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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완느 Sep 26. 2024

어떤 부모 교육을 받고 싶은가요?


아이를 등원시키고 어린이집 근처 스터디 카페로 왔다. 대체로 평온한 나날들이고, 무언가를 굳이 해 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완수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로 채우는데 만족하는 중이다. 아이를 등원시키고나면,  다섯 시간 남짓 여유가 생긴다. 가정주부가 된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여유겠거니 한다.


며칠 전 다녀온 숲학교 현장체험의 학부모 만족도 조사가 이루어졌다. 어떤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이었다. 형식적인 설문지에 무언가 의미 있는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이어 부모 교육에 대한 좋은 의견이 있으면 나누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솔직하게 적고 싶었지만, 결국 적지 않았다.


육아를 하면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부모 교육을 접하고 있다. 가끔 우리 부모세대의 강사분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옳은 말도 가슴으로 받아내기 힘들 때가 있다. 부모세대 강사분의 시선에, 우리는 대체로 편리한 시대에 편리하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비춰졌다. 강의 내용은 엄마로서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빼곡히 채워진다. 엄마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잘못 된다는것이 부모교육의 전체적 흐름이다.



우리는 지독한 입시 전쟁을 치르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스펙을 쌓았다. 그리고 바늘구멍 통과하듯 취업의 문턱을 넘었다. 남녀 평등은 우리세대 교육의 주요 골자였다. 여자도 남자와 사회에서 똑같은 구성원으로 대우받으며, 직업적 성취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성취에 집중 해온 삶을 살아오다, 결혼과 출산의 문턱을 넘자마자 '나' 이외에 책임지고 살아가야 하는 '가족'이 생겼다. 출산과 동시에 남편은 경제적 가장이 되고, 아내는 살림과 양육을 담당하게 된다. 부모세대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남녀는 평등하다는 교육의 가치는 실현 가능한 가치인가 싶은 지점이다. 여자는 출산과 동시에, 출산 전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모세대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입시전쟁, 취업전쟁의 구멍을 통과해온  노력이 마치 아무 의미 없는 일인 듯 아이를 품에 안고 무기력해진다.  


성과주의가 만연하고, 집값은 폭등했다. 경쟁에 쫓기며 현재를 버텨 나가는 것도, 우리세대에게는 꽤나 치열한 일이다. 부모 교육은 팍팍해진 경제적 현실 속에, 아이를 키우는 환경은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심리적 갈등과 문제가 해결되어야 자녀의 문제도 해결된다고 보는데, 엄마의 처지에 대한 이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결같이 엄마의 문제라고만 탓하는니 부모 교육이 썩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을 가중시키고 좌절감을  느끼는 자리가 되고 만다.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열풍, 부모의 감정 조절 문제로 양산되는 아이들의 ADHD 증가, 영유아기에 다루어줘야 할 신체감각의 불균형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사회적 병폐 현상들을 결국 엄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편리함만 추구하고 인형처럼 아이를 키운다며 엄마들을 문제 삼는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또 뭘 바꿔야하나? 내가 그렇게 잘못된 사람인가 자책감에 휩쌓이는 경험이 부모교육을 통해 누적된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세대를 살아온 강사를 부모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만난직이 있다. 앞선 세대의 경험이 녹아든 강의와는 사뭇 달랐다.  여자가 엄마가 되는 순간 잃는 모든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기반들에 대해 위로하고, 대처해야 하는 방안들을 먼저 설명해 준다. 내가 나로서도 존재하고 설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알려 준다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큰 위로가 되었다. 그 후 아이들이 양육 문제를 현재의 처지에 맞게 다루는 방법을 소개한다. 우리 부모 세대가 전하는 부모 교육은 엄마로서의 희생을 필수 기반으로 생각했고, 우리 세대가 전하는 부모교육은 우리가 하나의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개개인의 위치를 존중한다는 데서 달랐다.


그래서 다음 부모교육에는 엄마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립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을 고려한 교육을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로서의 역할만 요구받고,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 자리 집는데 숱하게 거절 받아온 경험들이 쌓인 우리 세대를 이해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편리한 세상에서 편리한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불안한 경제상황, 복잡하고 넘쳐나는 정보속에 '나'스스로의 존립 가치에 대해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자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결국 부모교육은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부모가 부모 문제를 해결할 때 아이의 양육 문제는 자연스럽게 많은 부분 해소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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