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매주 일요일이면 엄마와 동네 목욕탕을 가는 날이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한참을 놀다, 엄마가 부르면 초록색 이태리 타월에 사정없이 팔 다리가 밀렸다. 엄마는 때를 밀어주면서 털인지 때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온몸 구석구석 이태리타월에 사정없이 밀리고 나면, 빙그레 바나나우유를 하나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엄마가 잊지 않고 건네는 또 하나의 말이 있다. 미인은 털이 많단다. 그렇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털이 많았다. 엄마의 우스갯소리에 따르면 애를 낳았는데 팔다리가 쌔까매서 놀랐단다. 나 역시 임신했을 때 아이의 성별이 딸인 걸 알고서 털이 많으면 어쩌나 그 걱정을 제일 많이 했으니 말이다. 내 인생 고민거리 중 10프로쯤은 털에게 넉넉히 할당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먼저 확인한다는데, 나는 눈으로 털이 있나 없나 제일 먼저 확인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 팔 다리에 털이 있는 걸 알고 좌절했던 순간의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에야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이 나누던 내 털에 대한 이야기는 말 그대로 내가 예뻐서 미인이라고 하나 봐 정도의 착각쯤으로 넘긴 우스갯소리들이었다.
4학년 무렵 한창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을 놀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우리 반에 재우라는 남자 아이는 여자아이들의 특징을 하나씩 파악해서 꼬투리 잡아 놀리고 다니기 일쑤였다. 나에게도 여름날이면 털 좀 깎고 다니며 놀려댔으니.
“야!”-
하고 크게 소리 지르면 그 뒤로 덧붙이는 말은 없었지만, 그때부터 내 팔다리에 털이 성가신 존재가 되고야 말았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있어 털 깎는 방법을 검색해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고민이라고 어디 사연을 보내 기발한 대처법을 구해볼 요량도 없었다. 당시 집에 양면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 강력한 접착력이면 뿌리째 내 털을 뽑아 줄수 있을 것 같아 팔에 붙여 털을 때 보려다 피부의 살갗마저 같이 떨어져 나간 적도 있었고, 차선책으로 미용하듯 털을 가위로 잘라보기도 했다. 물론 족집게로 뽑아도 봤지만, 도저히 뽑아서 해결 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피부과에 가면 제모를 해준다는 정보는 어디서 들었는지, 한창 저녁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엄마에게 진지하게 고민이 있다며 털을 뽑고 싶다 말한 기억이 있다. 때를 잘 못 골랐는지 엄마는 가당찮게 거절을 했었고, 엄마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건 못해준다는 말 한마디만 남겼다. 그러고선 서러운 마음에 혼자 방에가서 울었더랬다.
그 뒤로 우리 엄마는 미인은 털이 많다는 얘기를 농담 삼아 더 자주 건넸다. 심지어 할아버지도 엄마 이야기에 맞장구 치며, 한술 더 떠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배우가 있는데 너를 닮아서 미인이라 좋다며 배우 고현정을 가리켰다. 1990년대에 피부과에 데려가서 팔다리 전신 제모를 해줄 만큼의 비용도 없었겠거니와, 그 비용을 상쇄하리만큼 온 가족들이 미인은 털이 많다, 그럼으로 너는 미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자주 펼쳐줬다. 예쁘다는 말은 가족 이외에 들어볼 일도 없었지만, 내 털 덕분에 온 가족들이 돌아가며 예쁘다는 말을 섭섭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중, 여고를 다니면서 남자아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털에 대한 고민은 잊혀 갔다. 중고교 시절 나처럼 팔에 털이 많아 고민인 아이들도 간혹 한둘쯤은 만나게 되니,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는 아니라는 생각에 어렴풋한 위로쯤은 되는 듯했다. 학교생활은 즐거웠고, 선생님 눈밖에 나는 일은 잘 없었으니 털로 인해 자존감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여자들로 된 세상에 살다 대학을 가니 또 털에 대한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남성에게 여성의 털은 들키면 안 되는 치부 같은 존재인 건가 싶다. 심지어 털이 많아서 나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남편 되는 사람이 잠자리에서 내 다리털을 보고 나를 거부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마저 들곤 했다. 그러다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모두들 세면 도구함에 면도기 하나쯤은 넣고 있는 게 아닌가. 남자들이나 가지고 다닐 법한 면도기를 여자들이 쓴다는 게 충격적이기도 했고, 나에게는 너무 낯선 물건이라 이걸 써도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편의점에서 면도기를 산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담배를 사는 것과 같은 사면 안될 물건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성용 면도기는 왠지 사면 안될 것 같아서 일회용 면도기를 처음 구입해 다리털을 밀어보았는데, 이게 웬걸. 털이 없는 다리를 처음 보는 기분이란?!. 처음으로 나의 매끈한팔과 다리를 보았다.
초등학교 이후 처음 남녀공학 생활이니 열심히 팔다리 털을 밀어대는 통에, 울퉁불퉁 피부염도 생기고, 여름철에 혹시라도 상대방의 팔에 내 팔에 닿지 않게 조심했다. 털을 밀고 며칠 뒤 느껴지는 피부의 까끌함으로 내가 면도하는 여자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친구는 겨드랑이 털을 밀어야 하는 계절이 왔다며 올리브영에서 나오는 여성용 제모기를 샀다고 추천해 줬던 기억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은 겨드랑이와 인중 제모를 하기 위해 피부과를 들락날락 했다. 계약직으로 일하며 소소하게월급 받던 시절이라, 퇴근 후 10회쯤은 가야 하는 피부과라 괜스레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내 털을 의사에게 내밀며 없애달라고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자체도 스스로에겐 금기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달까.
그래도 결혼을 앞두고 팔다리 전신 제모를 하려면 얼마쯤의 비용이 들까 하며 인터넷 검색에 한참 돌입했던 적도 있다. 그때 당시 일시불로 결제할 금액은 못되었고, 할부를 하더라도 한참을 고민했어야 했던 돈이라 포기했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신혼 때는 남편에게 들킬 세라 겨드랑이 팔 다리 제모를 열심했더랬다.
그러다 출산을 하게 되면서 이게 웬걸, 제모는 커녕 머리 한번 제때 감기도 힘든데, 샤워를 정성 들여 할 시간이 어디 있나. 그저 아이 잠 깨기 전에 후다닥 대충 씻고 나올 수 만 있다면 감지덕지해야 하니. 샤워젤의 향기를 골라가며 30분 넘게 샤워하던 그 시절은 이미 떠나보낸지 오래됐다. 이젠 더 이상 팔다리의 털로 고민하지 않는 짬밥쯤은 되었다. 팔다리 털은 필요에 따라 면도기로 쓱쓱 밀어도 괜찮은 것쯤은 되었고, 긴 옷으로 내 몸을 가릴 수 있는 계절이면 별 걱정 없이 산다.
그 대신 빠지는 머리털에 대한 고민과, 유전자 탓에 검은 털이 하얀 털로 바뀌어 가는 고민이 생겼다. 아직 아이가 초등학생이니 10년쯤은 족히 뿌리 염색을 하고 살아가겠지만,
그 뒤로는 백발로 다녀도 되지 않겠나 싶다. 그리고 엄마처럼 나도 나의 딸에게 털의 순기능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어준다. 오죽하면 상담 코너에 딸의 몸에 난 털에 대해 어떻게 긍정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를 올린 적이 있었더랬다. 내가 밀지 못했던 털은 아이가 제모해달라고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해온다면, 그땐 나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내가 못 민 털, 딸은 밀어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