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았다. 딸한테 제대로 한방 먹었다. 머리가 띵하고 속이 메스꺼운 게 진짜 토가 나올 것 같다. 어린이 가상체험이 무서워봐야 얼마나 무섭겠냐고 오판한 내 잘못이다. 아! 내가 두 번 다시는 타나 봐라.
딸이 유난스럽게 "아빠 아빠 같이 타자"고 사정 사정하는 게 아닌가! 평소 같으면 그냥 동생이랑 같이 탈 건데 왜 자꾸 아빠랑 같이 타고 싶어 하나 의문이 살짝 들었다. 그래 이제 초1이니까 아빠랑도 같이 타고 싶은 나이가 됐겠구나 하며 딸과의 추억을 위해좌석에 앉아 VR을 착용했다.
체험 종류가 다섯 가지 정도 됐는데 딸이 얼핏 고르는 걸 봐서는 난이도가 '상' 인건 곁눈질로 확인을 했다. 그래신나게 딸과멋진 가상 체험을 해보자며 마음을 잡았다.
가상 화면이 뜨는데 어떤 놀이 장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딸이 "아빠, 이거 바이킹이에요. 360도 돌아가는 바이킹이에요."라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딸한테 된통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리기엔 이미 늦었다.
분명 가상공간인데 몸이 붕 떴다. 다리가 공중에 흔들거렸다. 의자가 실제 움직이면서 뒤로 슝 앞으로 슝 몇 번 하더니 한 바퀴 뺑 그르르르 돌아버린다.처음에 탈 때 어른은 안전벨트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혼자 주섬주섬 나도 모르게 안전벨트를 만지작 거렸다. 그렇게 연속 다섯 번 돌았더니 머리가 빙글빙글 어지럽고 눈앞이노래졌다.
'360도 도는 바이킹'이라더니 딸 말이 맞았다. 가상인데 실제 같은 느낌, 거짓말 약간 보태서 갑자기 점심에 먹은 짜파게티가 입으로 튀어나오는 아주 아주 거북한 느낌이었다.
놀이기구 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바이킹, 그 바이킹을 가상으로 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제주뽀로로타요테마파크에서 어린이가 타는 야외 바이킹을 탈 때 덜덜덜 떨며 무서워했다는 사실을. 한 번 이번에 제대로 느껴보세요 라는 심정으로 딸은 360도 가상바이킹 체험을 계속 타자고 했던 것이다.(참고로 딸은 여기 와서 자주 가상 체험을 여러 번 해서 다 알고 있었지만 난 아이들 사진 찍어 준 게 다였다.)
너무 무서워 아예 두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도 몸과 머리가 동시에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다. 딸보고 너무 무서워 눈을 좀 감아야겠다고 하니까 눈 떠라고 소릴 그렇게나 질렀다. 그 소릴 듣고도 눈을 한참이나 감아야 했다. 언제 끝나나 그 생각 밖에 없었다.끝났나 살짝 눈을 떴는데 여전히 돌고 있었다.
빙빙빙~~~~
내릴 때 실제 바이킹 타고 내릴 때처럼 다리가 후달거렸다. 끝나고 멀쩡하게 다른 놀이체험을 하러 뛰어가는 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난 정말 정말 무서웠고 어지러웠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는데 말이다. 딸에게 이렇게 제대로 한방 먹은 건 처음이다. 딸은 내가 그렇게 무서워했다는 걸 알까 모르겠다. 아직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속이 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