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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Mar 22. 2022

대체 불가 라틴아메리카

국경, 음악, 혁명, 길, 설탕 키워드로 읽는 중남미

 중남미, 정말로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한반도에서 지구 정 반대편에 있는 곳입니다. 좌표부터 몇 도가 아니라 서경 몇 도로, 북위 몇 도가 아닌 남위 몇 도로 표현되는 곳이니까요. 멀기 때문에, 가보기 힘들기 때문에 한 때는 막연하게 '꼭 한번 가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곳이었습니다. '세계여행'이라는 타이트를 붙인 책들이나 콘텐츠에는 꼭 들어가야 하는 키워드가 '남미', '아프리카'니까요.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어서 잘 모르겠지만, 한 때 멕시코 칸쿤이 신혼여행지로 유행을 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 붐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 즈음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칸쿤이 그렇게 '핫'하지 않다는 것에 조금 놀랐습니다. (상대적으로) 멀지 않은 비행거리에 있는 날씨 좋고 저렴한 관광지 정도였거든요. 거기에 사는 백인, 흑인뿐만 아니라 한인 교표들도 왜 굳이 한국에서 여기 멀리까지 오는지 모르겠다고 했으니까요. 우리로 치면 태국이나 필리핀 같은 동남아 휴양지 정도이지 않았을까요? 예전에 영국에서 잠시 연수할 때를 돌이켜 보면, 유럽 친구들이 동남아에 다녀온 것을 엄청난 모험처럼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비교적 저렴한 항공편으로 몇 시간 만에 그리 어렵지 않게 다녀오는 곳인데 말이죠.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습니다. 다 상대적인 것이죠. 더 좋은 여행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더 멀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보지 못했고, 가는 여정이 더 고생스러워야 '멋져 보이는' 여행인 것이니까요. 유럽인들의 지중해와 아프리카가, 북미인들의 라틴 아메리카가, 어쩌면 우리에게 비교적 가까운 동아시아, 동남아시가 같은 그런 곳이 아닐까요.


 그렇게 여행을 '다니는 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경험'으로만 포장하다 보면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남는 게 좀 아쉬워집니다. 새로운 곳을 보고,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그곳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알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사실 전자는 그곳에 가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안 간다고 못하는 것도 아니죠. 검색을 하든, 책을 보든,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니 말입니다.


 이렇다 보니 '여행기'로 특정 지역을 접하다 보면 '알맹이'보다는 '껍데기'만 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키피디아보다도 내용이 없고, 부정확한 정보들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거나, 몇 시간, 며칠에 지나지 않는 글쓴이의 경험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그리고 쌓여가는 나이와 경력만큼 늘어가는 책임과 제약으로 인해 마음 놓고 여행을 가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으로라도 여행을 가보려고 이런저런 여행기를 기회가 되면 읽고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중남미'.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기를 굳이 이렇게 고생스럽게 가야 되나'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흥정을 하지 않고는 바가지를 쓰기 십상인 문화, 불안정한 치안상황, 불편한 교통 및 행정 체계 등등.


 에너지 넘치고, 호기로운 어린 여행자들에게는 훈장과도 같은 여행이 될지 모르겠지만, 마흔 줄에 접어들고 나니 보고, 배우고, 느낄 것이 없다면 굳이 고생을 사서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래서 요즘은 여행 자체가 테마인 책보다는 그 지역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책을 훑어보고 있습니다.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서 베이지색 표지의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왠지 중남미에 대해서 수박 껍데기 말고 과육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습니다. 모 협회의 추천도서라는 마크도 뭔가 신뢰를 주었고요. 워낙 제가 중남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다 보니 이러한 기대도 정말 막연한 기대이긴 했습니다. 삼국시대-고려-조선 순서도 모른 채 넷플릭스 K사극을 보는 외국인이 이런 기분일까 싶기도 합니다. 


 책은 자원이나 역사적으로는 풍성한 이 지구 반대편의 대륙이 어떻게 지금의 열악한 상황에 오게 되었는지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설명'이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네요. 맥락을 가지고 쭉 쓰였다기보다는, 그냥 그 키워드에 맞는 글들이 엮여있다는 것이 맞을 수도 있거든요. 물론 얄팍한 단행본 한 권으로 한 대륙을 이해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이 책은 큰 시야에서 대륙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익숙한 키워드 대로, 잘 작성된 글들을 모아둔 것 같은 그런 책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전 지식 없이는 잘 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라틴아메리카라고 '퉁'치고 있지만 마야, 잉카, 아즈텍과 같은 다양한 문명이 꽃을 피웠던 곳이고, 그 문화들이 다양한 국가들에 의해서 수탈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책은 시기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여기저기를 오가면서 테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직 중남미 지도가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다면, 다 읽고 나서도 생각보다 정말 남는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제목에 '라틴' 아메리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요. 멕시코, 쿠바보다는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남미에 대한 내용을 더 기대하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쿠마, 멕시코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 물론 텍스트북도 아니고, 시험을 치는 책도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다른 책을 좀 더 찾아보면 되겠죠. 뭔가 협회 추천도서라는 딱지 때문에 기대를 하다 보니 이런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냥 다녀만 온' 여행자들의 글보다는 보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책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한 탓도 있겠지만 쿠바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더군요. 설탕으로 인한 문제도 잘 모르고 있던 분야였는데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한 권, 두 권이 쌓아다 보면 저도 라틴아메리카가 좀 더 익숙해지는 때가 오지 않을까요.




73. 남자든 여자든 절대 애인을 홀로 보내지는 말아야겠지만 꼭 한 번은 혼자 쓱 가봐야 할 곳. 가진 것보다 웃을 일이 더 많은 쿠바. 이 뜨거운 섬에서 감독 자신의 하늘 인연을 만난 사정을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가 있다 바로 <쿠바의 연인>.


107. 쿠바인들에게 니체의 말대로 '춤추지 않고 보낸 하루는 삶 없이 보낸 하루'에 불과하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도, 오토바이 시동 거는 소리에도 춤을 추는 쿠바인들', 누가 그들의 골반 문화를 단속할 수 있을까.


117. 여느 여행자와는 다르게 느낌표 대신 물음표를 안고 다닌 시기도 그 무렵부터였을 거시다. 기껏해야 엿보기와 둘러보기의 대상이었을 뿐, 피부 깊숙이 와닿지는 않은 채로 그저 남의 나라로 머물러있던 쿠바가 이전과는 판연히 다른 존재와 의미로 성큼, 그녀의 카메라 속으로 들어섰기 때문일 것이다.


150. 체 게바라의 가장 큰 적이던 자본은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맥을 제거하고, 사상과 서사를 사장시킨 채, 체 게바라를 문화상품으로 시장에 복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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