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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록밴드 직관 '충격(?)'

아홉살 아이들, 학교 언니오빠들 공연보고 팔짝팔짝

by 포롱

동료 선생님이 초등학생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가졌다. 작년에 이은 두 번째 무대인데 후배의 고생과 열정을 알기에 꼭 가고 싶었다. 작년 동학년을 하면서 아이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고 아끼는지 아는지라 격려해주고 싶기도 하고 또 얼마나 성장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공연시간이 점심시간이라서 난감했다. 2학년 아이들을 두고 혼자 갈 수도 없어 모조리 끌고 갈 수밖에 없다. 고학년 대상 공연인데 좌석도 한정돼 있을 것이니 다른 선생님들 눈치도 보일 것이고 혹시나 시끄럽다고 울거나 중간에 뛰쳐나갈 수도 있다.

후배선생님과 사전 조율을 하고 미리 단속에 들어갔다. 언니오빠들 밴드 공연에 갈 거야, 그런데 우린 어려서 초대받지 못해서 자리가 없을 거야. 뒤에서 조용히 보고 오자. 다른 2학년들은 안 가는데 우리반만 몰래 다녀올 거야. 아무도 모르게 다녀오자.

그 순간 아이들 눈빛이 빛났다. 뭔가 비밀 미션을 수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진지해졌다. 그리고 사전 학습에 들어갔다. 밴드가 뭘까?라고 물었다. 똘똘한 아이 한 명이 대답한다.

“시끄러운 거요!”

음, 맞아. 잘 모르고 들었을 땐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어 한번 볼까? 유튜브를 보여주며 보컬, 드럼, 기타 등의 세션도 가르쳐주고 연주곡도 미리 들어봤다. 마지막 엔딩곡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들려줬는데 의외로 많은 아이들이 들어봤단다. 몇몇은 따라 부르기도 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 ‘어차피 난 혼자였어’를 아홉 살이 부르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온다. 너네가 가사를 알고나 부르는 거냐며 속으로 키득거렸다.

42156_31106_2736.jpg '호아시스'라는 이름으로 공연한 아이들. 노래도, 악기 연주도 수준급이다.


급식을 쥐도 새도 모르게 먹자! 손 씻으러도 갈 때도 살금살금, 밥 먹을 때도 세상 조용했다. 친구가 소리라도 낼라치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단속을 해댔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칠 때 우리는 벌써 뒷정리에 돌입했다. 이 상황이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의 아이들. 007 비밀 작전은 저리 가라다. 옆반을 흘깃거리며 시청각실로 이동하려고 줄을 서는데 수린이가 가만히 다가왔다.

“다른 반 친구가 우리 보고 어디 가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해요?”

자기 딴엔 너무 걱정됐나 보다. 모른다고 선생님 따라서 그냥 가는 거라고 대답하라고 했다. 거짓말을 가르치는 교사라니!

공연장은 벌써 고학년으로 가득 차 있다. 빈자리가 몇 자리 보이길래 얼른 아이들을 앉혔다. 나머지 아이들은 벽 쪽에 딱 붙어 서라고 했다. 아이들은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언니오빠들 사이에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공연이 시작하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동생들은 언니 오빠가 소리 지르고 춤추는 게 신기한지 공연팀을 보지 않고 관객을 구경하는 듯했다. 연신 내게로 다가와서 저 언니오빠 좀 보라며 귓속말을 해댔다. 그러다 마지막 곡이 흘러나올 쯤엔 아홉 살짜리도 몰입하는 것 같았다. 박수를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춤을 쳤다. 친구들의 그 모습이 신기한지 손가락질을 하며 웃어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오늘 밤만 나를 위해 친구가 되어줄래요.

이 좋은 날 아름다운 날 네가 그리운 날

오늘 밤은 삐딱하게’

엔딩곡이 끝날 땐 2학년도 모두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42156_31105_2657.jpg '오아시스'라는 전설적인 영국 록밴드 이름에 지도선생님의 이름 한자를 빌려 '호아시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5교시가 시작되고 교실로 돌아왔지만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교실. 그래 이게 산교육지 싶어 스무명이 넘는 아이들 소감을 다 들어보았다.

-원래 무서워서 공연장 못 갔는데 오늘은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언니 오빠들이 떨지도 않고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처음에는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엔 조용하게 느껴졌어요.

-땀 뻘뻘 흘리며 연주하는 거 보니까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우리 형을 만났는데 공연장에서 그렇게 신나 하며 날뛸 줄 몰랐어요.

-저도 나중에 저런 무대 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인받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가서 받으면 안 돼요?

학교에서 만나는 친숙한 형님들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몰랐다는 이야기에 너희들도 모두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줬다. 누구나 펄떡거리는 끼를 가지고 있고 분야만 다를 뿐이라는 것도. 한 명씩 소감을 들을 때마다 칠판에 '열정' '몰입' '자유' 뭐 이런 걸 써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렵겠지만 뭐, 아홉살 만큼 이해하겠지.


멀리서 보면 그전 그런 평범한 아이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다른 색깔로 반짝이는 보석들이다. 그걸 음악이라는 도구로 빛나게 해주는 후배 선생님을 보니 더없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는 무얼로 그들을 환하게 비춰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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