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어느날과 다름없이 하원 후 어김없이 놀이터로 향했다. 여러명의 아이들과 어울려 논다. 아이들은 제각기의 발달 속도가 있고, 부모가 정해준 각자 다른 경계안에서 어우러져 논다. 60개월을 전후하는 아이들에게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지가 아직은 원활하게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어제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미끄럼틀과 미끄럼틀을 이어주는 흔들 다리 위에서 어떤 아이가 뛰어 내렸다. 우리 아이는 자기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같이 뛰어내렸다가 정면으로 땅으로 추락했다. 높이에 대한 인지가 되지 않은 탓에 위험을 감지하지 못헀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예전부터 그 아이와 같이 다니면 늘 아슬아슬했고 내 마음은 조마조마 했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정해준 위험에 대한 경계설정의 기준이 그 집 아이와는 상당히 달랐다. 그 아이는 버스를 기다릴때 차도와 인도의 경계선에 서 있었고, 횡단보도를 건널때도 인도와 차도의 경계선에 서 있다. 간혹가다가는 차도에 발을 내밀어 보기도 한다. 그네를 타면서도 얼마큼의 높이로 타면 자신이 위험한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 발을 굴러 높이 향한다. 초등학생들이 타는 모습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초등학생들이 쓸수 있는 근육과 행동의 민첩성과 시야를 5살의 아이가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여기는데 부모는 허용적이다. 5살 아이의 신체 능력이 탁월한 것 쯤으로 인지하고 계신듯 했다. 벽을 타고 뛰어내리는 것도 서슴없었다. 어렸을 적 음식섭취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던 아이라 늘 배가 고팠고 주위에서 주는 자극들에 예민할 수 밖에 없고, 체력이 없다보니 자신의 신체를 자기의 의지대로 해본 경험, 감각추구가 부족했던 아이라 5살이 되어도 끊임없이 감각 추구를 느끼고자 행동을 하는 양상이 보였다.
부모는 아이의 발달에서 인지적관점으로 수용적 자세를 취하고 있고, 위험에 대한 경계설정을 조절해주기보다는 가장 마지막 경계점. 한끗만 더 움직이면 위험으로 처해질 수 있는 마지막 노선까지를 경계로 설정하고 수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아이는 사람과 사물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감각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감각 추구에 몰두되어있는 상태라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 아이가 자주 하는 놀이는 높은곳에서 뛰어내리고 높은 곳에 올라타 몸을 휘감고 높은 곳에서 신발을 던진다. 그리고 맨발로 온 바닥의 감각을 느끼는 일이 자주 있고 감정을 주체 하지 못할 때 소리를 지른다. 문제는 그 소리의 음량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발을 사람에게 던지고 아파하는 모습에 웃는다. 아이의 발달을 저마다의 속도로 기다려주는 인지적 관점으로 아이를 수용해주는 태도와 경계를 설정해주지 않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 아이는 결국 심리적으로 굉징히 불안한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깔려있다. 엄마는 늘 피곤하고 힘들어한다. 아이는 놀고 싶지만 엄마는 늘 피곤하다며 집에 가자고 한다. 아이는 자기가 놀이터에서 더 놀면 엄마가 피곤해진다는 죄책감을 자신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느끼고 마음속에 쌓아가고 있다. 그리고 동생을 가졌을 당시 엄마는 유산의 위험이 있어서 일상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고 누워만 있어야 했다. 친구들은 하원할때 엄마가 데리러 오는데, 이 아이만 이모님이, 또는 할머니가 데리러 왔던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놀고 있는 놀이터에서 놀고 싶어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났고, 엄마가 더이상 누워있지는 않지만 동생을 안고 있는 것이다. 하원을 해서 놀이터에서 모두 엄마들이 친구들을 바라 보고 있는데 자신의 엄마만 동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느꼈을 소외감으로 어쩌면 이 아이는 부족했던 감각을 더 크게 추구 하는 양상과 경계를 넘어서야만 자신이 엄마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아이도 촉각적인 감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라 감각추구 하는 양상이 다소 남아있다. 그러다 보니 크게 감각 추구 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자신도 더 큰 감각추구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일어나는게 아닌가 싶다. 부모가 정해준 경계가 다른 아이들 속에 어울려놀다보니 경계의 기준을 넘나드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럴땐 아이에게 경계설정에 대한 말을 반복적으로 하기보다는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더 느낄 수 있게 목소리 톤과 신체접촉을 늘려주고, 사랑하는 엄마의 말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는 엄마를 사랑 할 수 있는 마음을 더 키워 주는게 맞는 방법일 것 같다.
우리 아이의 2살때 주 양육자였던 나의 심리적 문제로 아이 발달에 있었던 타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이를 섬세하게 키운다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어쩌면 그 시기에 가장 섬세하게 아이를 수용하고 케어해주는게 가장 쉬운 육아를 하는 길 일 수 있다. 어쨌든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당사자인 엄마에게 해줄 수 없고, 어렸을적 자극 추구가 부족한 아이가 그 자극을 부모가 안전하고 적절하게 채워주지 않으면 이런 양상으로도 점점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나도 기억해놓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