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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완느 Nov 19. 2024

‘다른 사람이 좋다는게 더 좋다고 믿어요.’

눈에 띄는 한 학부모가 있었다.


절약정신이 투철한 것 처럼 느껴졌고, 교육 철학이 확고한 것 처럼 보이기도 했고, 건강관리에 관심이 높아 보이기도 했다. 때론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외향적이지 않은 나에게는 궁금한 것을 여러 엄마들을 붙잡고 물어보는 것이 신기해 보였다.


잊을 수 없는 말이 있다.


' 저는 제가 직접 알아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좋다는게 더 좋다고 믿어요.'


이 말이 동전의 양면처럼 앞과 뒤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앞과 뒤가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그 엄마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말이었다.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찾아서 이 어린이집에 보냈다고 했다. 왜 발도르프 철학이 자신에게 와닿았는지 보다, 맘카페를 검색해서 나오는 곳 중에 연락이 닿는 곳에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발도르프 철학을 중시하는 부모가 다른 학부모들의 사교육에 대해 관심을 넘어서서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처음엔 이상했다. 아이들 학원의 수업시간은 몇 분인지, 위치가 어디인지, 학원비가 얼마인지, 왜 좋다고 생각하는지 상대방의 생각과 정보를 캐묻다시피 했다.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 갓 입소 한 뒤 한 아이의 부모가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 아이의 엄마는 둘째를 임신하고서 첫째를 입소시키러 온 터였다. 아이를 돌보는 아주머니가 같이 어린이집 입소 상담을 받으러 왔다. 학군지도 아닌 평범한 동네에 엄마 손 대신 매일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등원하는 아이는 드물었기에, 흔히들 말하는 좀 사는집 아이 인가 싶었다. 원의 적응도 엄마의 손 대신 아주머니의 손을 빌려 적응연습을 했다.


그러다 아이의 원 적응이 끝나고 한두달 지날 무렵 아주머니 대신 한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러 오셨다. 네살반 아이들이 하원 후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그 아이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6개월쯤 뒤 둘째 출산후 몸조리를 끝내고 첫째를 데리러 오는 그 아이 엄마와 몇 번 마주쳤다. 먼 거리에서 대중교통을 타고서 원에 등원하는 집은 그 집과 우리집 두 집 뿐이었다. 간혹 마을버스를 같이 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 거리에도 내가 이 원을 선택한 이유를 궁금해했고, 그 엄마도 발도르프 하는 곳을 보내고 싶어 맘카페에 검색해서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다고 전했다. 나는 소수로 아이를 케어 해주는 곳을 찾다가 놀이학교와 발도르프 중 고민을 하다 원장님의 철학이 마음에 들어 이곳을 택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집 아이가 우리집 아이를 좋아한다며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아직 또래와 어울리는게 서툴렀던 우리 아이를 좋아해 주는 아이가 있다니, 그 마음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렇게 그 집 아이와 우리는 간간히 마을버스를 함께 타고 집으로 향했다. 어느 날 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이는 인도 아래 차도에 발을 내딛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엄마는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별 반응이 없다. 마을버스가 정차하러 오는 도중에 아이를 보지 못하면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을 법 했다.


“XX야, 인도로 올라와야지, 차도에서 기다리는 것은 위험해. 사고 날 수 있어.”라고 말하자 그제야 그 엄마는 아이에게 올라오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횡단보도에서 늘 인도와 차도의 경계를 시험하는 듯 자기 몸을 경계선상에 놓는 일이 잦았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킥보드를 타고 다니며 때론  뛰어다니고 가끔은 바닥에 드러눕는 행위도 마다 하지 않았지만, 엄마는 아이의 행동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 엄마의 기준은 아이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그 자체가 발도르프라고 여겼던 걸까. 발도르프 교육관과 방치의 경계사이에서 늘 아슬아슬 했다.


어린이집을 하원을 하고 나면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2차 가 시작된다. 아이들만의 진정한 자유놀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엄마는 아이에게 행선지도 밝히지 않고 놀이터에 놀고 있는 아이를 두고 종종 사라진다. 다른 엄마들은 모두 자기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그아이 곁에는 늘 엄마가 없다. 아이에게 행선지를 밝히지도 않고, 다른 엄마들에게 잠시 아이를 맡겨두는 말도 건네지 않고, 암묵적으로 다른 엄마들이 자신의 아이를 봐주는게 당연하듯, 근처 유기농 매장에 장을 보러 다녀온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를 데리고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데 결국 마지막 남은 사람이 그 아이를 보며 그 집 엄마가 유유히 시장을 보고 올 때까지 기다린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모르는 듯, 졸업할 때까지 이런 일은 잦았다.


어느 한 날은 키즈 카페를 같이 가자고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리고 키즈카페에 들어오자마자 그 집 첫째와 3살 된 둘째까지 놓아두고, 자기는 시장을 보러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나갔다. 나에게 시장을 좀 다녀와도 괜찮은지를 묻는 게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 그 뒤로도 그런 일은 계속되었다. ‘자기네 아이들은 자기 없어도 잘 노는데, 내가 너에게 아이들을 봐달라고 부탁한 건 아니다’라는 입장이었을까.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상식 밖 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방학때 어디 다녀온 이야기들을 다른 엄마들과 주고 받고 있으니, 아이 면역력 좀 기르려만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그 집 엄마는 나에게 조언이라는 듯 말을 건넸다.


어린이집 옆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이 생겼다. 아이들은 참샛 방앗간 마냥 드나들었다. 다들 각자 군것질 거리들을 하나 둘 사 먹는데, 그 엄마는 늘 아이에게 사주는 것에 대해 박했다. 사줄 수 있는 이유보다 사줄 수 없는 이유가 더 많았다.


월요일 아침이면 어린이집에서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가족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디를 다녀왔는지 말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그 아이는 늘 말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들을 저마다 자랑하기 바빴는데, 그 아이는 시크릿쥬쥬가 그려진 칫솔 하나를 받았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놀라 그 집에만 왜 칫솔 하나만 주냐고 묻는데, 정작 그 아이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러다 결국 7살이 되던 1월 어느날. 그 집 아이는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다. 내가 엄마 카드 갖고 있으니 너네 원하는 거 다 사라며, 결국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하나씩 가지고 나왔다. 우리 집 아이는 빈손으로 나와 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엄마 카드가 있다는 그 아이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말 그대로 물건을 훔쳐서 온 것이었다. 다른 엄마들은 놀라서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무인매장으로 가서  가져온 물건을 직접 결제하고, 결제하지 않은 물건은 가지고 나오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당사자의 엄마는 아이와 한참을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실랑이를 한다. 아이는 물건을 갖고 싶은 마음에 뜯었지만, 그 엄마는 결제하지 않고 뜯은 물건을 그 자리에 돌려놓고 나온다. 아이는 왜 그렇게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와 엄마카드 있다고 마음대로 사라고 했는지 그 엄마는 모르는 걸까.


우리집 아이와 놀고 싶다는 연락을 카톡으로 보내놓고 내가 답이 없으면 몇 통씩 전화로 부재중까지 남겨져 있는 날도 있었다. 그집 아이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고, 아이의 물건을 자기 물건 마냥 이것저것 꺼내 구경했다. 한 날은 아이의 비즈 목걸이 만들기 세트를 꺼내놓고 목걸이를 만들자더니 실에 비즈를 최대한 많이 끼워서 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타인의 물건을 두고, 허락을 구하고 놀고 동의를 받아 자기 집에 가져가야 하는지 교육이 되지 않았다. 그 엄마는 눈앞에 두고도 별다른 교육을 하지 않는다. 가르쳐야 하는 대상인지도 모르는 듯했다. 자기네 집에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위해 우리 집에 왔고, 또 다른 아이 집에도 구경 가듯 그렇게 먼저 카톡을 보내 언제 시간 되는지, 상대가 거절해도 매번 문자를 보내며 자기네 집 아이가 놀러 가도 되는 날을 만들었다.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어 1박을 다른 아이집에서 보내게 되었을 때도, 다른 아이들은 친구에게 줄 작은 선물과 카드를 챙겨서 가는데 그 아이 혼자 빈손이다. 그 아이는 그 순간 기분이 어땠을까. 자기 집 보다 더 즐거운 곳이니 그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했고, 결국 그다음 날 저녁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집으로 귀가했다. 여전히 그 엄마는 아이를 데리러 마중 나가는 순간에도 빈손이었다. 졸업 사진을 찍을 때도 우리 아이와 똑같은 옷을 사입히고,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같이 보내고 싶어하고,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가면 언제까지 아이를 데리러 갈 건지도 묻는다. 그집 엄마는 아이의 마중은 잘 나오지 않는다. 행여 아이와 같이 하원하는 학원이라도 보내면 그 아이의 하원마저 내 몫이 될까 나는 학원 정보를 묻는 그 엄마의 말에 거리를 두게 된다.


그 아이와 우리 아이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하교 후면 아이를 데리러 마중을 나간다. 그 아이는 하교 후 내가 마중 나와 있는지를 확인하고서 집에 혼자 들어간다.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이나 인사를 하지 않고 자기 혼자 돌아간다.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멀리서 우리 아이를 기다릴 때도, 그 아이는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서 집으로 간다. 아이가 돌아오는 시간, 그 엄마는 모임을 나가고 집에 없다. 아이는 엄마가 없는 빈집에서 간식을 홀로 챙겨 먹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거닐며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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