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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완느 Sep 26. 2024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세요

'자녀가 당신에게 요구하는건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는 것이지

온 시간을 바쳐서 자신들의 잘잘못을 가려달라는게 아니다'

-빌 아이어스-


신학기에 엄마들의 마음은 한창 분주하다.

나 역시도 아이가 어디 새로운 기관에 입학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선생님과 친구들이 바뀌는것이 아님에도 불구 하고 작은 환경변화에도 민감한 아이라, 마음이 늘 조마조마 하다. 하물며 아이를 첫 기관에 입학 시키는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할까. 특히 유치원을 떠나 초등학교에 보내는 부모 심정이 젤 그러하겠지 싶다.


하지만 부모들이 잊고 있는게 있다. 부모보다 더 마음 조마조마 한건 아이들일 테다.


'우리 아이는 애가 적응이 뭔지도 몰라요.

그냥 웃으면서 밝게 잘 다녀와요.

주의집중이 잘 안되는데 이 아이한테는 신기한게 많으니 재미있나봐요.'


 불안감 높은 아이일 경우에는 아이의 행동과 표현이 쉽게 드러나기때문에 부모가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지만, 자칫 호기심 많고 산만하다 여겨지는 아이일 경우 부모가 아이의 불안을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


호기심 많고 활달하고 통통 튀는 아이들의 경우 아이의 불안은 더 산만해지거나 아이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할말만 하는 경우의 빈도가 늘어나고, 흔히 아이가 붕붕 뜬다고 느끼면 그건 아이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격는 어려움이 있다는것을 부모가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가 어린시절을 돌아봤을때, 초등학교라고 하면 한창 공부하는 시기였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몇 안될테다.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부모의 부모가 엄청난 학구열속에 아이를 미리 선행시킨 경우겠지.. 대부분의 부모는 한창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시기로 기억할텐데,  막상 내가 학부모가 되고보면 내 욕심에 못이겨 아이의 주도학습을 할 수 있는 태도를 키워준다는 등.. 아이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보다 학습적 태도를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꽤나 많다. 아이도 처음인 곳을 적응하느라 나름데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부모의 눈빛은 아이가 뭘 제대로 못할까봐 불안의 눈빛으로 아이를 대하는 경우도 종종있는데, 아이가 뭘 잘 못해서 걱정하는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믿지 못해 스스로 불안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 부모의 불안이 아이에게 전가되는 경우 인 것이다.


어린이집 적응을 처음 시킬때, 우리 집 아이는 적응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만3세를 지나나 40개월 무렵 처음 어린이집을 갔는데 원장 선생님이 한 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부모가 아이를 믿지 못해서, 아이가 적응을 못하는거에요'


아직도 이 말을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충격으로 다가 오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 뒤돌아 보면 가장 정확한 말이다. 부모가 불안이 높은 경우, 자신의 불안을 다루지 못해 아이가 적응을 못하는 경우도 꽤 있을 수 있는 정확한 말이다.

부모가 아이를 믿지 못하고 불안하고 의심의 눈빛으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는 자신의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인식에서는 내가 뭔가를 늘 잘못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아이가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는 행동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적응이 어려운 것이다. 아이도 자기 스스로를 믿는 믿음,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부모의 불안은 눈빛과 표정으로 아이에게도 쉽게 전가되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나를 매사에 불안 노심초사로 보는 엄마가 있다면, 엄마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말들이 아닐까.


'엄마, 나도 노력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기다려 주세요. '

'나를 좀 믿어 주세요.'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도 사랑해주세요.'

'전 모든걸 다 잘 못하는 아이가 아니에요. 저도 잘하는게 있으니 예뻐하고 사랑해주세요.'


아이들도 얼마나 힘들까. 코로나여서 친구들과 대화도 제대로 못해보고, 접촉도 어렵고, 내 의사표현도 제한된 곳에서 몇시간을 버티며 적응해 나가는 아이들이 대견한거 아닐까. 우리보다 몇배로 더 어려운 상황에서 적응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뛰어놀고 친구들 사귀는 곳이 놀이터가 아니라 온 동네 학원에 모여야 친구들을 사귈 수 있고, 코로나여서 좋아하는 친구들 마저 집에 자유롭게 초대하고 오고가는게 어려운 이 상황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말 한마디 기억하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말 친구에게 해보는건 정말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집 아이같으면 울고불고 학교 안간다고 집에 드러누울수도 있을텐데, 신발신고 가방메고 두렵지만 학교 교문을 스스로 통과하는 것만 해도 기특하고 대견스러운 일 일테다.


나도 곧 2년뒤면 초등 입학을 시키는 학부모가 되겠지만, 스스로 내가 이맘때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전가시키지 않도록 기억하려고 글을 써둔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그 중에 아이의 빛나는 부분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내 옆집 사는 아이가 동그란 모습이고, 내 윗집 사는 애가 동그란 모습이라고 해서 뾰족한 우리집 아이를 동그랗게 만드려고 부단히 사포질 하는 엄마가 되진 말아야지. 뾰족한 모습도 가치있고 아름답다는걸 아이가 조금더 세련된 방법으로 세상에 알릴 수 있게 그리고 인정 받을 수 있게 지지 해줘야지.


나의 아이가 조금 다르면 어떠한가. 이세상에 표준이라는건 그저 대부분의 사람이 행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게 표준이라는 것이지, 절대다수가 다른 모습이면 표준이라는 것도 바뀌겠지. 부모가 표준을 쫒아가는 순간 아이의 모습은 아마 다 재단되서 본래 고유의 색이 없어지는 슬픔이지 않을까. 아마 나를 나의 부모가 끊임없이 내 모습을 재단하고 깍아내려고 했으면 난 어디로 튕겨나가도 제대로 튕겨나갔겠지 싶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고, 지금까지도 니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살면된다고 그게 맞는거라고 말해주는 엄마가 있어 참 감사한일이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될 수 있게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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