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손을 잡아보니 뜨뜻하다. 몸도 마찬가지다. 온몸에 열이 나고 목까지 부어 아프니 컥컥거리며 운다. 조그만 것이 얼마나 아프면 저렇게 서럽게 우는지, 손수건에 찬물을 적셔 이마에 얹혀 놓고는 "우리 아들 힘내"라고 응원한다.
"여보, 안 되겠다. 병원 가야겠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안 되겠는지 병원을 가자고 한다. 집 근처에 다행히 아동병원이 있어 일요일도 검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검색하던 아내가 그런다.
"지금 (아침 7시) 병원 가서 번호표 뽑으면 되겠다. 번호표 8시부터 한다고 하네. "
번호표 8시부터 한다는 말을 정확히 들었어야 했는데, 아들 목이 켁켁거리고, 이마엔 열이 나고, 울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나섰다. 아내도 다급해서 얼른 나보고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근처 아동병원 번호표 뽑으러 가기에 바빴다.
겨울 아침 7시라 그런지 병원이 컴컴했다. 껌껌한 병원 문을 열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리는 순간 깜짝 놀랐다. 벌써 세 명의 아버지가 화장실 불빛만이 비치는 어두운 병원 입구에 서서는 휴대폰을 보고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와도 아는 척도 없이 각자 웹툰을 보느라 바쁘셨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아이가 아파서 온 아빠들을 보니 뭔가 찡했다. 아이가 아파서, 번호표를 빨리 뽑고 싶어서, 진료를 먼저 해서, 아이를 빨리 낫고 싶게 하겠다는 아빠들의 간절한 마음이 보였다. 주말 아침에 늦잠도 자도 싶었을 건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번호표 뽑으러 오신 아버지들의 간절한 마음이 내게 전해졌다. 나처럼 급하게 오셨는지 슬리퍼에 파카에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다들 쓰고 오셨다.
아차, 아내가 빨리 번호표 뽑으러 가란 소리에 폰도 못 챙겼다. 다시 폰을 가지러 갈 수도 없고...
그나저나 난 병원에 가면 바로 번호표를 뽑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나섰다. 이대로 병원 여는 9시 30분까지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항상 들고 다니던 가방에 책이 하나 있다.
그런데 어둡다. 책 펼치기엔 너무 어둡다. 칙칙한 화장실 불에 의지한 이 공간이 어둡고 슬퍼 보인다. 아이들도 아픈데 어두운 공간에서 기다리기만 하니 이 어둠이 더 싫다. 혹시나 주변을 기웃거렸더니 스위치가 광고판 뒤에 숨어 있다.
"타닥!"
어둠 속에서 폰을 보고 있던 아빠들이 이 공간이 밝아지니 흠칫 놀란다. 그리고 얼굴에서 반가운 기색이 살짝 돈다. 그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된 것 같이 기쁘다. 나도 어둠에서 탈출한 기념으로 매년 읽고 있는 <내 인생 5년 후>란 책을 읽는다. 역시 심심할 땐 책이 최고의 친구가 된다. 아무 말 없이 기다리는 공간에서 나만의 친구가 멋진 미래를 살라고 이야기해 준다.
내 뒤에도 사람들이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20명 가까이나 됐다. 아버지 어머니 다들 아픈 자녀들을 위해 번호표를 일찍 뽑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오셨다. 몇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아이가 빨리 낫게 하고 싶은 마음에 다들 이 어둠을 뚫고 새벽같이 병원에 달려온 게다.
다리도 아프고, 이 좁은 공간이 줄 서는 사람들도 가득 채워질 즈음, 구세주가 나타났다. 8시가 되니 간호사 한 분이 오셔서 문을 열어주신다.
"찰칵!"
'휴~ 다행이다.'
4번 째로 줄을 섰더니 번호표가 4다. 9시 15분까지 번호표를 가지고 다시 병원에 방문하면 된다고 했다. 참고로 내가 줄 선 덕에 아내가 쉽게 진료를 할 수 있었고, 아들 병이 독감인 줄 알게 되었다.
이 번호표 뽑으려고 일요일 아침 7시부터 부모님들이 병원에 와서 줄을 서는지는 처음 알았다. 우리 부모님들 다들 정말 자녀들 키운다고 고생이 많으시다.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