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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Mar 20. 2022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 사고, 상하지 않도록 정리하고

 부모님의 집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혼자 알아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버린 것이 일회용품이라면, 소꿉장난 하듯이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해맑기만 했던 신혼 초에 가장 많이 버린 것은 아마도 음식물 쓰레기일 것입니다.



 한 번도 직접 만들어 본 적 없는 요리를 시도하면서, 어떤 재료가 얼마나 필요한지 가늠이 되지가 않았죠. 요리서적이나 인터넷의 레시피에 몇 큰 술, 몇 그람이라고 적혀있기는 하지만 그게 실제 얼마 정도 되는 양인지 가늠이 되지도 않았고요. 그 음식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식재료 이름을 메모장에 적어 마트에 들고 가서 하나씩 찾아 집어 들다 보면, 더 크게 포장되어 있는 것들이 단위 용량 당 금액이 저렴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왠지 집에 두고 천천히 먹으면 이득이 되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서 큼지막한 용량의 물건들을 덥석 덥석 카트에 올려두다 보면 두식구 한 끼 장 보러 온 것인데, 십만 원이 훌쩍 넘고 양도 어마어마하죠.


 잠시 옆길로 새는 이야기이지만, 출근해서 하는 식사와 간간히 하는 외식을 제외하면 달랑 두식구 하루에 한 끼 정도 준비하면 되는 살림인데 코스트코 같은 대형 창고형 마트에 왜 굳이 가입을 했었나 싶기도 하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냉장고에 스스로 구매한 식자재를 처음으로 넣었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제대로 제 때 먹은 것보다 버리게 되어버린 양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파는 왜 그렇게 빨리 무르는 것이며, 감자의 싹은 어찌 그렇게 무성하게 자라고, 도대체 이 곰팡이들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요. 그리고 중간 중간 도무지 양이 줄어들지 않는 - 특정 요리가 아닌 다음에야 써먹을 데가 없는 - 재료들은 왜 이리도 많은 걸까요.


 가격만 보고 덥석 집어온 대용량 재료들, 두루 쓰이지 않는 특이한 재료들도 문제였지만, 재료별 특징을 모르다 보니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한 것도 컸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면,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구매한 다음 잘 관리해서 제 때 챙겨 먹었으면 이렇게 버려지지는 않았을 텐데'하는 죄책감이 들곤 합니다. 게다가 이걸 따로 돈 들여 구매한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려야죠. 보통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봉투는 일반 쓰레기봉투보다 작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많이 버릴 때면 제대로 담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축축하고, 손에 묻고, 여러 면에서 유쾌하지 못하죠.


 그래도 다행히 십여 년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저희가 어떤 음식을 얼마나 해 먹고 사는지 대중이 서기 시작했습니다. 상추는 한 봉투를 사놓으면 고기 구워 먹을 때 얼마큼 먹고, 남은 것은 다음날 아침에 바로 샐러드 도시락으로 챙기고 그러는 것이죠.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용도로 쓰이는 대파와 쪽파는 굳이 동시에 구매하지 않고 있는 것을 먼저 쓰고, 필요한 것을 먼저 삽니다. 한 번에 손질해서 밀폐용기에 수분을 조절할 수 있는 키친타월 몇 장과 함께 보관하면 그래도 제법 오래 둘 수도 있고요. 생각보다 금방 무르는 과일이나 야채는 며칠 안에 바로 먹을 만큼만 삽니다. 싸다고 많이 사봤자 다 못 먹고 버리면 결국 득은커녕 손해만 보는 셈이니까요.


 육류를 저렴하게 넉넉히 구매하면 바로 전체를 2인분 300~400g 단위로 소분해서, 바로 먹을 것은 냉장고, 하루 이틀 뒤에 먹을 것은 김치 냉장고, 그 이후에 먹을 예정인 것은 냉동실로 나누어 보관합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작은 화이트보드를 걸어두고 '지금 냉장고와 팬트리에 있는 것으로 바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 리스트'를 적어둡니다. 저녁시간 티브이 생활정보 방송 프로그램이나, 먹방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기 위해 장을 본다거나, 배달을 시키기보다는, 냉장고 앞에 적혀있는 '바로 해 먹을 수 있는 리스트'를 보면서 다음, 그리고 다다음 끼니까지 대략적으로 머릿속에 계획을 해 둡니다. 물론 갑자기 외식을 할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죠.


 그러다 보니 사실 장을 볼 일이 줄었습니다. 이 패턴이 굳어진 이후 얼마 전까지 냉동, 냉장제품은 마트에서, 신선식품이나 청과는 재래시장에서 필요한 만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장을 보곤 했습니다. 요즘은 신선식품을 비롯한 음식과 식자재 전반에 걸쳐 인터넷으로 필요한 것들만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루트가 많아져서 더더욱 장을 보는 일이 줄었습니다.


 그나마 장을 보러 갈 때에도 큼지막한 카트는 거의 끌지 않습니다. 카트는 생수와 같이 무거운 것을 옮길 때에만 쓰고 있죠. 사실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다니다 보면, 들고 다니기가 무거워서 굳이 안 사는 물건도 많습니다. 사실 필요 없는 물건인 것이죠. 필요한 물건이라면 무겁더라도 들고 다니거나, 멀리 다시 걸어갔다 오더라도 카트를 가져왔을 테니까요.


 좋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시국도 불필요한 음식을 사들이는 것에 도움 아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마트에서 시식코너를 전혀 운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한 조각 집어 들었다가, 맛이 있어서 하나 담고, 미안해서 하나 담고 했던 물건들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냉동실을 채운 다음 기억에서 잊혀서 유통기한을 넘기기가 일쑤였죠.


 다른 살림꾼들의 글에서 볼 수 있지만 장을 볼 때는 확실히 식사를 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배가 든든하면 불필요한 충동소비를 확실히 억제할 수 있죠.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물이나 식자재를 충동적으로 구매하면 바로 쓰레기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중고로 팔 수 있는 의류나 장난감보다 더 충동구매를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음식물과 식재료를 구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요리할 때에도 조금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래 보관이 힘든 음식, 연달아 몇 끼를 먹기에 부담스러운 음식을 커다란 냄비에 몇 인분을 한 번에 조리하는 것은 '힘들여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때에도 못쓰는 식자재를 버리는 것보다 못 먹는 음식을 버리는 것이 몇 배는 어렵기도 합니다.


 식구가 많지 않다 보니 며칠씩 먹을 양의 찌개나 국을 끓여 놓는다거나, 짭짤한 밑반찬을 많이 만들어 두지도 않습니다. 보통 한 그릇 음식을 선호합니다. 비빔밥이나 카레라이스 한 그릇에 김치 정도, 샌드위치에 탄산수 정도. 고기나 생선을 구워 먹게 되면 냉장고에 있는 채소로 간단한 샐러드 정도 곁들여도 좋고요. 식탁에 올려져 있는 그릇의 수가 적을수록 더 건강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요즘은 얼마나 더 챙겨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덜 먹을 수 있을지 걱정해야 하는 과잉의 시대이지 않을까요. 그 끼니에 필요한 만큼만 요리해서 먹다 보면, 준비한 양을 다 먹으면 과식하는 일도 줄게 됩니다. 물론 과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먹기 위해서는 다시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 하다 못해 밀 키트라도 뜯어서 익혀야 하니까 - 더 먹는 것을 그만두는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고, 조금이라도 더 움직일 기회도 생기게 되죠.


 하나씩 하나씩 이런 습관들이 불편하지 않게 몸에 밴 다음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여름이나 겨울에 철 따라 종종 먹는 수박이나 귤 같은 과일의 껍데기가 아닌 다음에야 제일 작은 음식물 쓰레기봉투 하나를 채우는 데에도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기도 합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는 세대별로 음식물 쓰레기 카드가 있어서 버리는 무게만큼 비용이 청구가 되었었는데, 한 달에 몇백 원, 몇십 원 정도만 나오는 정도였으니까요.


 쓰레기를 줄여나갈 때,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것들의 양이 줄어가는 것을 느낄 때 드는 기분 좋음이 있습니다. 다른 종류의 쓰레기들도 다 나름의 그 '기분 좋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제일 큰 기분이 드는 것이 음식물이지 않을까요.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른 물건들은 내가 안 쓰면 중고거래를 하거나, 나눔이나 기부를 해서 다른 주인을 찾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해버린, 못 먹게 되어버린 음식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냥 환경에 버려지는 말 그대로 '쓰레기'인 것이죠. 상한 음식물 쓰레기는 악취도 역합니다. 내 삶에서 이런 쓰레기를, 역함을 줄여나가고 있다는 것은 한번 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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