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해 Apr 04. 2022

반항하는 영웅 안티고네

아테네의 인기 드라마


기쁨이 없는 곳에서 행복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모든 건 한순간 피어오르는 연기의 그림자처럼
헛되고 헛된 것일 뿐이지요.




작년이었나, 스카이캐슬이 한창 인기 있을 때 회사에서 얘기가 시작되면 도통 무슨 얘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멀뚱히 있던 기억이 나요. 그리스에도 이런 드라마가 있었는데, 바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예요. 현대판으로 해석되어 영화까지 나왔죠. Ἀντιγόνη(Antigone)는 '거스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안티고네」를 통해 그리스 시민 무리 속으로 슉 들어가 봅시다.







「안티고네」는 그리스 3대 극작가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중 하나이다.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를 통해 자연법사상을 주장한다. 윤리적 양심(신의 법)인 자연법과 왕의 명령이라는 실정법 사이에서 양심을 택해 시련을 겪게 되는 비극의 여주인공이 안티고네이다. 테베의 왕 크레온과 공주 안티고네는 반역자이자 안티고네의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주검을 땅에 묻을 것인지로 갈등한다. 그리스인들은 주검을 땅에 묻지 않으면 죽은 자의 나라인 명계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없다고 믿었다.


비극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시학」에서 비극을 정의했다. 비극은 "완결되고, 시작과 중간과 끝으로 구성되고, 일정한 길이를 갖춘, 고상하고 진지한 인간 행위의 모방"이다. 비극의 목적은 공포와 연민의 정을 통한 감정의 정화(ctharsis)이며, 연민을 일으키기 위해 비극의 주인공은 높은 신분의 인물이어야 한다. 반드시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져야 하고, 주인공의 몰락이 천박한 욕망이나 타락 행위에 의해서가 아닌 누구나 범할 수 있는 결함이나 과오여야 한다. 또한 주인공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높은 차원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이러한 구성은 현대까지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비극 드라마, 「부부의 세계」나 「펜트하우스」를 보면 상류층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안티고네」의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이었던 오이디푸스의 딸. 즉, 공주였으나 실정법을 위반한 여인으로 굶어 죽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안티고네는 끝까지 본인의 가치관을 꺾지 않고 죽음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당시 테베의 왕이던 크레온은 오만한 마음과 경직된 사고로 아내와 자식을 최악의 방식으로 잃게 된다. 그리고 늦은 반성과 참회를 하게 된다. 크레온의 앞날은 불행할 일 밖에 없어 보인다. 극 중 코러스는 운명 앞에서 오만방자한 자는 반드시 불행해질 것을 경고한다. 「안티고네」의 마지막 구절은 다음과 같다.



지혜가 없으면 행복이 없고 신들을 경배할 수 없는 자,
지혜를 얻을 수 없으리라!
오만방자한 인간의 건방진 큰소리
크나큰 재난과 불행을 불러들이고
늙어서야 비로소 지혜를 얻으리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표를 행복(eudaimonia)이라 했다. eudaimonia는 단순히 감정적인 행복감이 아닌 이성적 사고와 실천적인 지혜가 동반한 행복을 말한다. 마지막 구절을 맥락을 통해 짐작해보건대 「안티고네」에서는 죽은 안티고네를 원래부터 지혜가 있던 자로, 크레온은 반성을 통해 늦게나마 지혜를 얻은 자로 보는 거 같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안티고네도 크레온도 지혜로운 건지 모르겠다. 둘 다 행복을 얻지도 않았다. 아,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단어와 아리스토텔레스, 소포클레스가 생각했던 행복은 뜻이 다르다. 그 행복이라면 둘은 행복을 얻은 게 맞다. 인간의 한계와 맞닥뜨리지만 고통을 통해 결국 지혜를 얻고 초연한 마음으로 죽음에 임하니까.


인상 깊었던 점은 끝까지 살아남은 이스메네와 코러스(시민?)였다. 오히려 행동하지 않은 사람이 무난하게 살아남는다. 이스메네는 이렇게 말한다. "신의 법도 중요하지만, 국법에 도전할 힘은 없어." 그야말로 현실적인 답변이다. 코러스. 즉, 시민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안티고네는 반역자의 주검을 묻어주려는 건데 신의 법을 근거로 안티고네의 입장에 서는 것을 보고 당대 그리스의 시민의식을 느꼈다. 헤겔은 「안티고네」가 가장 숭고하고 완벽한 예술 작품이며 여주인공 안티고네는 "지상에 나타난 인물 중 가장 고결한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면서 까지 옳다고 믿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이 당대 그리스인이 추구하는 인간으로서의 이상향이었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민주주의를 조롱한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