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랜 시간 머무르는 곳은 당연코 집이다.
오랜 시간 머무르는 것은 결코 그 곳이 좋아서는 아니다. 직장인이 회사가 좋아서 12시간씩 머무르는 것이 아니듯, 나도 비슷한 연유다.
남편은 나를 무척이나 아낀다. 가끔은 예쁜 집에 있는 바비 인형처럼 그렇게 나를 아낀다. 그는 어렸을 적 꿈꾸었던 엄마의 모습을 나를 통해 만들어 간다.
그래서 내가 머무르는 곳은 집이 되었고, 아침이면 늘 남편을 맞이한다. 일하고 들어온 남편의 수고스러움을 형편없는 솜씨지만 끼니를 챙기는 부산함을 통해 고마움을 표현하려 노력한다.
남편은 집에 있는 아내가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나는 일하는 엄마가 이상향이었다.
우리 엄마는 늘 집에 있었고, 왜 집에서 하염없이 나만 기다리는지 어린 시절 이해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을 꿈꾸었다.
남편의 엄마는 늘 일하러 집을 떠났다. 대식구들을 챙겨야했던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일하러 나가는 것이 이해 되고도 남지만, 고작 다섯살이었던 남편은 이해할 수 없었나보다.
결혼 후 남편은 내 몫까지 벌어오느라 애썼다. 나는 내 몫은 내가 벌어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잊을 수 없는 전화 한 통이 있다.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대학 동기의 목소리.
네 인생인데 왜 그렇게 사냐고.
북받쳐 나오는 울음을 겨우 삼켰다.
내 인생 나 인들 지켜보려 애쓰지 않았겠냐고.
예민하고 발달에 관심이 필요했던 아이를 어디다 하루종일 맡겨 놓고 돈을 벌러 갈 용기가 없었다.
남편과 숱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결국 나는 내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이었지만, 나도 내 인생 내가 하고 싶은것을 버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수화기 넘어 선뜻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고 건네는 이야기가 내겐 가시처럼 남아있다.
그 동기는 아이 둘을 낳고도 여전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아이 하나를 낳고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가물가물 한 채로, 아침에 일어나 정성껏 아침을 차리고 남편과 아이를 맞이한다. 남편과 아이가 각자의 사회에서 겪고 온 이야기를 들려주면, 나는 누구보다도 반짝이는 눈으로 그들의 세상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잠깐의 틈 속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누리며,
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선뜻 대답 못하는 순간들도 있다. 그렇다고 한들 내 삶이 하찮은 인생은 아니다.
여전히 일을 하고 싶고,
여전히 인정 받고 싶고,
여전히 무엇인가에 빠져 몰입하고 싶다.
여전히 나의 쓸모가 사회속에 있었으면 한다.
어딘가 용기 주머니가 있으면 좋겠다.
내 마음에 달아주고 싶다.
어젠 아이 동화책을 읽어주다 내 마음이 괜시리 시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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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모든 것이 무서웠어요.
"에이미! 놀이터에 가서 놀자!
친구들이 말하면 에이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싫어. 그네 타다가 떨어지면 어떡해.
풀벌레한테 쏘일지도 몰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에이미! 공원에 가서 산책할까?"
할머니가 말하면 이렇게 대답했고요
"싫어요. 태풍 불고 천둥 번개까지 치면 어떡해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
아우로라 카치아푸오티 의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에이미'에게서 나를 발견한다.
나는 당장 무엇인가를 시도 해볼만한 용기와 끈기는 없다. 그리고 노력을 해보겠다는 거창한 말도 해볼 용기가 없다. 못할 것 같아서 차마 내 뱉지 못한 말들을 가슴속에 움켜넣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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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가끔씩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지만 항상 아름답고 멋진 일들이 생긴다는 걸 에이미는 알게 되었어요.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면 말이에요.
왠지 알아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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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두려움. 무슨 일이든 일어날수 있으니깐, 무엇이라도 해보는 용기.
글을 쓰면서 아주 작은 용기라도 내어보고 있는 중이라 나를 격려해본다.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도 시간이 지나 먼지톨이 되어 눈에 들어오듯, 그렇게 나는 아주아주 작은 용기를 내고 있다고 믿어본다.
오늘도 아이 등교길을 바래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는 남편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잠시의 틈에 먼지 한 톨의 용기를 더해. 주저하는 마음도 옆에 보듬으며 타닥타닥 자판 소리에 맞춰 글을 써 본다.
오늘의 음악 선곡은 Caroll Kid의 ‘When I Dream’
가사에 곁들여지는 기타의 울림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