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롱 Nov 10. 2024

취준생 딸 모의면접기

“엄마 아빠, 모의 면접 좀 봐주라.”
“이번엔 어디야?”     


큰딸은 내년 2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딸은 올해만 벌써 두 번의 인턴 경험을 쌓았다. 첫 번째는 스타트업 회사였고 두 번째는 대기업이었다. 스타트업 근무 때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을 보며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워라밸은 꿈도 꿀 수 없는 분위기를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다. 뼈를 갈아 넣으며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외계인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두 번째 회사는 IT 계열 대기업이었다. 최저임금에 이것저것 붙는 수당과 호화스러운 사무실, 주변 환경 등에 놀라며 역시 이래서 다들 대기업에 목매는구나 하며 감탄했다. 하지만 낯선 업무를 동시 다발적으로 해내느라 힘들어했다. 무슨 인턴한테 그런 막중한 업무를 맡기냐며 이건 인턴쉽 취지에도 어긋나고 노동력 착취라며 우리 부부는 욕을 해댔다. 딸은 그래도 일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흥분한 엄마아빠를 진정시켰다. 

등산을 갈 때면 산사를 들러 늘 부처님께 절을 올린다. 의연한 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인턴십을 하며 하반기 공채시장에 발을 내디딘 딸은 서류, 인적성, 면접 등 뭐 하나 만만한 게 없다는 걸 절감했다. 스펙, 공부, 실전 등 넘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늘구멍 같은 채용시장에서 자존감은 바닥을 치는 것 같았다. 퇴근 후 새벽까지 자소서를 쓰고 인적성 검사를 보느라 눈이 벌게져서 출근하는 딸의 뒷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10월 말 두 번째 인턴근무를 끝낸 딸은 눈높이를 낮추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신규채용 규모를 대폭 줄였고 있는 직원도 구조조정 한다는 소식에 좌절했다. 대학만 입학하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는데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그냥 빈말이 아니었다.       


“현아, 여기 붙으면 갈 거야?

“몰라. 근데 자꾸 떨어지다 보니까 면접 보러 오라는 말만으로도 고마워서 눈물 날 지경이야.”

“채용형 인턴은 정규직이 되는 거야?”

“아니, 전환율이 다 달라서 그것도 장담 못해.”     


모의 면접을 위해 딸이 지원한 회사를 공부했다. 최근 가파른 성장세에 있는 스타트업이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물어보니 인지도가 꽤나 있는 곳이었다. 딸이 낸 지원서와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며 예상 질문리스트를 만들었다. 

저녁을 먹고 남편과 나란히 앉았다. 다소곳하게 앉은 딸이 우리와 마주했다.

“***씨, 자기 소개해보셔요.”

딸이 진지하게 대답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저렇게 다 커서 뭔가를 해보려고 애쓰는 모습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자제하려고 입을 앙다물었다. 

“인턴 업무를 두 번이나 했는데 그 경험을 통해 배운 점은 무엇인가요?”

마케팅 관련 전문용어를 술술 뱉어내는 딸, 1년 전 딸은 아빠의 조언에 서러움이 폭발해 펑펑 울었다. 그사이 참 많이 의연해졌다. 대답 구석구석에 너에게 호기심을 느낄만한 에피소드를 넣어보라고 조언했다. 성과가 있다면 포장도 잘해보라 했다. 융통성 없는 딸은 포장은 안 할 거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 어휴, 저 고지식함은 누굴 닮았는지 괜히 옆자리 남편을 꼬집었다. 

“자,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우리 회사 마케팅 방향의 장단점이 뭔지 말해보시죠.”

남편이 근엄하게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딸이 조잘조잘 답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면접관이라면 지원자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을까. 당장 실무를 맡겨도 좋겠다는 믿음, 그리고 성실하고 착한 인성이면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안 뽑을 이유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 엄마다. 

“인턴 경험을 하며 지원자가 퇴사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점이나 갈등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딸의 눈이 갑자기 벌게졌다. 그러다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제가요. 회사 들어간 지 부서가 통폐합되어 사수가 다른 곳으로 발령 나면서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했어요. 그때 많이 힘들고 외로웠어요. 낯선 일은 쏟아지고 책임감은 크고, 어디다 물어야 할지도 알 수 없어서 그때 도망치고 싶었어요.”

콧물까지 훌쩍거리는 딸은 이런 말 하면 떨어지겠지? 라며 한숨을 쉬었다. 저리 여려서 험한 사회생활을 어찌할지 모르겠다. 모의 면접은 한 시간이나 걸렸고 우리는 딸을 어깨를 두드려주고 산책을 나왔다. 가을 저녁 공기가 시원했다. 학교 갔다 오면 우리를 따라다니며 쫑알거리던 열 살짜리 딸이 참 많이도 컸다. 대견하면서도 또 한편 녹록지 않은 현실에 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하지도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청년 실업률이 역대 최고율을 기록한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어렵게 취업 문을 통과한 젊은이도 중도퇴사율이 높다는 통계치는 이들의 바뀐 가치관과 변하지 않는 조직문화도 한몫한다고 본다. 우리 아이들의 의지박약을 탓하기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 미래에 대한 암울한 수치만 자꾸 보이지만 그런데도 일하고 싶어 하는 많은 젊은이가 많다고 믿는다. 젊은 인력들이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도전의 기회를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아이들이 좋은 조직에서 훌륭한 선배들에게 많이 배워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게 첫발을 잘 디디길 간절히 바래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