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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Jan 06. 2024

제주 추억 여행

1년 만에 제주를 찾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제주를 나보다 더 가고 싶어 했다. 그럼 제주에 가면 뭐 하고 싶냐니까 대답이 아이답게 소박했다. 큰 눈을 뭉쳐 아빠에게 던지고 싶어 했고, 뽀로로타요테마파크를 가고 싶어 했고, 중문에 있는 삼촌집과 유치원 친구 아빠집에도 놀러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 살았던 집에도 구경 가고, 근처 서귀포 도서관과 밀면집에도 가고 싶어 했다. 한 마디로 제주 1년 살면서 좋았던 곳을 다시 찾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도 아이들과 생각이 같았다. 1년 살이하면서 추억이 깃든 곳을 가고 싶고, 추억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떠나니 비로소 그리운 것들이 뭔지 확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내가 좋아하는 제주 숲과 바다를 마음껏 눈에 담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아이들이 경치 보는 것을 제일 싫어했기에 나만 좋다고 아이들을 힘들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마음을 비웠더니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아이들 가고 싶은 것부터 하나하나 들어주기로 했다. 제일 보고 싶은 눈을 보러 가기로 했다. 역시 부산에 사는 아이들 다웠다. 눈을 뭉쳐서 아빠에게 마구마구 던지고 싶다고 했다. 겨울 부산은 추워도 눈을 볼 수 없으니 아이들이 그렇게나 눈이 보고 싶었던 거다. 1100 고지 근처에 다가가니 눈이 보이는데 내 맘 마저 다 설렜다. 아이들도 눈을 보니 "눈이다" 하면서 환호성을 동시에 질렀다. 나도 기분이 붕 떴다.


내리자마자 제일 큰 눈을 하나 만들더니 나에게 아들이 던졌다. 눈이 아니라 얼음 덩어리라서 아팠다. 하하하. 딸도 잘 뭉쳐지는 눈을 찾아서 1100 고지를 이곳저곳 돌아더니더니 기어코 눈사람을 만들었다. 친구 아빠가 빌려준 눈썰매를 가지고 신나게 타고 또 탔다. 1100 고지에 눈썰매를 타는 연인들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하하하하 웃는 소리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심심한지 또 눈을 뭉쳐서 나에게 던지고 또 던졌다. 몸은 추워서 덜덜덜 떨었지만 아이들 소원을 들어줬던 것만으로 마음이 참 행복했다.



1주일 미션을 4일 만에 다 해결하고 말았다. 제주 1년 살던 집에 가서 동백꽃과 사진도 찍고, 근처 놀이터에서도 신나게 놀았다. 서귀포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밀면집에서도 맛있게 밀면을 한 그릇씩 뚝딱 먹었다. 만나고 싶은 유치원 친구 아빠네 집에 가서 저녁도 먹고 재미있고 놀고, 중문 친구네 집에 가서도 형과 누나랑 재미있게 놀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일요일 가기로 예정된 뽀로로타요테마파크 밖에 안 남았다.


관광지 여행이 아닌 소소하지만 따뜻한 제주 추억 여행 미션을 하나씩 완성하니 뭔가 제주가 더 좋아진다. 서귀포가 더 살고 싶은 동네 마을이 되어 가고 있다. 추억 속 사람들 하나하나 만나는 게 참으로 정겹고 사는 게 이런 거지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아이들 보고 반갑다고 귤을 한껏 지어주시는 오일장 할머니, 귤을 가득 주는 유치원 친구 아빠, 반갑다며 용돈을 주는 친구 내외, 팝콘을 공짜로 주는 컴포즈 사장님. 하나 같이 해맑게 웃으며 우리 가족을 맞아줬다.



남은 3일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아이들이 잘 있어주는 게 가장 크다. 마지막 남은 미션인 뽀로로타요테마파크도 무사히 즐겁게 잘 갔다 오면 좋겠다. 아이들 덕분에 내가 다 행복한 제주 추억여행을 하고 있다. 비록 아이들 둘 데리고 다니는 게 힘들게 생각하면 힘들 수도 있지만 아이들이 이제 제법 크니 내게 힘을 가득 주고 있다. 남은 기간 건강하게 즐겁게 제주에 있길 바란다. 제주 추억 여행을 선물해 준 너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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