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피부로 체감해 본 적은 없다. 크게 부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집의 경제 규모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누리며 지내왔다.
배우고 싶은 것들은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돈이 엄청나게 드는 것들을 하고 싶다며 부모를 졸라대지는 않았다. 어림짐작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범위를 스스로 알고는 있었던 것 같다.
유일하게 딱 한번 기억에 남는 엄마의 거절이 있다. 6살 때부터 초등학교 시절 내내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같은 유치원과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아이가 예중 시험을 본다는 이야기를 엄마가 꺼냈다. 나도 피아노가 좋았고, 피아노를 더 잘 쳐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피아노로 예중시험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꺼냈다. 엄마는 '너는 피아노에 소질이 없다'라고 단박에 잘라버렸다. 피아노에 소질도 없다면서 왜 나에게 피아노 학원을 다니라는 건지 그때 당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 해서 입 밖으로 엄마에게 내 기분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기억에 없는 것 보면.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좋았다. 동요를 좋아해서 매번 동요겨루기 대회 프로그램은 매 주 즐겨보는 프로그램 1순위였다. 1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합창부를 뽑는다는 말에 시험을 봤지만, 너무 떨려서 음정을 다 틀리고 말았다. 8살에 삼촌들과 이모들의 결혼식장에서 피아노 반주 할 기회도 있었다. 그때 당시 할아버지께서 선물로 피아노를 사주신다고 했는데, 피아노가 큰 금액이라 내가 받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선물이라 어린 마음에 거절했었다. 피아노가 집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피아노 전공을 하게 될 만큼 소질을 갈고닦았을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중학생이 되어서도 엄마의 권유로 방학 때마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한창 놀고 싶었던 나이에 피아노가 좋아서 다닌 건 아니지만 그게 내게 주어진 시간이니 충실했다. 고교 입학을 앞두고서야 피아노는 그만둘수 있었다.
입시를치르고 나서 대학에 입학 한 뒤로 나는 피아노 연주가 다시 듣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귀에 익숙한 소리라 그랬는지, 피아노 소리는 타향살이 속에 마치 고향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취미 생활을 할 사람을 찾았지만 주위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클래식을 취미로 듣는다 그러면 고리타분 한 사람 취급 당하는 그런 분위기랄까.
어문계열의 학교였으니 피아노 선율 하나에 마음 떨려하는 사람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가끔은 너무 울고 싶은 날 뉴에이지 음악을 틀어놓고 그렇게 펑펑 울고 나면 마음 뚫리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더더군다나 찾기 힘들었고 나 같은 사람이 오히려 희귀종에 가까웠다.
막연히 엄마가 오래 시킨 피아노 덕분에 내가 음악을 좋아한 건가 싶었는데, 원래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라고 한들 그 오랜시간을 다녔겠나 싶다. 합창을 좋아했던 나는 여전히 성악가들이 부르는 가곡과 오페라 곡들이 좋다. 엘토 파트의 목소리로 부르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최근 들어 아이와 뮌헨 청소년 합창단 공연을 보러 갔다가 피아노 연주와 성악 지위까지 배우고 있는 청년들을 보고 감탄을 했더라지. 어렸을 때 좋아했던 것들을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좋아하고 있다.
오늘 아침 이빨을 닦으면서 적성검사나 새로 해볼까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렸을 때 했던 적성 검사 결과를 뒤적여 찾았다. 몇 번을 해도 거의 예술 분야가 압도적이었다. 재능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성격에 맞는 적성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였다. 어렸을적 아빠한테 나는 예술분야가 나온다고 말했더니, 네가 그런 것만 체크해서 내니깐 그렇다는 말을 했었다. 가지않아본 길이니 괜시리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
인생에는 몇 가지 인생의 길을 터주는 터닝포인트 같은 기회들이 있다. 그 기회를 통해 나 자신을 잘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늦게라도 피아노 치면 10년 뒤엔 연주 좀 할 수 있는 일반인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