개 탓에 부산 시가지와 김해 방향의 낙동강이 흐릿했다. 모든 걸 다 누릴 순 없다. 땡볕 없고 시원한 바람 간간이 불어 좋으니 그거면 만족이다.

쪼매보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북문이 아직이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가 가까워졌다. 2시까지는 범어사까지 하산해야 한다고 하니 순간 아저씨 낯빛이 순간 변하셨다.

“어, 그 시간까지 힘들 것 같은데….”

네? 그게 무슨?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니 아까 구세주 아저씨들은 이 길 따라가면 하산 후 떡을 치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하셨는데요. 3시 반 KTX 못 타면 난리 난다며 거의 울부짖었더니 아저씨가 비장한 표정으로 앞장섰다. 금정산 정상 고당봉은 포기하고 북문에서 바로 범어사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때부터 세 사람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체력이 떨어져 좀처럼 속력이 안 났다. 타일 아저씨는 축지법을 쓰는 것 같았다. 걷다가 눈만 들면 저만치 앞장서서 빨리 오라며 우리를 재촉하셨다.  

‘아저씨, 우리 벌써 5시간째 걷고 있어요….’


정식 등산로로는 도저히 시간을 못 맞추겠다고 판단한 아저씨는 결국 샛길로 빠져 북문으로 내달리셨다. 우리도 거의 뜀박질 수준으로 따라갔다. 이런 지름길은 현지인 아니었음 상상도 못 했을 거라며 감탄하는 사이 저 앞에 드디어 북문이 보였다. 원래는 우뚝 솟은 고당봉이 보인다는데 오늘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만큼은 장관이었다. 타일 아저씨는 이 길 따라 내려가면 범어사 나오니 빨리 가라며 인사도 안 받고 정상쪽으로 향하셨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30분 안에만 하산하면 기차 탈  있겠다.


그런데 올라오는 사람마다 말이 달랐다. 20분쯤 가세요! 할 땐 앗싸~ 기차 탄다.! 또 걷다 물어보면 30분은 더 걸려요! 한다. 왜 갈수록 시간이 느냐고! 운명에 맡기고 빨리 걷는 수밖에 없다.

하산길 바윗길이 미끄러워 송쌤의 무릎과 발목이 걱정됐다. “송쌤? 괜찮아요? 바위 미끄러워요! 조심하세요.” 막무가내로 대책 없이 산 댕기다 이런 날 올 줄 알았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준비성 없는 나를 자책하며 내리막을 걸었다.

드디어 목탁 소리가 들리더니 웅장한 천년고찰의 지붕이 보였다. 신비로운 경내를 살필 겨를도 없이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전철역까지 갈 수 있는 택시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지.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차 두 대가 쏜살같이 나란히 빠져나갔다. 아까비! 10분 안에 도심 역사까지 가야 하는데, 포기해야 하나 힘이 딱 빠지려는 순간 차 한 대가 저 위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무작정 달려가며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기적처럼 차가 멈췄다. 앞 창문이 열리고 인상 좋은 아저씨가 웃고 있었다.

“범어사역까지 태워주실 수 있나요? 부탁합니다.”

빨리 타라고 손짓하신다. 우리의 긴박한 사정을 들으시고는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남 일 같지 않다고 하셨다.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에서 헤매다 부산행 기차를 놓칠뻔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따뜻하고 넉넉한 인품이 절로 묻어났다.

“부디 무사히 기차 잡아 타고 집에 가이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범어사역 전철 역사로 냅다 뛰었다. 개찰 후 다다닥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전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앗싸!! 오늘 행운은 모조리 우리 차지다. 출입문이 열리고 자리에 앉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산역까지 43분 소요, 시간 계산하니 부산역 승차장에서는 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창밖으로 스치는 금정산을 쳐다보며 송쌤과 나는 마구 웃었다. 뭐 이리 온통 쫄깃함 투성이냐고.

오늘 아침 8시부터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산밑에서 등산길을 못 찾고 이리저리 뺑뺑 돌았던 우리는 멧돼지 만나지 말고 조심하라던 경보 선수급 아저씨를 만났다. 구세주라고 치켜세웠던 보리밥 함께 먹었던 그들을 뻥쟁이 아저씨라며 욕 한 바가지 퍼부었던 장면도 있다. 빨간 대추 몇 알을 건네며 사진 찍어주던 국가대표 타일 아저씨 덕에 산에서 뜀박질도 했다. 황당한 아줌마들의 히치 하이킹을 받아준 미소 천사 아저씨의 마음까지 믿기 어려울 만큼의 부산의 환대가 가득한 하루였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 휴가철이면 늘 바닷가만 찾던 그곳의 산을 꼭 오르고 싶었다. 길치 방향치 두 아줌마가 무대뽀 구걸 산행을 했지만 그 여정이 참 즐거웠다. 안개 자욱했던 산길에서 만난 그들의 삶과 타인을 향한 너그러움은 몽환적이었다. 활력이 없어졌다며 그 옛날의 부산이 아니라는 송쌤에게 부러움 담긴 고향 평을 한번 하고 싶다.

‘어데요~ 부산 사람들 진짜 진국이데요. 이번에 제대로 반했씸니더. 날 좋을 때 금정산 정상 한번 더 갑시데이!’
그리고 다섯 분의 부산 싸나이들에게도 한 줄 전보친다.
“덕분에 기차 안 놓치고 집에 잘 왔어요! 억쑤로 고맙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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