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엄마가 몇일 째, 찌푸리거나 상대에게 무심한 듯, 그렇게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노는 자기 아이를 기다린다. 엄마의 감정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아이는 놀다가도 몇번이나 놀이터 벤치로 돌아와 엄마의 표정을 살핀다. 내가 여기서 지금 놀아도 괜찮은가? 를 엄마의 표정을 살피며 스스로 판단하는 중인듯 했다. 그 아이도 굉장히 혼란 스러웠을법 했다. 엄마가 말로는 누구누구와 놀라고 하지만, 눈빛은 먼산을 보고 있는 듯 시선을 맞추기 어려웠고, 무표정했다. 최근 몇주 상간의 급격한 표정변화이니, 아이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혼란스러워보였다. 벤치 옆자리에 앉은 어른 조차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매일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이야 말로 오죽할까.
한 날은, 다른 아이가 자기 아이를 때렸다며 하소연했다. 심지어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열을 올려가며 이야기 했다. 속상했던 마음이니, 속상했겠다고 맞장구 쳐주었지만 속으론 실소가 터져나왔다. 자기 아이가 한동안 다른 아이를 그렇게 때리고 다닌 줄은 모르는게다. 자기 아이가 다른아이한테 맞고 온게 당사자인 아이보다 엄마인 자신이 더 기분 나쁜 것이다. 아이가 어디서 상처라도 생긴 모양이면 최근 마음 불편했던 그 아이와의 관계를 의심한다. 보지도 않은 유치원 생활을 엄마의 상상의 나래로 이야기에 힘을 싣고 감정을 싣는다.
우리집 아이는 한동안 이 엄마의 아이가 때려서 기관을 다니는걸 꽤나 힘들어했다. 태어난 개월수가 제법 차이가 나니, 이해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아이도 자랄 시간이 필요하니 우리 아이가 힘든 시간에 자기 표현할 기회를 주는 샘 치고, 다른 아이가 자랄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줬다. 그리고 선생님을 믿었다. 처음엔 나도 화가 났다. 한두번의 이야기가 아니라 몇달 내내 그 아이가 때려서 아이가 등원을 거부한 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3개월이 지나도 이야기가 변함없어서 선생님께 xx가 도대체 어떤 아이인지 물었다. 말로 감정 표현이 안되는 아이니 조금 아이가 자랄때까지 이해를 구하셨다. 그집 엄마가 나에게 이해를 구하는게 아니라 선생님이 구하신게다.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아이가 잘 못한게 아니라 못배웠으니 그럴 수 있는 그 시기의 나이였다. 우리 아이에게도 자기 표현을 하는 것을 가르쳤다. 그렇게 나는 우리아이의 친구들이 자라는 시간도 이해의 눈을 더해 보고 기다렸다.
그랬던 그 엄마가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 때리고 다닌줄은 모르고, 한대 맞았다고 기분 나쁘다며 야단이다. 아이는 심지어 즐겁게 잘 지낸다. 엄마의 감정으로 인해 아이가 놀이터에서 엄마 눈치 보며 놀아야 할 친구와 놀지 말아야 할 친구를 눈치것 판단해가며 엄마의 반응을 살피는지는 모르는 기세다.
아이가 자라는 개월 수에 따라 아이들에게 발달단계상 문제 행동으로 보이는 시기가 있다는 건 자신도 아이를 키워봐서 너무 잘 알것 같았는데, 자기 아이는 괜찮고 남의 아이가 그러는건 잘못된거라 이야기 하며 씩씩대는게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자기 아이가 때린걸 누군가는 말없이 이해하며 기다렸다는걸 모르겠지. 나도 말을 안했으니. 때리던 아이도 자기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과 시간을 거쳐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도 제법 원만하게 잘 어울린다.우리 아이도 반갑게 등하원길에 그 아이를 보며 인사하고 손 흔들어 준다. 가끔은 그 아이를 챙겨주기도 한다.
내 아이의 발목 잡는건, 다른 이상한 아이랑 어울려서 그렇게 변한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잘못 가르친것도 아니다. 혹여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면, 엄마의 표정을 거울 보고 살펴보길. 그 순간 내가 아이에게 어떤 표정을 하고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