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중인 선배에게>
횡단보도를 반쯤 건너다 돌아봤습니다.
선배가 그대로 서 있었어요.
빨리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지만,
초록불이 붉게 바뀌는 순간에도 선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네요.
그러지 좀 마요.
다시 못 볼 것처럼 왜 그래요.
눈물이 쏟아져 얼른 선글라스를 꼈습니다.
집까지 전철 두 정거장
눈물범벅으로 걸었습니다.
그냥 화나고, 서럽고, 슬펐어요.
선배처럼 선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첫 직장 꿈을 아직도 꿉니다.
회사 그만둔 지 올해로 딱 스무 해,
그 시절이 여전히 눈에 선합니다.
이렇게 오래 마음에 품고 사는 걸 보면
정말 좋아했나 봅니다.
사람들을, 그 일을, 그리고… 선배를요.
선배는 잔잔한 파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툭하면 큰소리 나던 거친 곳에서도
후배들을 묵묵히 챙겨주는,
무슨 투정을 부려도 다 품어주는 바다 같았죠.
제가 임신했을 때,
마감 앞두고 발을 동동 구르던 날에도
슬그머니 옆으로 와서 도와주셨잖아요.
그때의 따뜻한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결이 고운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사람.
그 어떤 낱말로도 선배를 담을 수가 없어요.
그 옛날, 선배가 제 남친을 민도스(성은 민씨요, 크레도스를 몰아서)라고 부르고
저는 선배의 여친을 '영심이 언니'라고 놀렸던 거 기억하시나요.
그때 저는 똑 부러지던 ‘영심 언니’와 선배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흘러 선배의 딸 현서가 우리집에 놀러 왔을 때,
“아이고, 우리 착한 *선배, 저 똘똘하고 당찬 딸 감당 어찌하나.”
웃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평온하게 늙어갈 줄 알았어요.
선배, 왜 아프고 그래요.
몇 년 만의 만남이었는데,
‘수술’과 ‘전이’ 같은 단어로 소식을 전하시나요.
가을 햇살 아래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단풍을 보며
선배는 항암과 방사선 치료 이야기를 너무 담담히 하셨죠.
“평생 항암을 해야 한다네.
완치도 불가능하대.
막막해서 의사한테 다음 단계는 묻지도 않았어.”
그 말을 듣는데 숨이 막혔습니다.
구순의 어머니께서 행여 눈치챌까 추석에도 시골 안 가셨다는 말에
마음이 찢어졌어요.
선배...
아직 아들로, 아버지로, 남편으로 할 일이 많잖아요.
약해지지 마시고 힘내세요, 부디.
“유 선생이 불쑥 찾아와서 좋네.”
그 한마디가 자꾸 맴돕니다.
볕이 좋아서, 보고 싶어서,
수술 잘 돼서 곧 출근하실 줄 알고 축하해 주러 갔는데
암 0기에서 4기라니요.
이게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남들은 소리 내어 토해낼 일도
조용히 삼켜버리던 그 마음이 병이 된 건 아닐까,
부질없는 생각도 해봅니다.
선배는 강한 사람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묵묵히, 단단하게 걸어가실 거라 믿어요.
누구보다 성실하게, 누구보다 따뜻하게 살아온 사람.
이럴 땐 잠시 쉬어가며 숨 고르기 해요.
선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온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후배 에너지 받아 기분 좋다고 하셨죠?
따뜻한 사람들 오래오래 볼 거라고 하셨죠?
행군하듯 하루하루 끝까지 잘 버텨보겠다고 약속도 하셨어요.
그 말 저 믿어 의심치 않아요.
실없는 말은 절대 안 하는 선배니까.
선배의 장기 어디쯤 또아리 튼 그놈
살살 달래면서
뭐든 잘 드시고 열심히 운동하고 계셔요.
햇살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는 날,
또 선배 보고 싶으면
불쑥 찾아뵐게요.
그때 우리 같이 걸어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