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익숙한 카페에 왔다.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다른 곳을 전전했다.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그곳이다. 익숙한 곳에 발길을 들이고 보니, 편안함이 감돈다. 하고 싶은 일들을 잔뜩 가방에 욱여넣고 아침부터 발걸음을 옮긴다. 타닥타닥, 경쾌한 자판 소리에 맞춰 나는 글을 쓴다.
최근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다. 1년을 두고 고민한 것이었다. 첨삭이라는 말까지 있으니, 형편없는 내 글이 재 탄생할것 같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매일 글을 써야 할 것이라는 내 몫에 대한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일주일에 한번 있는 과제마저 힘겹고, 일기도 쓸 엄두가 나지 않는건 도대체 무슨 마음인지. 난감했다. 돌아보니 글을 쓰고 싶어 수업을 듣는게 아니었다. 결국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었다. 수업이라도 들으면 화려한 기법들이 더해져 내 글이 뚝딱 원고로 재편성되고, 한편의 드라마 시나리오도 될 수 있는 그런 마법처럼 생각했던 것이었다. 수강료를 입금하면 어디에서든 내 글은 반짝하고 빛날 거라는 단단한 착각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학창 시절부터 '과제'는 점수를 받기 위해 내는 것이었고, 언제나 잘 해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그 시간이 의미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 습관이 아직도 몸에 밴 게다. 생각은 나이가 먹으면 유연성이 더해질 줄 알았더니, 유연성은 커녕 고정된 상수값이 되어 버렸다. 삶에 대충이라는 건 없었다. 스스로도 참 피곤한 인생, 이것 때문에 손해 본 게 얼마인가 싶다. 완벽함이란 스스로를 갉아먹는 좀벌레 같은 것이 아닌가.
완벽하지 않아도 대충이라도 해나가야 한다는 걸 일깨워 준 것은 육아였다.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처음 결혼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난 계산적으로 딱 떨어지는 것이 좋았다. 통장 잔고가 없는 건 괜찮아도 빚은 없어야 했고, 결혼하고 얼마의 소득을 몇 프로는 적금을 넣고 몇 프로 범위 내에 소비를 하고, 몇 년 뒤에 우리는 집을 장만하고, 보너스는 어디에다 사용하고.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계획부터 세워놓고, 그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었다. 유년시절 팔자에 복이 겨워 계획한 대로 안되어본게 없는 인생 살아온 것이다.
결혼은 철저하게 내 생각과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남편은 말하지 않았던 대출금이 있었고, 금액을 알고서는 갚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마저 들었다. 참 순진했다. 알고 보니 그 정도 빚 없는 사람이 없더라. 맞벌이에 자식 둘은 낳고 살 줄 알았는데, 맞벌이는 커녕 단 한 번도 예상해 보지 못한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리고 남편은 내 생에 없을 것 같았던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섰다. 매달 고정 수입이 없는 살얼음판같은 생활에 육아는 내 뜻대로 될리 만무했다. 잘 해 내야 하는데,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 없는 결혼생활. 그때 당시 글 안 쓴 날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매일 글을 썼다. 감히 말로 내뱉을 수는 없는 것들이 더 많았기에 글을 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평가받을 것도 아니었고, 마음 속에 담아둔 욕 한바탕 뱉어내는 심정이었으니. 되는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인생에 글쓰기는 마음껏 지껄일 수 있었던 낙서장 같은 것이었다.
친절한 블로그가 몇 년 전 오늘의 글을 알려주면, 기록을 따라 과거로 되돌아가 본다. 생각보다 담백하게 그 시절을 담고 있다. 글은 자연스럽게 쓰면 그만인데, 과제라고 타이틀을 달고 나온 순간 나도 모르게 학창시절로 되돌아간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통상적 이념이 내 머릿속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나 싶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생각들을 담아 둘 수 있어 좋다. 평가받지 않는 것이라 더 좋아했다. 생각과 감정은 어느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산물이라 여겼다. 옳고 그름 없이 역사적 연대기 같은 것이라, 생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에 그냥 좋았다. 내 글에 누군가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도 좋을 일이고, 모르는 이가 읽고 스쳐가도 그만인 것이었다. 글의 주인은 오롯이 나이고 누군가 갈취해갈 수도 없는 고유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책을 출판하려면 목차가 있어야 하고, 그에 맞게 글을 구성해야 한다. 써둔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내는 일이라면 모를까. 시놉시스만을 가지고 출판 계약을 시도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목차를 짜는 순간 대학시절 리포트 쓰던 때가 생각난다.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추고 인용 어구를 뽑고 예시를 들며 자기주장을 펼치고, 타당성에 입각해 결론을 내는 과제. 어문계열을 전공했지만, '수학, 물리, 경제, 회계' 과목을 좋아했다. 논리에 맞게 딱 떨어지는 것이 좋았다. 글을 수학 공식처럼 명료하게 쓰자니, 문장의 행간에 어색함이 흐른다.
아무런 글이나 일단 써보면 실력이 늘까.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면 주제 잡힌 글도 쓸 수 있는 걸까. 여전히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막상 내 글에 점수가 매겨지는 것 만큼 불쾌한 일이 있을까 싶지만, 마음은 늘 "잘 쓴 글" 그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육아를 하면서 성과는 커녕 철저히 밑바닥을 헤매고 있다 보니,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에 점수라도 메겨보고 싶은 심정인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며칠 전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보내보라는 조언과 함께. 지금 잘 하고 못 하고의 의미를 따지지 말고, 시간의 흐름대로 그냥 해보라고, 지금 하는 것이 꼭 옳은 것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하는 것이 나중에 잘못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잘 하고 싶은 마음을 버려봐야겠다. 그냥 좋아하는 일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재능이다. 클래식 음악의 어려운 이름들을 외우지는 못하지만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처럼, 유창한 글이 아니어도 내가 기록 할 수 있음에 즐거워하며 그냥 써 내려가자. 글은 내가 더 이상 잘 해야 할 어떠한 산물도 아니고, 해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일종의 클래식 음악과 같은 예술로써 내 인생에 위치하게끔 두자. 그것이 내가 여전히 글쓰기를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